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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Apr 25. 2024

Q.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찬찬한 속도를 기다릴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A.


주유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주유소에 들어가 주유기 앞에 차를 대고 '딸깍' 하고 주유캡 뚜껑을 풀어 차에 주유 노즐을 꽂는 모든 과정을 좋아한다. 그렇게 몇 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에 기름이 점점 채워지는 순간, 덩달아 나도 충전되는 것 같다. 한 달 전 주유소에서 보너스카드를 만들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고등학생 시절 주민등록증을 받았을 때처럼, 무언가 하나의 자격을 새로 부여받은 거 같았다. 내가 번 돈으로 기름을 채우는 것도, 작게라도 나만의 이동 공간을 소유하게 된 것도 기쁘다.      


‘어른’이라는 뜻을 검색하면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두 가지 사전적 의미처럼 지금의 나는 물리적으로 다 자란 것도 맞고, 내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맞다. 스스로 너무 짓누르지는 않으면서도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일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책임을 다하고 싶다. 적어도 내뱉은 말엔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른이 덜되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사람들이다. 기분이 안 좋은 상태임을 잔뜩 드러내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 보도록 만든다. 어른이 지녀야 할 태도가 있다면, 자신의 기분 상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을 피할 순 없어도, 그 상태가 밖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바쁘고 예민할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는 않을까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나를 발견할 때도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스스로 방치하지 않고 적절히 휴식도 취해주는 행동이 결국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지켜준다.      


지난 주말 사진 수업을 듣고 회사 주차장에 세워뒀던 차를 찾아 아이들에게 갔다. 도착하니 아이들 중 가장 몸이 크고 겁이 많은 희망이가 발을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랜만에 희망이를 차에 태워서 동물병원에 갔다. 희망이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안아서 동물병원에 접수하고 치료를 받고 선생님의 안내 사항을 열심히 듣고 치료비용을 내고 약을 처방받아 다시 희망이를 안고 차에 태워 돌아오는 길, 내가 그래도 든든한 보호자가 된 것만 같아서 기뻤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애쓸 때도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다.      


어느 날 갑자기 운 좋은 일이, 특별한 일이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에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뚜벅뚜벅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씩 많아지고 그럼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범주가 커질 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벅차게 느껴진다.      


오늘도 꽉꽉 막힌 도로 위에서 다른 차들과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주어진 일상을 감사히 살아간다. 그렇게 찬찬히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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