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에 대하여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93세 할아버지가 네일샵에 찾아오신 사연이 나왔다. 네일샵 사장님께 할아버지는 손톱을 깎아줄 수 있냐고 조심스레 여쭤보셨다고 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손이 떨려서 손톱을 자르실 수 없었던 거였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 달 전 내가 똑같이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한 달 전에 외할머니를 외삼촌 집에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삼촌이 몸이 불편하기에 엄마가 이제 할머니를 우리 집에 모시고 싶다고 했다. 비어 있던 오빠 방을 치우고 급한 대로 이부자리를 마련해드렸다. 그리고 할머니의 긴 손톱을 발견한 엄마는 할머니께 손톱깎이를 건네 드렸다.
엄마가 할머니의 목욕물을 받고 요리를 준비하며 분주한 사이, 손톱깎이를 손에 들고 머뭇거리던 할머니는 손톱이 왜 이리 안 깎이는지 모르겠다며 깎아줄 수 있는지 내게 물어보셨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할머니는 손톱깎이를 누를 힘이 없으신 거였다.
할머니는 오빠 방에서 부엌 식탁까지 오는 길도 힘겨워하셨다. 거의 기다시피 하며 오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천천히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게 가능한 상태가 아니셨다. 할머니를 보며 깨달았다. 똑바로 식탁에 앉는 일, 바지를 엉덩이 위로 추켜올리는 일, 밖에서 걸어 다니는 일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에겐 기적 같은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주무신다. 식사하실 때 잠깐 뵈면 여전히 손을 떠시고 멍하니 앉아계신다. 이전처럼 대화도 원활하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할머니께 용돈을 받았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억척스레 살림을 일구던 할머니는 손주들 용돈을 턱턱 아낌없이 주셨다. 그리고 늘 단정하고 멋스럽고 눈이 반짝이셨다. 지금의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불과 작년만 해도 할머니와 티키타카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누었다. 일 년 사이 급격하게 몸이 안 좋아지신 거다.
얼마 전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약 뚜껑을 돌리지 못해 약을 드시지 못하고 계셨다. 할머니가 할 수 없게 된 것을 또 하나 알게 됐다. 곁에서 할머니를 보며 나이듦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몸은 고장 나게 돼 있고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은 같은데, ‘이렇게 아등바등 요동치며 살 필요가 있을까?’ 일상의 많은 것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삶이 유한한 만큼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오늘 잘한 일 한 가지가 있다. 할머니 방에 텔레비전을 놔드렸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오늘 이십 분 정도는 덜 누워 계셨다. 그동안 가족을 잘 보살펴오신 만큼 이제는 할머니가 돌봄을 받으실 때다. 아직 할머니의 생은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행복한 기억을 가득 품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