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ndys Sep 12. 2021

침묵을 멈추고 이해하길 시작하면서부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밖에서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사소한 일도 집에서는 늘 문제가 되곤 했다. “사소해서” 시작된 엄마와의 102,938번째 전쟁. 엄마와 나는 반복되는 이 싸움의 끝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처음 싸우는 것처럼 서로 온 힘을 다해 전투적으로 싸우곤 했다. 서로가 서로의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지겹고도 지난한 싸움. 우리의 결말은 늘 그래 왔듯 정해져 있었다. 언성이 점점 높아지다 결국 더 못된 마음을 먹은 내가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끝이 나는 파국의 시나리오.


돈 얘기에서 시작된 가벼운 대화는 “이럴 거면 왜 낳았어!”라는, 기어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가 내뱉고 나서야, 끝이 난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말은 내 아킬레스건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을 내뱉자마자 내가 미치도록 후회할 거라는 사실도, 상처가 되는 모진 말을 듣고 엄마가 전투력을 상실해 방으로 들어가 버릴 거라는 것도, 우리의 싸움은 그제야 끝이 날 거라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때론 누군가를 잘 알고 있다는 건 독이 되어 의도적으로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야 만다. 그 말을 내뱉고 어깨가 축 처진 엄마를 볼 때면 이겼다는 후련함보단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말이란 건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늘 조심하라던 엄마의 잔소리가 또 한 번 머리를 스친다. 그제야 아차 싶은 마음에 ‘아니야 엄마, 방금 그 말은 진심이 아니야’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나는 약고 비겁한 인간이라 그에게 번번이 솔직하게 사과하지 못했다.


엄마와의 이런 소모적인 싸움은 부끄럽게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며칠에 한 번꼴로 계속됐다. 이유 없이 매일 같이 날이 서있던 그때의 나와 엄마. 이런 파국의 패턴을 몇 번 더 반복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난한 말싸움이 아니라, 진심 어린 대화라는 걸. 서로에게 새로운 상처를 입히는 게 아닌, 예전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이라는 걸.


머리론 알지만 늘 벽과 대화하는 것 같아 미뤄왔던 엄마와의 대화 타임은 의외의 시기에 시작됐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재택근무하는 횟수가 늘어나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자 전업주부인 엄마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난 것이다. 한 번 두 번 엄마와 동네 산책을 다니며 얘길 나누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엄마는 밖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면 언니와 내 자랑을 그렇게 한다는 거다. 밖에 나가서 우리들 흉은 절대 안 본다고, 딸들이 그렇게 엄마한테 잘하는 걸 자랑하고 다닌다고, 엄마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언제였는지도 모를, 아주 작은 일도 엄마는 아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들이 많았고, 엄마의 기억은 고스란히 딸들의 자랑으로 이어진 듯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 나와의 관계에서 나는 제대로 된 효도 한 번 못하고, 매번 그럴 거면 왜 낳았냐고 바득바득 따지기만 하는 막내딸인데… 이런 딸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엄마를 생각하니 지난 내 모습이 더 못나게 느껴졌다.


그와의 삐걱대던 관계는 점점 대화하는 횟수가 늘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날이 늘어가며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졌다. 매일 붙어 있을 때면 언제 부딪힐지 몰라 가급적 대화를 피하며 삼갔던 지난날의 뾰족한 관계와는 사뭇 달라진 둥그런 모양의 관계. 영원히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고 체념했던 관계는 어느샌가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달라져있었고 그 시작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불쑥 계기가 되어주었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나처럼 엄마와, 누군가와 이런 비슷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 '그러니까 여러분도 이제 그만 싸우고, 대화를 해보세요!'라는 게 아니다. 그저, 포기하고 체념하고 '이건 아니야'하고 단념할 게 아니라 조금은 더 시간을 주고 지켜보아도 된다는 것, 그 누군가가 나에게 적인지 동지인지, 그 순간에 쉽게 단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소한 계기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