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의 힘
글고운은 '아는 사람 낯가림'이 있다. 친구들 혹은 가족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의식을 많이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가정예배나 추도식에서 기도를 할 때, 여행을 떠나며 출발하기 전 기도를 할 때, 가족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곤 한다. 추도식에서는 어린 자녀들에게 기도를 시킬 일은 없지만, 여행 출발하기 전 도착지까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아무 사고 없이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기도하는 정도는 아이들도 할 수 있어서 기회가 돌아간다.
첫째인 글고운은 기도를 잘하는 아이였다. 4-5살 글고운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은채 기도하는 영상을 보면 웃음을 머금은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시간이다.
초등학생이 되고부터 글고운은 우리 가족끼리 있을 때도 대표 기도는 절대로 안 하겠다고 했다. 하기 싫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시킬 수도 없고, '언젠가는 하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다. 4-5살 글고운이 기도를 한 것을 보면 아이의 본성은 충분히 기도를 하고도 남을 테다.
엄마로 안타깝고 때로는 답답한 마음도 있지만 이내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하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
우리 가족은 대가족으로 할머니, 우리 부모님, 삼촌, 큰고모, 작은 고모, 거기다 우리 언니 두 명이 함께 살았다. 집안에서 가장 어린 나는 가족들 앞에서 재롱을 떨 만도 한데, 나 역시도 국민학생이 되고부터 낯가림이 시작되었는지 가족 앞에서는 절대로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인지 입학을 했을 때인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내게 막무가내로 발표를 해 보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무엇을 시켰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절대로 안 하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나를 억지로 바로 세우며 해보라고 다그치는 아버지가 있었던 장면만 기억한다.
대표 기도를 안 하겠다는 글고운의 마음이 이해 되었다. 글고운에게는 나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어른이 된 지금에야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하고 중요한 거라고 말 한마디 못하나 싶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응당 어른이 해야 할 일 아닌가. 기다리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이쯤에서 아는 사람 앞에서는 유난히 안 하려고 하는 '아는 사람 낯가림'의 유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안타깝게도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부모님을 모시며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중심에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추도식을 하는데 당연히 아버지가 예배를 인도하실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아버지는 누가 하면 어떠냐 하시며 작은 아버지에게 인도하라고 했고, 마지못해 작은 아버지가 추도식을 인도하고 대표기도까지 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아버지 말씀대로 어느 자식이 하던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은 나는 아버지가 한 번은 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아버지도 '아는 사람 낯가림'이 있었던 거다. 유독 가족 앞에서는 더 심했던 거 같다. 내가 굳이 '아는 사람 낯가림'이라고 하는 이유는 잘 모르거나 특별히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나도, 글고운도...
이쯤 되면 '유전의 힘!' 아니겠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얘가 왜 저러나?'하고 아쉬워하거나 어쩌면 욕심에 더 가까운 감정으로 아이를 바라볼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이내 내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 ' 너 닮아서 그래.'
아쉽고 답답하고 못마땅했던 마음은 이내 짠하고 미안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전이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