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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Mar 10. 2024

Q.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그 단어에는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 상황이 담겨 있다

A.


#1. 일터에서

출판사라는 조용한 집단, 또 협업보다는 거의 혼자서 무언가를 발전시켜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일터에선 주로 말보다 메신저로 소통한다. 바로 뒤의, 옆에 있는 상대에게 ‘지금 밥 먹으러 가자’는 간단한 말도 메신저로 쓰는 게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나 역시 메신저에 가장 많이 쓰는 건 직장인에게 생존 필수품 같은 말, ‘네’를 변주한 단어들이다. 나는 ‘넵넵’보다는 ‘넹넹’, ‘네에’를 많이 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나마 어감이 부드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는 ‘오오’나 ‘오’라는 감탄사를 습관처럼 앞에 붙이곤 한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말하거나 제시했을 때 그게 별로 특별하지 않아도 일단은 ‘오오’라고 호응해준다. ‘네’라는 말들로 무미건조하게 답변하기가 지겨워서 생각해낸 자구책이기도 하고, 남들은 안 해주니까 나라도 해준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직장인의 삶을 단편적인 이미지로 떠올린다면, 회색빛 콘크리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다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을 기본값으로 장착하며 살아가니까. 그래서 가끔 이 단조로운 얼굴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간다. 저 사람은 무언가 다른 사람이구나 싶어서.

나 역시 활기 없는 얼굴을 장착하고 있을 때가 많은데, 그래도 건네는 메신저에는 웃음 이모티콘도 자주 사용하며 상대방과의 대화를 기분 좋게 이어가려고 한다. 작은 표현이라도 상처 주는 말은 없는지 검열하면서. 내가 워낙 타인의 말들에 취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채색의 일상에 그나마 몇 가지 색을 더하고 싶은 소심한 자의 작은 몸부림이기도 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연초면 동료, 상사에게서 리뷰 평가를 받는다. 연봉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서 솔직한 평가를 받는 거라 결과를 열 때면 마음이 두근거린다.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던 사람이 떠올라서 쫄리기도 하면서.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 리뷰 결과가 오픈되었다고 해서 한숨을 깊게 쉬고 떨리는 손으로 결과를 열었다. 나와 살짝 마찰이 있었던 분이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동료들이 쓴 평가를 쭉 읽어 내려가는데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업무 관련 소통 시 항상 친절하게 응해주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돋보인다”, “소통의 과정이 편안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불편함 없이 대해준다”, “책 만드는 일에 진심이라고 느껴지는 분이다. 만들어내는 책을 보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라는 말들이 정성껏 써 있었다.

그 무표정한 얼굴들 사이로, ‘네네’가 오가는 무미건조한 대화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느끼고 있었던 거였다. 내 마음이 전달되고 있었던 거다. 내 진심을 사람들은 다 알아보고 있었던 거였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진다는 것. 이 점이 가장 큰 감동이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에, 서로에게 오고간 온기를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요즘 열심히 한 것과는 별개로 성과가 나지 않아, 회사에 출근할 때면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올해를 살아갈 또 한 번의 보상을 받은 듯했다.


#2. 말할 때

‘나도’라는 말을 이전보다 많이 쓰게 되었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 때 ‘나도 그래’ 하고 내 얘기를 시작하기까지 서른 해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늘 들어주는 역할을 하던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툴고 어렵다. 그래도 작년부터는 일상에서 작은 연습을 하고 있다.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말든 고마우면 고맙다는 말을 어떤 형태로든 꼭 전한다.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서 ‘이런 점이 고마웠고, 이런 점이 감동이었다’라고 오글거리지만 내뱉는다. 그러면 상대도 어느 정도 무장 해제된 채 내게 솔직한 마음을 전해준다. 이렇게 진심이 오가는 순간, 회색빛 콘크리트를 뚫고 풀씨 하나가 싹트는 거 같다.  

     

#3. 글을 쓸 때

늘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속으로만 외치다가, 지금에서야 진지하게 걸음마를 떼고 있다. 일주일에 한 편씩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자고 다짐하고 있는데, ‘무척’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의 글에 최소 한 번의 무척이 들어간다. ‘매우’라고 쓰기엔 어색하고 ‘많이’도 식상하니 ‘무척’을 고른 걸까. 무언가가 좋았다고 호들갑 떨고 싶은데, 그걸 표현하는 문장 기술이 부족하니 ‘무척’을 쓰는 거 같다. 무척 대신 다른 표현을 쓰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도리가 없기에 여전히 이 단어에 기대고 있다. 언젠가 글 근육이 다져졌을 때 창의적인 표현들이 내 손끝에서 빚어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들도 조금은 개성 있는 나만의 언어로 교체된다면 무척... 엄청.. 많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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