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미콜론 Jan 13. 2022

초속 1mm, 내 마음의 속도

나보다 훨씬 나은 그들

비가 내린 다음날, 길거리에 낯익은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그것은 바로 달팽이와 지렁이들이 길거리 위에서 축제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바닥에 몸을 부대끼며 즐거움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그들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 발밑을 조심하며 출근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밟지는 않을까,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그리고는 그렇게 곁에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바라봤었다.




누군가는 그들의 움직임이 느려 터지고 답답하게만 느껴진다고 말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런 걸 왜 보고 있느냐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어째서 그들의 그런 모습을 우두커니 선 채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내 생각과 마음은 스스로 느끼고 있던 것보다 훨씬 느렸기에,

깨닫는 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들은 느리지 않다.

겉보기에는 그 자리에서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되려, 느린 것은 내 마음과 행동이라는 것을

요즘 들어 부쩍 실감하고 있다.


무언가를 시도하려 할 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몇 번이나 주저했는가.

마음을 먹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는가.


느리더라도, 착실히 자신의 갈길을 가는 그들이

그들의 덩치보다 수백 배는 큰 나보다 더 빠르다고.


오히려 느린 것은 나라고  자리를 고백해본다.




살다 보면 다양한 결정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심판대에 올려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철저히 심판한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이러한 행위가 켜켜이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란 틀에 갇힌 나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어쩌면, 그들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그 순간을 만끽하던 작은 축제에서 불청객이었을 내게도

그들 같은 모습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이 알려준 것을

이렇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순간 멈춘 듯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내 마음과 행동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로부터 살아가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마음과 행동엔 속도가 생겼다.

초속 1mm.


보잘것없어 보이는 속도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나보다 더 낫겠지만.


그래도, 이것이 현재 내 마음의 속도이다.

작가의 이전글 5년의 시간, 그리고 세미콜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