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Jun 12. 2023

도서관을 찾는 마음

커다란 나의 서재

책을 쌓아 놓고 읽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그렇다고 책을 남들보다 훨씬 많이 읽는 건 아니고 변덕이 심해 책 한 권을 오래 읽지 못하는 탓이다. 이사를 할 때도 책을 옮기는 게 제일 골칫거리였다. 한 달에 한두 권씩만 사도 4~5년이 지나니 두 박스 분량의 책이 쌓였다. 안 볼만한 책들은 중고 서점에 최대한 처분했지만 그래도 남은 책이 많았다. 내가 버릴 책이 별로 없다고 하자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1년에 한 번 이상 읽지 않을 책은 버리자.”

“안 돼. 그 책이 갑자기 읽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

“읽었던 책인데 왜 또 읽고 싶어?”


남편은 이미 결말을 아는 소설책을 왜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책은 ‘정보’를 주는 물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평소에 필요 없는 건 가차 없이 버려버리는 공대생 남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소중한 책들을 차마 버릴 수 없다는 식의 감정적인 호소는 먹히지 않았다. 책을 감싸는 띠지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는 나에게 내 삶의 드문드문 이정표가 되어줬던 문장들을 버리기 힘들었다. 그 문장들은 책 속에 있어야 완성되는 문장이었다. 어디 따로 뚝 떼어 필사해 놓는다고 해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나의 간절한 호소와 협박 덕분에 내가 아끼는 대부분의 책이 중고로 얻어온 책장에 자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이 무분별하게 증식하는 사태를 막고자 2주에 한 번씩 함께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는 작은 시립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서울에서는 근처에 걸어서 갈만한 도서관이 없었다. 앱을 이용해 지하철에서 책을 쉽게 대여할 수 있어 편리하긴 했지만 인기 있는 책은 항상 대출 중이었고 눈에 바로 보이지 않으니 이용하는 횟수도 점차 줄었었다.


나에게 책이란...


새로 전입 신고한 주민등록증으로 도서관 회원 카드를 만들었다. 고향인 부산에서, 직장이 있었던 서울에서, 그리고 신혼집이 있는 이곳에서 만든 세 번째 도서 카드였다. 그러고 보면 전입 신고만큼이나 당연하게 도서관을 찾았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책이 많은 것도 좋았고 여름엔 시원한 것도 좋았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권태로워 보였지만 그만큼 나에게 무관심해서 편했다.


남편과 나는 각자 관심 있는 분야로 나뉘어 빌리고 싶은 책을 찾았다. 가끔 오프라인 서점에서 신간만 살펴봤지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을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꺼내서 다시 보고 이름이 끌리는 책도 살펴봤다. 보고 싶었지만 사기엔 망설여지던 책들도 눈에 띄었다. 최대로 대출할 수 있는 다섯 권을 채워 무인대출기를 이용했다. 두 손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엄청나게 큰 나의 서재가 생긴 기분이었다.


남편과는 자기 전 20~30분 정도 책을 읽는다. 한 시간 정도는 집중해서 책을 읽으려고 해보지만 책에서 공감되는 대목이 나와서 서로 보여주다 보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다. 남편은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 경제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나는 인문서나 소설을 많이 읽는다. 사실 나는 자기계발서라면 질색하던 사람이었는데 남편을 통해서 그러한 선입견이 많이 바뀌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읽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이 꼭 읽어보면 좋겠다고 간청해서 읽어봤는데 확실히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추천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남편 역시 내가 추천하는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해 준다. 완독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말이다.


대출한 다섯 권은 사실 세 권만 다 읽고 반납했다. 빌릴 때만 해도 이틀에 한 권을 읽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는데 하루 만에 내가 나를 너무나도 과대평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서로가 관심 있어 하는 책을 각자 고르고 왜 이 책이 좋은지 이야기하고 나누는 시간은 참 귀하다.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웃고 떠드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편집되고 다듬어진 글을 통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또 많이 다르다. 책은 요점만 말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아진다.


이번 주에 반납해야 할 책도 사실 아직 반도 못 읽었지만 주말에도 책을 잔뜩 빌려올 생각이다. 책을 빌리는 마음은 전혀 사치스럽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넘어져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