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싶을 때
어릴 때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인 지금은 어릴 때가 좋았다며 그 시절을 추억한다.
내가 빠르게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멋진 부모님을 보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본다.
무력함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단지 기운이 없고 무언가에 대한 의욕이 없는 형태부터
자신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정신적 차원까지.
어린 나는 후자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은 부끄럽게도 부모님께서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그분들의 삶을 판단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인 상태에서의 순수한 열등감은
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긍정적 작용을 한다.
그러나 손끝이 누군가를 가리키게 되는 순간, 지옥이 시작된다.
나는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저렇게만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고, 되지 말아야겠다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최고가 되기 위한,
그 존재가 되기 위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며
필요치 않다 생각되는 것들을 과감히 버리기 시작한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지만
내 곁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나는 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다. 이건 나의 이야기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되찾는 여정을 떠나고서야,
수년이란 여행길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홀로 설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손가락을 한번 튕기면 절반이 사라지는 타노스처럼,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킬 때마다 나에게는 불필요하다며 버렸던
내 과거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참회.
사람인이라는 한자는
사람이란 존재가 홀로 설 수 없기에,
서로 기대며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마음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싶고 의존하고 싶었던 그 여린 마음을 마주했기에
짧지만 긴 시간을 헤매며 찾아다녔던,
어릴 적 부모님을 바라보며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나를 되찾았기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강한 척했지만, 홀로 서려했지만.
결국 나는 누군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너무나 약한 존재이며
타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