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ndys Nov 03. 2021

30대의 독립에 관하여

2020년 12월. 만 서른의 나이에 난생처음 독립 다운 독립을 하게 됐다. 30대의 독립이다. 내게 독립은 오랫동안 꿈꿔온 근사한 도전이자 어른이라면 이제는 꼭 치러야만 하는 큰 짐이기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하는 '어른스러움'에는 독립이라는 생활의 범주를 포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하루 3~4시간의 통근 길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터라 하루빨리 직주 접근성을 높이고 싶었다. 그것이 곧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길이고 그게 진짜 어른의 삶이라 믿었기에..


다행스럽게도 나는 서른이 지나기 전에 독립을 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 독립을 하기로 마음먹자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을 알아보고, 계약서를 쓰고, 이삿짐을 싸고, 이삿짐센터와 청소업체를 찾아 예약하고, 실제 이사를 하는 일까지…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던가. 나는 운 좋게도 독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99%의 사람들이 친절과 다정함 덕분에 무사히 큰일을 잘 치러낼 수 있었다. 


물론 독립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번거롭고 귀찮았다. 챙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일임하거나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마도 통근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았다면, 내가 좋아하는 동네가 아니었다면, 예전의 삶에 그럭저럭 만족했다면 내 첫 독립은 귀찮음과 번거로움에 패하여 무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들 이렇게 시작하는 걸까? 처음이니까 그런 거겠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난하게 느껴지는 한편 문득 나보다 몇 년은 앞서 자취 or 독립을 시작했던 친구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이사 준비가 끝나갈 즘엔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진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니 경험해 볼 만한 것 같기도 하네라는 이상한(?) 결론에 다다랐다는 건 안 비밀. 


다음 달이면 독립을 한지 꼭 1년이 된다. 한 1년쯤 살아보니 그게 월세 살이든, 전세살이든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든다. 정말 그렇다. 그리고 내 시간을 100% 내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도 독립의 장점 중 하나고 말이다. 


독립한 지 1,2달 차에는 이케아와 오늘의 집, 집 꾸미기를 들락거리며 가구와 살림살이를 하나씩 사들이는 '소비의 즐거움'을 느꼈다면 3~4개월 정도가 지나고는 나만의 생활 패턴을 찾고 루틴을 만들어 '시간을 가꾸는 즐거움'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 1년을 바라보는 지금은 '내 삶을 가꾸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나의 즐거움은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는 보통의 일상에서 오는 편안함, 무탈한 하루를 보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가족 혹은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정서적인 안정감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겠지.


매일 머리카락 뭉텅이, 화장실 청소, 빨래 널고 개켜기 등의 집안 일과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느라 보통의 일상을 '우아하고 세련되게' 살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나는 서른에 독립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하는 모든 이에게  '역시 독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깃들기를. 모든 30대의 독립에 응원을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한 나의 단짝 H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