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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Oct 26. 2024

기본을 챙기면 삶은 덜 불안해진다

열등감 다스리기

이번 한 주 동안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열등감’이었다. 영업직군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 일간 판매 부수를 메일로 받는다. 엑셀 시트에는 3대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이전에는 내가 만든 책들이 상단에 있곤 했는데, 이제는 쭉쭉 스크롤을 한참 내려가야만 찾을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일을 참 못하시네요, 일하는 스타일 좀 바꾸세요”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내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꽤 오래 내게 찰싹 달라붙어 스멀스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빠르게, 빠르게’의 세상을 외면했다

불안이 더욱 가중된 건 ‘트렌드를 파악하는 감각이 점점 헐거워지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이전엔 서점만 둘러봐도 ‘다음엔 이런 주제의 책이 주목받겠다’는 감이 생겼고, 그게 정말로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예견하는 ‘예민함의 촉수’가 무뎌진 것을 넘어 아예 사라져 버렸다고 느낀다.

이 현실을 더 심각하게 마주하는 건 동료들과 대화할 때다. 언제부턴가 동료들이 하는 말의 절반 이상을 알아듣지 못했다. 동료들의 수다에는 요즘 눈에 띄는 사람, 최근에 재밌고 웃긴 것, 유명해진 곳,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언제부턴가 이런 대화가 나올 때면 두려웠다. 모르는 걸 들키기 싫어 슬며시 웃었고 말끝을 대충 얼버무리며 호응했다. 태연한 표정과는 다르게 마음속에선 얼른 다음 화제로 바뀌기를 간절히 바랐다.      


세상 느린 매체인 책을 만드는 사람은 실은 세상 제일 빠른 사람이어야 했다. 매일 온라인 서점의 일간 순위를 넘어 유튜브 인기 급상승 영상, OTT 인기 순위, 음악 차트, 인스타그램, 트위터 그리고 내가 아예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곳에서의 화젯거리를 꿰고 있어야 했다. 책을 기획하는 일을 하면서 트렌드를 들여다보지 않는 건 직무 유기였다.

버거웠다. 이 모든 화젯거리가 나에겐 전혀 즐겁지 않았다. 곧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서 잊히는 게 반복될 텐데 의미 없이 느껴졌다. 반짝반짝한 눈으로 이 모든 걸 즐겁게 이야기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나는 이 일을 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홍수 속에 떠밀려서 계속 가라앉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이리도 게으를까?’ 스스로를 비난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다각도로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책을 만들고, 아이들을 챙기고, 운동하고, 사진 찍고, 글을 쓰고, 작지만 어학 공부도 시작했다. 일만 있었던 일상의 틈을 조금씩 벌려 취미의 영역을 만든 해였다. 매일 이 모든 것들을 부단히 지키려 애쓰는 사이, 주위를 둘러보니 나 홀로 외딴섬에 정박해 있었다.      


‘기본기’라는 랜턴을 다시 부여잡고

이번 주 어느 저녁,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가 열등감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내 안에 들끓는 감정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서둘러 짐을 싸서 집에 왔다. 저녁밥을 챙겨 먹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다음 날 아침엔 평소대로 운동을 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온라인 서점 순위를 꼼꼼히 살피고, 지금 만들고 있는 책의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기획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열심히 찾아 안건을 올렸다. 동료들이 재미있다고 말한 사람들도 기억해 뒀다가 찾아봤다. 다행히 내가 봐도 흥미로웠다. 금요일인 어제저녁은 퇴근하기 전에 서점에 들렀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서점에 가자’고 이 일을 시작할 때 나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다시 기본을 챙기다 보니 요동치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래도 기본은 지켰다’는 근거가 내게 있으니까. 영양제를 챙기면 건강이 덜 불안하게 느껴지듯, 일상의 기본을 챙기면 삶이 덜 불안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도 이 ‘불안이’와 ‘열등이’는 늘 나와 함께할 거다. 하지만 아무리 어두컴컴하게 느껴지더라도 더듬거리며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디면 된다. 매일 층층히 쌓아올린 기본기가 작은 랜턴 불빛이 되어 나아갈 방향을 점차 선명히 비춰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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