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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dys Nov 12. 2021

연차가 곧 능력은 아니다.

5년 전, 뉴욕에서 인턴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벌써 4개의 회사를 거쳐왔다. 그 사이 나는 61개월 경력, 그러니까 약 5년 정도의 경력을 쌓았고, 이제 어디 가서 빼도 박도 못하는 경력직 직원이 되어버렸다. 그 말은 즉 25살의 풋풋하던 사회 초년생은 제법 퀭한 사회중년생 직장인이 되었다는 뜻이며, 어느 조직을 가더라도 나이나 (현재 직무) 경력 면에서 신입 혹은 막내 자리는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의 5년짜리 커리어에도 많은 굴곡과 변화가 있었다. 1년간 미국 인턴십을 했던 백화점부터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취급하던 외국계 회사,  커리어의 5할을 차지하는 맛집 검색  추천 서비스를 하던 스타트업, 그리고 지금 재직 중인 (다니고 있으므로 업종은 비공개)까지... 같이 일하는 동료는 적게는 1, 많게는 250명까지 다양했고 회사의 분위기나 상사 스타일,  처리하는 방식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함께 일해온 동료도, 그들의 관심사도 모두 달랐다. 돌이켜보면  공통점이라곤 하나 없는 회사들을 거쳐온  같다. 아마 내가 매번 새로움을 추구하는 새추파(새로운 환경 추구파)이자 그동안 장기적인 커리어 플랜 없이 이직을 해와서 그런  아닐까 싶다.


아! 공통점을 찾자면 내가 겪어온 회사들은 내게 숱한 눈물과 뼈 때리는 피드백을 선사하며 No willingness to learn, No growth를 가르쳐줬다는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회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연차나 직급이 높다고 해서 곧 그 사람이 유능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연차가 쌓인다고 해서 능력치가 저절로 쌓이는 건 아니라는 것, 배움과 성장엔 끝이 없고 조직에 속해있더라도 배우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조직생활을 안 해도 정말 당연한 것들인데,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조직에서 결코 당연한 건 없다는 걸,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그동안 내가 만난 상사와 시니어 동료들을 생각하게 된다. 5년 차 직장인으로서 장기적인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들면서부터다. 언젠가 만났던 동료는 도전이나 새로운 기획과는 거리가 멀어 매번 같은 기획서를 내는가 하면, 어떤 상사는 업무 관련 내용을 물어보면 '모르겠다'라는 대답을 자주 하곤 했다. 한 상사는 정치에는 능했지만 정작 팀원들에게는 서툰 리더십과 좁은 업무 스콥으로 늘 그가 가진 리더 자질에 늘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커리어를 시작하던 사회초년생일 땐 일에 대한 열정이 빼짝 마르고 성장 욕구가 없는 상사와 일한 적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해서 배우고 성장한 부분도 많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며 무엇보다 일을 하면 할수록 가장 중요한 건 회사 내의 정치나 친분이 아니라 '실력 있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계기가 됐다. 연차가 높다고, 직급이 있다고 그들 모두가 실력자는 아니라는 것을... (물론 좋은 동료를 만난 게 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많다!)


(권력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내가 언젠가 시니어나 디렉터, 헤드급 타이틀을  자격이 있는지, 그런 직급을 달았을  좋은 리더 혹은 동료가   있을지, 동료들이 인정할 만큼  연차에 맞는 충분한 능력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는지, 조직에 충분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동료에게 충분히 설득하고 진행시킬  있는지, 그리고 나는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자꾸만 든다. 연차가 높아지고 경력이 쌓일수록 나의 롤모델과는 거리가 멀었던 상사와 동료처럼 되는  아닐까 싶어 덜컥 겁도 나고. 너무 안일하게 새로운 배움과 도전없이 똑같은 기획만을 반복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나는 어떤 실력을 갖고 있는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서류나 면접에서 그저 운 좋게 통과해서 높은 연봉을 받아내는 걸 목표로 하는 게 아닌 진짜 실력 있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일잘러가 되고 싶다. 나보다 나이는 7살이나 어렸지만 에너지 넘치고 자기가 하는 일에 늘 프라이드를 갖고 있던, 일잘러 상사 K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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