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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un 15. 2023

아름다운 작화 속에 뭉뚱그려진 세계관

엘리멘탈(Elemental), 2023

<인사이드 아웃>, <소울> 제작진이 참여한 신작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예고편부터 기대를 모았다. 불, 물, 공기, 흙 4원소를 가져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 냈고 불과 물이라는 양극단의 원소를 통해 어떤 갈등을 이끌어 낼지도 궁금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지는 몰라도 ‘세상의 규칙을 깬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라는 카피가 무색하게 픽사가 보여줬던 익숙한 ‘규칙’과 안전한 ‘모험’ 속에서 불과 물만이 엘리멘트 시티에서 작동한다.


불 원소인 ‘앰버’의 부모님은 재해로 인해 망가져 버린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이다. 아버지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손수 집을 개조해 잡화상을 꾸렸고 엄마는 원소들의 사랑을 점치는 일을 한다. 앰버는 부지런하고 수완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배우고 그 일을 넘겨받길 바란다. 화가 많은 앰버에게 아버지는 그 화를 다스리는 법을 조언해 주지만 앰버는 손님들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마다 화를 주체할 수 없다. 앰버는 불 원소로써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잡화점을 넘겨받기 위해선 자신의 기질을 숨겨야만 한다.



하지만 앰버는 지하실에서 화를 폭파시키고 말고 부서진 파이프에서 물 원소 ‘웨이드’를 만나게 된다. 웨이드는 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며 가게를 살펴보고는 앰버의 가게에 위반 딱지를 부여한다. 아버지의 가게를 지키고자 하는 앰버는 엘리멘트 시티 중심부로 가 그 일을 담당하는 고위 직급을 만나 사정한다. 시청 안에서 일하는 원소 중에 불 원소는 없다. 불은 어디를 가든 환영받지 못하고 앰버는 몸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덮어쓰고 몸을 움츠린다. 


이민자로서 차별받는 모습은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한 가정의 생계가 걸린 문제를 아무 조정 없이 결정한다거나 삶의 터전을 무너뜨릴 수 있는 댐을 조치도 없이 방치하는 모습은 이민자를 그동안 어떻게 대우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시된 특별한 꽃을 보기 위해서 앰버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웨이드는 앰버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지만 앰버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웨이드임에도 앰버는 불같이 뜨겁고 사랑스러운 대상일 뿐이지 앰버가 느껴왔을 압박감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버지를 상실했다는 경험만이 웨이드에게는 유일한 아픔이기 때문이다.



웨이드의 가족은 상냥하지만 대책없이 해맑다. 엘리멘트 시티에서 나고 자란 앰버에게 ‘말’을 잘한다는 칭찬에는 아무런 악의가 없다. 빠지면 죽을지도 모르는 물 위에서 앰버는 티 없이 행복한 사람들의 눈물을 본다. 웨이드의 엄마는 앰버에게 일자리를 추천해 준다. 자신들이 사는 높은 건물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고. 앰버는 그 일에 매우 탁월할 것 같다고 말이다.


약간은 감동적이고 진부한 죽음과 부활을 지나 앰버는 부모님과 이별하고 다른 도시로 떠난다. 이민자는 기득권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러 간다. 그로 인해 앰버가 또 다른 기득권이 될지 모르겠지만.


작화는 환상적이고 아름답지만 뾰족한 진실속에 세계관을 뭉뚱그려 놓는다. 불, 물, 공기, 흙이라는 재료를 가져와서 쓰는 건 불과 물뿐이다. 사랑스러운 상상력은 극의 초반에 모두 소진한 듯 뒤로 갈수록 공기와 흙의 활약은 전무하다. 갈등을 헤쳐 나가는 4원소의 활극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사랑’을 말하려다가 놓친 부분이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디즈니와 픽사는 관객이 원하는 부분은 분명히 해내며 또 다른 세계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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