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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Dec 18. 2024

취약함을 드러낸다는 것

시작을 만드는 용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진전이라는 걸 해봤다. 단체전이었기에 전시 오프닝 때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소회를 이야기했다. 나는 “올해 3월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였는데 이렇게 전시회를 하게 되다니 기적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황금색 가위로 다 함께 테이프 커팅을 했다.

한창 일하고 있어야 할 수요일, 회사가 아닌 인사동에서 오전엔 도슨트로, 저녁엔 사진작가로 하루를 보냈다. 내가 벌인 일이지만 마치 다른 사람의 배역을 대신 맡은 것처럼 낯설면서도 설렜다.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일

참여하신 다른 분들처럼 오랜 기간 작품을 찍지도 않았고 여전히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기에 사진 모임 동기들과만 나누고 아무에게도 전시를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또 언제 전시회를 하게 될지 모르니까. 기회란 매번 주어지는 게 아님을 살면서 무수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라는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딘지 부끄러웠다.


올해 처음 알게 된 동료가 월요일 오전 사내 메신저로 전시에 다녀온 사진을 보내왔다. 일주일 전 밥을 먹다가 이번 주말에 뭐 하냐는 질문이 나왔고, 주말 내내 전시장 근처에서 사람들과 만날 예정이었기에 자연스레 사진전을 말하게 되었다. 와줄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주말에 귀한 시간을 내서 정말로 와주었다. “가볍게 들러보자는 마음으로 간 전시였는데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 깊이 있는 전시였어요”라고 예쁜 말도 덧붙여주었다.

나중에 도록을 보여줄 테니 굳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몰래 꽃을 놓고 간 동생도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초대하는 일

추운 날 애써 찾아와준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나라는 사람의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응원해주는 마음들을 가득 받았다. 지금껏 어떤 전시회나 연주회를 해본 적 없고, 결혼식도 안 해봤기에 ‘나라는 사람을 초대하는 일’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와준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 인연들을 더 잘 보듬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가족들과도 좋은 추억을 쌓았다. 함께 내 사진을 보고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만둣국을 먹고 한옥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송년회를 했다. 작년에 가족이 된 새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작가님, 축하드려요. 멋있어요” 하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나누는 사이, 우리가 진짜로 가족이 되었다고 느꼈다.



사진 전 오프닝 날 선생님께선 “하고 싶은 말을 건네는 사진을 찍자”, “많이 찍은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겼다.      


이번 사진전을 통해 가장 깊이 깨달은 건 ‘취약함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전시장 한 편에 내 작품이 걸려 있다는 게 어딘지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라도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점차 들었다. 뭐든 시작이 있는 거니까, 첫술부터 배부를 순 없으니까, 시작을 만들어야 무언가라도 될 수 있는 거니까.      


이제 작품은 철거되었지만, 이번에 느낀 소중했던 경험을 내 추억 서랍장에 차곡차곡 담아두려고 한다. 그리고 시작을 망설이는 어느 날 꺼내 ‘이제 한번 점을 찍어보자, 생각보다 별일 안 일어나’ 하고 용기를 채워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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