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쓸 만한 신혼일기
퇴사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나에게 요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힘을 길러주었다. 힘이 들 때 숨을 참지 않고 숨을 내뱉는 법을 알려 주었고 경직되었던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법도 알려주었다. 어쩌다 보니 서울에서 요가원만 네 군데를 다녔다. 시설마다 장단점이 분명했지만 공통적으로 선생님들은 열정이 가득했고 수강생들은 그 열정에 못 미치게 부지런했다.
이사를 오고 제일 처음 지도에서 검색해 본 건 맛집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요가원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적은 도시다 보니 주거지가 아닌 이상 요가나 필라테스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얼마 되지 않았다.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요가원부터 등록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금세 시들해져 버렸다. 아직 모든 게 낯선 곳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도 어려웠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게 사실 두려웠다.
요가를 한 달 여정도 쉬니 몸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요가를 시작한 지 몇 년이 됐지만 아직도 초보 수준인 나는 여기서 더 쉰다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청소기 옆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말려 있던 요가 매트를 펼치고 유튜브에서 요가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유튜브의 세계는 광활하고 또 전문적이었다. 초급자부터 숙련자까지 다양한 시퀀스로 시작해 볼 수 있는 강의가 많았다.
나는 바로 남편을 꼬드겼다.
뭐든 새롭게 시작하는 데 거부감이 없는 남편은 순순히 맨바닥에서(!) 첫 요가를 시작했다. 가부좌를 하고 무릎에 손등을 올린 모습이 숙련자 같아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체형이 달라서 남자들이 힘들어하는 자세도 생각보다 곧잘 따라 했다. 비교적 쉬운 시퀀스로 짧은 시간만 하니 “할만하네.”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니 더욱더 어깨가 올라갔다.
“바닥에서 하는 거 불편하지? 남편 요가 매트도 주문할까?”
“응. 좋아!”
그날부터 남편과 나는 시간이 될 때마다 자기 전에 요가 매트를 펼쳤다. 빈야사가 뭔지 하타가 뭔지 아쉬탕가가 뭔지 아직 감이 없는 남편을 위해 처음엔 스트레칭 위주의 수업으로 진행했다. 나한테는 너무나 쉬운 동작인데 힘들어할 때도 있었고 나는 몇 개월 걸려서 완성했던 동작을 힘으로(!) 버티는 때도 있었다. 엎드렸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동작이 변형되는 아쉬탕가 시퀀스에서는 화면 대신 나를 쳐다보며 따라 하기 바빴다.
중간에 앓는 소리를 낼 법도 한데 남편은 한번 시작한 이상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잘 따라왔다. 나 역시 혼자 했으면 적당히 흉내만 내다가 말았을 동작도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여태껏 다닌 요가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부들부들 자세를 유지하다가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배배 꼬인 자세에서 주리라도 튼 듯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제일 마지막 동작인 사바아사나를 할 때는 가장 고요하고 뿌듯한 시간이다. 송장 자세로 불리는 사바아사나는 얼굴을 천장으로 향해 똑바로 누워 몸에 힘을 뺀 이완 자세이다. 처음에는 누워서 힘을 뺀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눈을 감은 얼굴이 경직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물속에 가라앉는다는 느낌으로 손발과 얼굴에 힘을 빼고 나면 오늘 나를 힘들게 했던 잡생각들도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주 남편을 바라본다.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밖에서 시달리고 온 몸과 마음이 온전히 쉬기를. 남편을 통해 나의 어느 날을 마주한다.
사진출처 : youtube 에일린,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