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누군가에게서 신뢰를 얻다
서점에서 ‘고양이 사진가’로 유명한 이용한 작가님의 책을 보다가 “고양이가 앞발을 살포시 올려놓는다면 당신을 무척이나 신뢰한다는 뜻입니다”라는 글귀를 보았다. 이 문장을 보자마자 지난주 주말 내게 일어난 마법 같은 일이 생각났다.
고민하다가 올해 연말에 있을 단체 사진전에 뒤늦게 참여하기로 했다. 전시의 주제에 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 집에서 차를 타고 30분쯤 걸리는 낯선 곳에 내렸다. 무엇을 담아야 할까 카메라를 매고 막막히 걷다가 어느 공사장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흩어진 공사 부품들, 늘어선 굴착기, 어딘지 예스러운 철로, 화물열차 등의 풍경을 찍다가 멈칫했다.
광활한 공터 한쪽 구석엔 그곳을 지키는 ‘개’가 있었다. 내가 살짝 다가가자 그 개는 몇 번 짖다가 이내 경계심을 풀었다. 덕분에 그 개와 너른 공터를 사진에 함께 담았다. 촬영한 사진을 선생님께 보내드리니, 선생님께서는 이 개 사진으로 전시 작품을 정하자고 하셨다. 이 개를 만난 건 내겐 천운이었다.
그런데 어딘지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리 전시 막바지에 급하게 참여하는 거라고 해도 스스로 인정할 만큼의 시간을 쏟지 않았다는 게 걸렸다. 그리고 이 개를 내가 ‘사진으로 이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샘솟았다. 피사체와 교감하지 않은 사진으로 전시를 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공사장을 쏘다녀도 이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지 걱정됐다. 어떻게 하면 이 개가 있는 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카메라를 켰다. 이전에 촬영했던 사진을 찾았고 그 사진을 지도 삼아 눈에 보이는 풍경을 하나씩 대조해나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정말로 사진과 같은 배경이 펼쳐진 곳에 그 개가 있었다. 카메라를 든 나를 기억하는지 전혀 경계하지 않았고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자 연신 꼬리를 흔들어주었다. 나는 직감했다. 이 아이가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임을. 당황하지 않도록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개는 반갑다는 듯이 내 손을 핥기 시작했다. 나도 겁내지 않고 이 친구의 얼굴을 쓰다듬었고 개는 내 손길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러더니 내 손바닥 위에 자신의 앞발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렇게 이 아이와 손을 맞잡았다.
기분이 좋았는지 이윽고 배도 뒤집어주었다. 나에게 보여주는 최상의 헌사, 최고의 신뢰 표현이다. 그런데 배를 보니 젖이 불어 있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이 아이의 얼굴부터 배까지 한참 쓰다듬어주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도 없는 넓디넓은 공사장, 그곳에 홀로 있는 개 옆에 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왜 내 눈물 둑이 터졌을까. 이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져서일 수도 있고, 이 친구가 이 공간에서 묵묵히 지켜왔던 시간이 떠올랐고, 낯선 나를 받아주었다는 감동까지 겹쳐 복합적인 감정들이 뭉텅이처럼 올라왔다.
애써 울음을 멈추고 아이의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물은 새로 갈아져 있었고 아이는 생각보다 깨끗했고 햇볕 가림막도 설치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살뜰한 보살핌을 받는 게 틀림없었다. 안도했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 간식 서랍에서 개껌 두 개를 챙겨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껌을 건네자 처음 보았는지 킁킁대다가 곧 귀엽게 두 손을 모아 쥐고 천천히 씹어서 삼켰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 아이와 스스럼없이 교감할 수 있었던 건 나의 네 마리 개들 덕분이기도 하다. 나의 어여쁜 개들에게도 고마웠다.
공사장 건물이 완성될 쯤, 이 아이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아니 그 후에도 이 아이에게 평화와 행복이 깃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사랑해, 건강해, 행복해”라고 아이를 바라보며 주문을 외우듯 계속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