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자전거 배우기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한참 떨어지는 나는 서른이 넘도록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스무 살이 넘어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그때마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던 옛 연인들은 쉽게 포기했다. 내가 너무 겁을 냈고 그래서 다칠까봐 걱정된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해서 내가 사는 세계가 그다지 바뀔 것 같진 않았고 넘어졌다는 수치심은 오래 갈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자유롭게 누비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러운 마음이 생기긴 했지만 욕심은 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야만 누릴 수 있는 선명한 계절감을 몰랐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지금의 남편 D에게 배웠다. 다섯 살 어린 내 남편은 수줍음이 많지만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실패해도 무엇이든 배우는 게 있으니 해보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패기’가 젊음에서 오는 것이라 쉽게 생각했다.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말에 D는 적잖게 놀랐다.
“자전거는 누구나 탈 수 있게 만든 거야. 애들도 탈 수 있게 만든 거니 당연히 탈 수 있어.”
엔지니어 출신답게 D는 자전거의 작동원리를 근거로 내가 금방 배울 수 있다고 설득했다. 나는 운동 신경이 떨어지고 겁이 많다고 말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근처 공원에 가서 따릉이를 빌려 당장 타보자고 했다. 솔직히 나는 자전거를 배울 생각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자전거를 가르치고 말겠다는 D의 불타오르는 의지에 부응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따릉이를 빌려 D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패달에 발을 대자마자 자석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부드럽게 바퀴가 굴러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겉보기엔 너무나 쉬워 보였다. D는 나의 작은 키에 맞춰 높이를 조절해 줬다. 발이 땅에 닿지 않자 무서웠다. 패달에 두 발을 올리기도 겁이 났고 패달을 밟기도 전에 몸이 먼저 기울었다. 도저히 못 하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D는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자전거를 잘 타는 법을 유튜브에서 검색도 해보고 자세도 다시 잡아 주었다. 처음 패달을 밟을 때 힘껏 밟고 다른 발도 바닥이 아니라 패달을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리론 이해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발은 자꾸 넘어질 걸 대비해 바닥으로 향했다. 어깨에는 계속 힘이 들어가고 손잡이를 움켜쥔 손에 자꾸 땀이 맺혀 미끄러웠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마치 공중 부양이라도 하듯이 내 몸이 살짝 떠오른 것만 같았다. 무서운 마음에 금세 멈춰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D는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사람들이 다 쳐다봐서 부끄럽긴 했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거기서 더 진전은 없었다. 이 작은 성공에 안주하고 싶었고 더 나아가기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D는 몸의 감각이 살아 있을 때 다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기억하는 감각은 머뭇거림 뿐인데... 하고 또 머뭇거렸지만 꼭 한강에 가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D의 소박한 꿈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전거 코칭 2일 차. 발도 못 뗐던 첫날과는 다르게 페달을 한 바퀴까지 굴리는 건 쉽게 되었다. 하지만 자전거가 앞으로 곧게 나아가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겁을 내고 있었다. 속도가 붙으면 더 겁이 났다. 내 옆으로 자전거를 탄 어린애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괜히 기가 죽었다. 아예 시작하지 못하는 나에게 D는 브레이크를 쓰면 속도가 빨라도 쉽게 멈출 수 있다고 보여줬다.
“넘어져도 괜찮아! 넘어져도 별로 안 다쳐. 너무 겁내지 마.”
D는 처음으로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가 넘어질까봐 걱정된다고 쉽게 포기하던 목소리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 말은 처음으로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래, 다쳐봤자 무릎 좀 까지는 거 뿐이겠지. 나는 비로소 작은 흔들림에 겁을 먹지 않고 패달을 밟았다.
“속도가 있어야 안 넘어져. 너무 천천히 가면 넘어져.”
내가 처음으로 1m 이상 전진하자 D는 환호하며 계속해서 패달을 밟으라고 응원해 줬다. 신기했다. 내 몸이 내 발을 딛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파도에 실려 두둥실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점차 5m, 10m 멈추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거리가 길어졌다. ‘엉금엉금’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사람에서 탈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건 면허가 나오는 일도 아니었고 어디에 기록되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서 환하게 불이 켜지는 것만 같았다. 너무 오래전부터 깜깜해서 불을 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어느 곳의 스위치를 건드린 것만 같았다.
D는 나보다도 더 기뻐했다. 이제 자전거도 배웠으니 다음엔 수영도 스키도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나의 여름과 겨울이란 계절에 켜지 않은 스위치가 생겼다. 나보다 어린 D는 항상 나에게 새로운 걸 해보라고 말해준다.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는 법도 일러주고 타이어에 공기를 넣는 것도 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가르쳐 준다. D는 강요하는 법 없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의 다정한 응원에 번번이 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여전히 방향을 바꾸는 건 서툴고, 내리막길은 무서워서 자주 멈춰 서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안다. 너무 천천히 가면 넘어진다. 느려도 괜찮지만 너무 두려워하면 넘어진다. 나는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날 배운 감각을 되새겨 본다. 유년 시절에 배우지 못한 것들은 때로 더 어렵고 더 충만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가끔 넘어져도 괜찮다. 한번 넘어졌다고 해서 다시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으로 돌아가진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