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 그리고 어른과 아이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어릴 적 세상을 바라보던 나만의 눈을 잃어버렸다는 걸.
그런데, 또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 어른 흉내를 하며 다녔는지.
어른들이 하는 거라면 나도 하고 싶어서 수도 없이 안달 났었다.
체스나 오목 같은 보드게임을 가져와서 설명하고
그것을 향유하던 친구들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멋지다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이야, 어른들의 전유물을 향한 동경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겐 여러 가지 취미들이 있는데, 개중에는 키보드 윤활 같은 마이너 한 것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할 때 나름대로의 고양감 또는 성취감을 맛본다.
누군가는 변태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감정의 출처를 찾아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어린 시절, 세상을 향한 나의 동심이 어떻게든 살고자 발버둥 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단순하게 몇 살 이후부터는 어른입니다라고 정할 수 있겠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그리고 이는 마치 흑백 그라데이션을 그림을 보며,
어디서부터 검은색이고 어디까지가 흰색인지를 물어보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도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갈망을 마음 한편에 고이 모셔놓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고군분투할 필요도,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집착하고 있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를 그냥 아는 것처럼
흑백 그라데이션을 보고 흰색과 검은색이 있다는 사실을 그냥 아는 것처럼,
어린아이인 내가 있음으로서 비로소 어른인 내가 존재하는 것이기에.
결국, 어렸던 나는 어른이려 했기 때문에
어른인 나는 어린이였기에 서로가 잃어버린 반쪽을 그토록 찾아다니게 된 거였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 흐름의 끝엔, 어린아이이면서도 어른이 된 내가 자리하고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잔인하리 마치, 나로 온전히 살았던 적이 없었기에
새로운 시작에 온 몸을 내맡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