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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Dec 07. 2024

올해의 선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12월이 되자, 이메일 하단에는 연말을 잘 보내시라는 인사로 끝맺음하고 있다. 연말은 늘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올해 무엇을 하고 살았나, 한 해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 회사에서도 모든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올해의 상황과 내년의 목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음에도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공동의 목표를 함께 가진다는 데 동질감을 느꼈다. 


각자의 발표가 끝나고 인사팀에서 깜짝 준비한 이벤트가 있었다. 선물 증정 타임이었다. 커다란 화면에 선물이 하나씩 공개됐다. 발뮤다 주전자부터 마샬 스피커, 아르떼미데 스탠드, 에어팟, 아이패드, 다이슨 청소기까지…. 10여 개의 선물이 등장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이 상품을 타는 게 된 것처럼 제발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마지막 상품까지 역시나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우연한 선물을 받아서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 아무것도 받지 못한 나는 허탈해졌다. 생각해보면 같은 브랜드 제품은 아니지만, 비슷한 기능이 있는 물건들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내게 필요 없는 물건들이었는데도 마치 내 몫을 뺏긴 것처럼 왜 이리도 아쉬워했을까? 참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로구나, 하고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났다.      


얼마 전 스무 살에 만났던 친구와 10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친구는 예전 사진을 보다가 내 생각이 났고, 혹시 카톡 프로필에 떠 있는 연락처가 내 것이 맞는지 궁금해서 연락했다고 했다. 자신은 다단계가 아니니까 의심하지 말라며 우스갯소리로 대화의 물꼬를 튼 친구와 오랜만에 즐겁게 카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림을 잘 그리던 친구는 웹툰 작가가 되어 있었고, 40킬로그램이 넘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그 10년이란 시간 동안 친구와 나는 일도 일상도 비슷한 모양으로 닮아 있었다. 먼 훗날 친구의 웹툰 책을 내가 만들고, 반려견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즐거운 기분이 퐁퐁 솟아났다.     


친구는 다른 친구의 소식을 물었고 다른 친구와는 내가 연락하고 있었기에 셋이 만나는 약속이 빠르게 잡혔다. 12월 말 평일 오전, 우리의 추억이 있는 동대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웹툰을 그리는 친구는 살이 많이 쪘다며 자신을 보고 놀라지 말라고 했고, 아이 엄마가 된 친구는 만삭 때 몸무게를 유지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요즘 흰머리가 많이 생겼다고 나 역시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아이 엄마인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일정을 공유해줬는데, 그 일정엔 ‘서로 흠칫하지 말기 약속’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약속이 너무 재밌어서 빙그레 웃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끝내자, 오늘 나도 큰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이었다. 10년 만에 만나는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고 또 얼마나 그대로일까? 예상하건대 겉모습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우리는 분명 여전할 것이다. 아마도 내가 무척 기뻐할 연말의 설레는 선물을 품고, 올해 받았던 또 다른 선물들을 생각해봤다. 

일에서 경험한 크고 작은 도전들, 그 사이에서 받은 온기, 아이들과 뚜벅뚜벅 고스란히 느꼈던 사계절, 오디오북과 음악을 들으며 출퇴근했던 안락한 시간, 동료들과 함께 마음의 점을 찍었던 점심시간, 좋은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꽃 피우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참 길고도 짧았다. 내년엔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걸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진한 진심과 감동, 응원을 가득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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