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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un 22. 2023

잠든 발을 바라본다는 것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나는 몸을 뒤척이다 이불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D의 발을 꼼꼼하게 덮어주길 좋아한다. D는 더운지 금세 다리 한쪽을 이불 밖으로 빼놓는다. D의 발은 성인 남자치고 희고 조그맣다. 괜히 발가락을 간질이고 싶어진다. 그럼 코를 찡그리며 발가락을 오므리겠지.


발은 한 사람의 세월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서글프다. 굳은 살이 박이고 발가락이 굽기도 하고 발톱이 찌그러진 모양으로 자라기도 한다. 지금이야 발도 케어하는 게 흔한 일이 되었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발은 그저 최하단에 자리한 노동의 수단이었다.


우리 아빠도 신발 치수가 250에서 260을 오간다. 외벌이로 여섯 식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발이었다. 우리 엄마도 발이 230이 좀 안 된다. 아빠의 월급으로 여섯 식구의 배를 채우기 위해 종종거렸을 엄마의 발도 너무나 작았다. 그 사이에 태어난 나도 발이 작지만 나는 아직 굳은살 하나 없는 발이다. 그건 부모님은 누구보다 더 많이 걷고 더 빨리 걸어온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그걸 알아서 가끔은 집에서 더 빨리 도망쳐 나오고 싶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의 작고 부드러운 발의 촉감을 기억한다. 말랑하고 통통한 그것은 몸을 지탱하는 기능이라곤 조금도 없어 사랑받기 위해 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걷지 못하는 발에도 신발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그것이 곧 그 쓸모를 할 것이라는 바람처럼 느껴진다.


조카는 금세 자랐다. 짧고 탱탱한 종아리로 높게 뛰어올랐다. 크록스를 신고도 넘어지지 않고 온 거리를 활보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이 되자 조카의 발은 이제 더 이상 말랑하지만은 않았다. 벌레에 물려 벅벅 긁는 바람에 딱지가 앉은 발은 온종일 돌아다녀 시커멨다. 이제 편하지 않은 신발은 신지 않는다. 신발의 기능을 제대로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D는 잠이 많아 틈만 나면 소파나 침대에 드러누우려고 한다. 속상한 마음이 들다가도 무방비로 노출된 D의 발을 보면 가끔 안쓰럽기도 하다. 잠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타는 D가 아침마다 정장 바지에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답답하고 고단할 D의 발을 생각한다. 엄마가 출근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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