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만드는 용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진전이라는 걸 해봤다. 단체전이었기에 전시 오프닝 때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소회를 이야기했다. 나는 “올해 3월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였는데 이렇게 전시회를 하게 되다니 기적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황금색 가위로 다 함께 테이프 커팅을 했다.
한창 일하고 있어야 할 수요일, 회사가 아닌 인사동에서 오전엔 도슨트로, 저녁엔 사진작가로 하루를 보냈다. 내가 벌인 일이지만 마치 다른 사람의 배역을 대신 맡은 것처럼 낯설면서도 설렜다.
참여하신 다른 분들처럼 오랜 기간 작품을 찍지도 않았고 여전히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기에 사진 모임 동기들과만 나누고 아무에게도 전시를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또 언제 전시회를 하게 될지 모르니까. 기회란 매번 주어지는 게 아님을 살면서 무수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라는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딘지 부끄러웠다.
올해 처음 알게 된 동료가 월요일 오전 사내 메신저로 전시에 다녀온 사진을 보내왔다. 일주일 전 밥을 먹다가 이번 주말에 뭐 하냐는 질문이 나왔고, 주말 내내 전시장 근처에서 사람들과 만날 예정이었기에 자연스레 사진전을 말하게 되었다. 와줄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주말에 귀한 시간을 내서 정말로 와주었다. “가볍게 들러보자는 마음으로 간 전시였는데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 깊이 있는 전시였어요”라고 예쁜 말도 덧붙여주었다.
나중에 도록을 보여줄 테니 굳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몰래 꽃을 놓고 간 동생도 있었다.
추운 날 애써 찾아와준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나라는 사람의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응원해주는 마음들을 가득 받았다. 지금껏 어떤 전시회나 연주회를 해본 적 없고, 결혼식도 안 해봤기에 ‘나라는 사람을 초대하는 일’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와준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 인연들을 더 잘 보듬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가족들과도 좋은 추억을 쌓았다. 함께 내 사진을 보고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만둣국을 먹고 한옥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송년회를 했다. 작년에 가족이 된 새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작가님, 축하드려요. 멋있어요” 하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나누는 사이, 우리가 진짜로 가족이 되었다고 느꼈다.
사진 전 오프닝 날 선생님께선 “하고 싶은 말을 건네는 사진을 찍자”, “많이 찍은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겼다.
이번 사진전을 통해 가장 깊이 깨달은 건 ‘취약함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전시장 한 편에 내 작품이 걸려 있다는 게 어딘지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라도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점차 들었다. 뭐든 시작이 있는 거니까, 첫술부터 배부를 순 없으니까, 시작을 만들어야 무언가라도 될 수 있는 거니까.
이제 작품은 철거되었지만, 이번에 느낀 소중했던 경험을 내 추억 서랍장에 차곡차곡 담아두려고 한다. 그리고 시작을 망설이는 어느 날 꺼내 ‘이제 한번 점을 찍어보자, 생각보다 별일 안 일어나’ 하고 용기를 채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