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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rliner Apr 27. 2016

즉흥 작사하던 쿄토의 고양이

2006년 4월, 일본 교토.

- 안녕하세요, 참 좋은 날이네요.
 교토의 오래된 검은 집들 사이를 하염없이 걷다가, 한 골목에서 4월의 따뜻한 해를 맞으며 담벼락에 누워 졸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매정하게 시선을 돌릴 수 없어 인사를 건넸더니 눈을 크게, 귀를 쫑긋 세운다.
- 포크송 같은 날이지?
- 응, 맞아요.
 무슨 의미인지 알 듯도 모를 듯도 했지만 초면이고, 고양이들 사이의 표현법인가 싶어 호응해 주었다.
- 햇빛이 하얗네요. 청량하달까. 얼마 전 다녀왔던 아프리카의 해는 강하고 신경질적으로 노랬거든요. 비슷한데 아주 달라요.
- 용케 살아 돌아왔네. 가본 적은 없지만 수다를 좋아하는 이 집 할머니 말로는 거기 고양이과들은 아주 크고 사납다던데.
 사자를 말하는 건가.
- 운이 좋았는지 직접 만난 적이 없어서요.
- 포크송 같은 날이야.
 답이야 관심 없다는 듯 혼자 읊조리며 혀로 정성스레 앞발을 핥는다. 리듬을 타듯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햇빛에 털이 반짝이고, 핥는 움직임을 따라 물결친다.
- 털이 곱네요.
- 이 털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우리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을 거야. 그나저나 자기는 느릿느릿 어디를 가는 거야?
- 금각사랑 은각사를 둘러보려고요. 여기서 걸어 다닐 수 있다고 들어서요.
- 데려다 드릴게. 같이 가자.
 가볍게 몸을 일으켜 등을 한번 곧추세우더니 다시 머리를 숙여 앞발을 일자로 길게 늘인다. 꽤 날렵한 몸매다.

- 일본은 네 번째 방문이라 나름 친숙하다 여겼는데 여전히 새로워요. 술김에 친구하기로 했다가도 다시 만나면 서먹한 그런 생경함.
- 도시마다, 마을마다 얼굴이나 냄새가 다르거든. 예전에 남자친구를 쫓아 나라에 가본 적이 있는데 전혀 다른 세상이더라고. 거기 고양이들이 쓰는 사투리도 다르더라니까. 어디서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건 사랑과 음악뿐이지.
- 그게 뮤지션의 장점인 것 같아요. 사랑과 음악이 동시에 가능한!
 담벼락 끝에 다다르자 담을 타고 훌쩍 인도로 나와서는 잠시 머리를 돌려 가만히 쳐다본다.
- 그래서 말인데, 급히 떠오른 가사가 있는데 들어볼래?
- 물론이죠, 괜찮다면 고양이의 심정을 노래로 만들어도 즐겁겠어요!
- 글쎄, 그거야 작곡가가 누구냐에 따라 허락할지를 고민해 봐야겠지만.
- 그렇겠죠. 가사를 적어 둘게요, 불러주세요.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자세를 잡더니 조용히 '냐옹~' 헛기침을 한다.
- 따뜻하게 내리는 해는 밝기만
   살짝 간질이는 바람 날 내버려 둬.
   … 그리고 노래의 끝은 이런 식인 거지.
   난 우주 밖 저 별에 날아가
   나빌래.
 뭐야, 고양이의 심정이라기엔 표현이 인간적이고 내용도 순진하잖아.
- 와, 멋진데요. 언젠가 고양이님의 심정을 잘 표현할 가수가 부른다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런 가수가 있을 리 없다, 물론. 가사도 적는 둥 마는 둥.
- 그래, 비욘세 같은 가수도 괜찮고, 조수미도 나쁘지 않겠지. 작곡은 엔니오 모리꼬네 정도면 좋을 것 같고.
 이 정도 김칫국이니 '우주 밖 저 별에 날아가 나빌래' 같은 말을 가사랍시고 지껄일 수 있는 거다. 말로는 연신 칭찬을 뱉으며 적은 종이를 대충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나중에 고양이와 헤어진 후 어디 쓰레기통에 던질 생각으로.
- 곡명은 '내 작은 기억들'로 할게. 응, 그게 좋겠어.
 마스터피스를 내놓기라도 한 듯 거만한 표정으로 덧붙이며 코털을 쓰다듬는다. '좋네요.' 답은 했지만 꼬깃한 종이를 다시 꺼내 적지는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세계적인 작곡가…라기엔 꿈이나 그릇이 쥐꼬리인 티어라이너라는 인디 뮤지션이 고양이의 가사에 멜로디를 붙이고, 가장 고양이의 심정을 잘 대변할, (아마도 유일하게 고양이의 4차원 표현법을 이해할) 배우 최강희가 고양이의 가사를 노래했다.
 노래가 발표됐지만 여전히, 아무도 교토 고양이의 심정을 제대로 알지는 못 했다. 몇몇 고양이 애호가들만이 가끔 나름의 해석을 SNS에 올릴 뿐이었다.

"식당 앞에 있던 동상. 하의가 발가벗겨진 소년과 앙 물고 버티는 개의 모습이 역동적이고 개구지다."
"극우단체 차량시위를 피해 들어선 골목에서 고양이를 만났고, 얼마 후 평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가두행렬이 이어졌다."
"옛 가옥의 지붕을 다채롭게 꾸며 놓았던 한 상점. 고양이는 이런 구조물이 신경 쓰이고 번거롭다고 했다."

포크라노스 블로그에서 링크한 글입니다.

내 작은 기억들 @KYOTO
아티스트 티어라이너(Tearliner)
발매일 2016.04.25.


싱글 <내 작은 기억들 @KYOTO>는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티어라이너'가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올해 초 방송된 드라마 음악을 마무리한 티어라이너가 음악감독 직을 내려 놓고 다시 인디밴드로 돌아와 공개한 이 프로젝트는 기존에 발표하지 못했던 미완성 곡들 중에서 좋은 곡들을 엄선, 그간 본인이 여행을 다녀온 도시들을 테마로 곡을 완성해 발표하는 컨셉트다.

최강희, 천정명 주연의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모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차홍도'의 테마송이었던 '내 작은 기억들'은 차홍도를 연기한 배우 최강희가 직접 부른 곡이다.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티어라이너'가 일본 교토를 여행하면서 교토의 고양이를 모티브로 만든 이 사랑스러운  노래는 투박하지만 담백하고 사랑스럽게 노래하는 최강희의 목소리와 함께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OST에는 수록되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최근 티어라이너가 '여행'을 모티브로 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첫 번째 싱글로 낙점, 뒤늦게 음원의 형태로 정식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따사로운 봄날의 한적한 교토 골목을 연상시키는 잔잔한 연주곡 '4월의 왈츠'와 함께 두 곡을 수록, '교토'를 테마로 한 싱글 앨범의 형태로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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