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지금처럼 밝은 사람이기를
엄마가 장난스럽게 또는 호기심 가득하게 동생이 연애를 시작했다고 나에게 통보(?) 했다.
동생과 필자의 나이 차이는 4살. 그리고 23살이 된 여동생은 첫 연애를 시작했다. 썸을 타는 건 가끔 봤는데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니 걱정부터 앞서는 건 사실이었다. 요즘 뉴스만 봐도 입 밖으로 말도 꺼내기 싫은, 무서운 남녀 사이의 사건 사고가 터무니없이 많았으니까.
엄마는 동생의 첫 연애에 덩달아 신이 나신 것처럼 보였다. 성격은 어떤지, 만나서 뭐하고 놀았는지, 데이트할 때 뭘 먹는지 궁금해하셨다. 엄마의 그런 행동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도통 연애에 관심도 흥미도 없어 보여서 엄마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했으니까. 동생은 썸을 탈 때도 엄마에게는 다 얘기하는 편이었지만 나는 썸을 타고, 소개팅을 해도, 관심 있는 사람이 생겨도 쑥스러워서 엄마한테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동생의 연애 소식이 얼마나 반가우실까, 엄마는.
동생의 연애가 뭘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브런치를 쓰는 거냐 생각할 수 있는데 나 같은 성격의 언니가 또 있을 것 같아 '이런 언니'를 가진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끄적거리려고 한다.
필자는 동생의 남자 친구분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몰랐으며 뭐하는 친구인지도 물어보지 않았고 엄마를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동생 입장에서는 언니는 내가 연애하는 게 싫은가?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라고 궁금하지 않겠는가. 뭐하는 놈(?)인지, 너를 잘 챙겨주는지, 너를 힘들게 하는 건 없는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나까지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첫 연애를 시작한 동생도 엄마와 주변 친구들의 뜨거운 관심이 한편으론 부담스러웠을 거라 생각했다. 나까지 코치코치 캐물으며 동생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을 하면서 은근슬쩍 엄마에게 물어본다.
흠흠! 혜똥이 남자 친구랑 뭐 하고 놀았대?
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이런 말 낯간지러워서 하지 못한다. 평소에도 이런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는 자매도 아니니까. (그래서 이렇게 글이라도 쓰는 거다)
동생은 나보다 어른스러운 구석이 많다. 나보다 멘탈도 강하고, 씩씩하고, 말도 잘하고, 부모님을 잘 챙기는 아이다. 그래서 걱정되는 부분이 많은 동생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 한 번 안 하는 아이였고 자기 먹을 것, 사고 싶은 것 아끼면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반려견 사료와 간식을 사는데 쓰거나 부모님 또는 내가 평소에 가지고 싶어 했던 것들을 구매해 몰래 택배로 보내기도 했고, 가끔 유기견 보호소에 얼마씩 기부까지 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착한 동생이었지만 '언니의 입장'에서 본 동생은 즐거운 일도 별로 없어 보였고, 긍정적인 친구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꽁꽁 숨기고 얘기를 안 하고 있는 그런 안쓰러운 아이처럼 보였다. 그런데 연애를 시작하고 난 후부터는 티가 날 정도로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였다. 항상 무음으로 해놓던 핸드폰을 벨소리로 해놓고 연신 카톡을 주고받는 동생의 표정이 신기할 정도로 밝았다. 매일 거르던 밥도 남자 친구분이랑 데이트를 하면서 잘 챙겨 먹는다는 얘기는 내심 안심되었고 늦게 알바가 끝나 항상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남자 친구가 잘 챙겨주는 것 같아 고맙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내 동생인 네가 지금처럼 밝았으면 한다. 첫 연애의 그 감정이 오랫동안 유지되면 좋겠고 너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면 좋겠다. 아직 몇 개월 되지 않은 만큼 너도 연애의 모든 과정이 조심스러울 테니 나도 너에게 어떤 부담도 안겨주지 않을 거야. 대신 그 연애에 익숙해질 때쯤 너와 너의 남자 친구분에게 밥을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니? 꼭 그 시간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