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과 열심 Nov 08. 2024

책은 인연을 싣고

2024년의 마지막 책을 마감하고 쓰는 글

오늘은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날이다. 어쩌면 일 년이라는 시간을 오늘을 향해 달려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올해 마지막 책을 드디어... 마감했다!

이번 책을 만들며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에 대해 배웠다. 작은 요소도 미루지 않고 챙겼고, 디자이너님께도 다음 주 일정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렸다. 내가 부지런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수월해진다는 걸 깊이 체감했다.

따로 요청하지 않았는데 디자이너님께서는 수정 파일을 당일에 보내주셨고 덕분에 마지막까지 꼼꼼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님께서도 늘 모든 사안에 빠르게 긍정적으로 피드백을 주셨다.


출근길에 만난 요정

올해 만든 책 중에 가장 편안하게 마감하면서도 마음 한 편엔 ‘이렇게 순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변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아침 운동을 포기하고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출근하자마자 챙겨야 하는 사항을 떠올렸고 그렇게 회사에 다다르고 있는데, 뜬금없이 불쑥 한 녀석이 등장했다.     


방아깨비였다. 내 검지 한 마디 정도로 작았다. 의아했다. 어제는 재택근무를 하느라 한 번도 차 문을 열지 않았는데, 도대체 언제 어떻게 들어왔을까?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방아깨비는 밖으로 나가려고 점프하다가 차 앞 유리창에 여러 번 부딪혔다. 바로 지하 주차장에 진입한 상황이라, 창문을 열어 내보낼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주차해서 휴지를 꺼내 이 친구를 조심스레 손에 담았다. 그러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회사 앞 화단에 놓아주었다. 한 생명에게 평화를 찾아줘서 기뻤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친구를 만나자마자 ‘오늘 마감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 친구를 보자마자 경직되었던 마음이 풀어졌으니까. 덕분에 회사에 가서는 한결 가뿐하게 디자이너님께 수정 파일을 보냈고, 동료들과 우연히 만나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다시 한번 수정 파일을 점검하고 무사히 인쇄소에 마감 데이터를 올렸다. 디자이너님과 작가님께 감사 메일을 보냈고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으나, 표지에 들어가는 작가님 소개 글에서 미처 살피지 못한 요소를 발견했다. 디자이너님께 ^^; 땀방울 이모티콘이 섞인 메일로 다시 수정 파일을 요청했고 5시 40분 진짜로 마감할 수 있었다.


퇴근길에 받은 선물

올해 마지막 책을 마감하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가뿐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다. 그때 작가님께 전화가 왔다. 방송작가 시절에 만난 대선배님이자, 사진을 공부하도록 이끌어주신 분. 작가님께서는 다른 분을 만나러 왔는데 마침 우리 회사 근처라고 하셨다. 퇴근 시간이라 엘리베이터는 만원이었고 수많은 계단을 뛰어내려 한달음에 작가님을 뵈었다.

작가님께서 만나려는 분은 이번에 작가님의 새로운 책을 만드신 출판사 대표님이셨고, 대표님께서는 막 인쇄되어 나온 작가님의 책을 선물로 건네주셨다. 그리고 작가님께서는 자신의 오랜 여정이 담긴 그 귀중한 책의 첫 사인을 내게 해주셨다. 누군가의 첫 사인본을 받는다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작가님은 내게 이렇게 써주셨다.      


“어여쁜 OO에게 사랑을 담아.”      


그 따스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책을 안고 집에 왔다.      


작가님을 11년 전에 만났다. 그때는 몰랐다. 작가님의 첫 사인본을 내가 받게 될 줄은,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 깊이 이어질 줄은. 20년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하게 작가님과 나는 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책이 맺어준 인연

이번에 마감한 책은 퇴사한 동료분이 기획한 책이었다. 이 책을 내가 맡게 되던 날 기분이 묘했다. 이 책과 나는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내가 심하게 겪었던 주제의 책이었다.      


책을 마감하고 작가님께 이런 메일을 보냈다.      



이번 책을 만들면서 '책도 인연이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과거에 있었던 일이 이렇게나 책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줄은 전혀 몰랐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내내 깊은 치유를 받았고, 용기와 응원을 가득 채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 더 선명하게 방향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제일 처음 원고를 읽은 제가 이렇게 큰 울림을 받았으니, 분명 독자분들께도 같은 온기로, 어쩌면 훨씬 더 크게 도움을 주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많은 분이 일상에서 오래오래 애정하는 책으로 남길 바랍니다.



되돌아보니 나는 ‘책’을 매개로 엄청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 인연들을 소중히 정성껏 귀하게 대하자고 또 한 번 다짐했다.      


올해 책을 만들며 좌절한 순간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던 나에게도 고맙다.


방아깨비 구하기 대작전! 방아깨비야, 실은 오늘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 건 오히려 너였어.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한강 작가님의 수상을 축하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