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가 그랬다.
"아끼면 똥 된다."
나 어릴 적 아버지가 그랬어요, 소주 잔을 쪼옥 들이키면서. 거칠고 주름진 손에 비하면 작고 깨질 듯 약해 보이는 잔을 내려놓으며 내는 공식 같은 '캬아' 소리. 멸치조림을 한 젓가락 안주로 들더니, 아들을 쳐다보다가 이야기를 하나 들려줘요.
새마을운동이 한참이던 70년대였대요. 아직은 석탄 수요가 많아 탄광촌이 광부와 식솔들로 북적이고, 석탄을 실어나르는 차량이 끝없이 먼지를 내며 땅을 진동시켰죠. 석탄과 석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던 시대잖아요.
탄광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지만 강원도 어디쯤이었을 거래요. 사실 이 이야기에서 장소는 별로 중요치 않아요.
그 곳에 가진 건 없지만 열심히 일하는 박씨가 있었어요. 이 양반이 똥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박씨는 아침 일찍 탄광 일을 나가 해가 질 때까지 일했기 때문에, 점심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다녔어요. 아내가 싸주었는지 직접 쌌는지는 알 수 없어요. 아버지에게 물었지만 아버지도 모른대요.
어쨌든 그 도시락이 박씨에게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만은 분명했죠. 어찌나 아꼈는지 보자기에 꽁꽁 싸매 와서는 탄광 입구 앞에 쌓인 목재 틈에 조심히 숨겨놓고, 점심이 지날 때까지 아끼고 아껴 먹지 않고 참았다가 정말 배가 고플 즈음이 되어서야 동료 몰래 막장을 나와 꺼내 먹곤 했거든요.
이날도 박씨는 점심 때가 지나도록 도시락을 꺼내 먹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점심을 먹거나 피곤한 몸을 잠시 누이고 자거나 쉴 때 잠깐 꺼내서 확인을 해볼 뿐이었대요.
다시 박씨가 일을 하러 막장으로 들어갔을 때, 광부 한 명이 부근에서 쉬다가 우연히 도시락을 발견하곤 이게 웬 떡이냐 앞뒤 생각도 없이 홀라당 먹어버렸어요. 그리고는 골리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천성이 고약한 성격인지, 빈 도시락에 밥 대신 똥을 잔뜩 싸고는 다시 뚜껑을 닫고 보자기로 감싸서 제자리에 넣어두었대요.
잠시 후 허기진 박씨가 도시락을 열어봤을 때는 계란 프라이가 덮인 희고 차진 쌀밥 대신 따끈따끈한 똥 덩어리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답니다.
아끼지 말고 필요할 때 쓰고 항상 대범하라고,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잊을 수 없는 슬픈 똥 이야기. 권선징악 따위의 뻔한 이야기보다 재치 넘치면서도 가르침을 내포한 아버지의 뜨끈한 장난.
싸고 난 후에는 깨끗이 닦자.
- 그 후의 박씨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글을 쓰다가 궁금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더니 '그런 이야기를 했드나, 허허.'라며 웃음으로 얼버무리신다. 일제시대 노역하던 때 이야기라거나, 소풍 간 학생 이야기라는 설도 있단다. 성이 박가라 혹시나 했지만, 친척 중에 광부였던 이는 없다.
- 시골 출신에 많이 배우지 못하고 젊은 시절을 하사관으로 복무했던 아버지는 순수했달까, 무식했달까. 어느 정도였냐면 친한 동료에겐 간쓸개 다 빼주면서도 마음에 안 드는 상사에겐 머리를 굽히지 않다가 군대도, 직장도 사직했는가 하면, 사람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야 한다며 누런 알전구를 한 시간씩 쳐다봤다거나 하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 아버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쟁 한 달 전 태어나 보낸 어린시절이며, 군대에서 북파간첩에게 길 인도했던 일, 국방연구소 근무 이야기 등을 듣다 보면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