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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Dec 08. 2023

미워할수록 새어 나가는 마음

김신회 <나의 누수 일지>를 읽고

김신회의 신작 에세이 <나의 누수 일지>는 1인 여성 가구가 ‘누수’와 맞닥뜨린 웃픈 경험담을 솔직하게 녹여낸 책이다. <아무튼, 여름>을 통해 알게 된 작가라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누수 문제가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 어릴 때 부모님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윗집과 아랫집 어른들이 우리 집 배관을 심각하게 들여다보며 오갔고 부모님 역시 계단을 오르내리며 상태를 확인했다. 어른들이 찾아올 때마다 어린 동생과 내가 한 일은 방안에 조용히 숨어 있는 일이었다.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공사를 하게 된다면 큰일이라는 것을 엄마의 한숨을 통해서 짐작할 뿐이었다.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 일이 꽤나 잦았던 기억이 있다. 다만 그때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아는 시절이었다. 이사 온 집에서 이사떡을 돌리는 게 흔하던 때였고 정기적으로 반상회를 하며 아파트 내부의 문제를 알리고 서로의 대소사를 공유하곤 했다. ‘누수’ 같은 문제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반상회 할머니들의 참견과 잔소리가 끊이질 않을 테니 말이다.


<나의 누수 일지>는 윗집의 에어컨 실외기 문제로 ‘나’의 집에 누수가 생기면서 발생되는 사건인데 문제는 이 윗집이 이 일에 대해 전혀 미안해하지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윗집은 이사 올 때부터 ‘나’와 갈등하기 시작했다. 윗집은 이사 전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며 큰 소음을 냈고 ‘나’는 그 소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피로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공동주택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할 경우에는 공사 전에 입주민들에게 동의를 얻거나, 공사 내용과 일정, 공사 종료일이 적힌 안내문을 공용 공간에 부착해 알리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하지만 이 윗집은 그런 상식이라곤 일절 없고 시끄러워서 좀 조용히 해달라는 ‘나’에게 예민하다는 면박까지 준다.


이때부터 나는 작가인 ‘나’와 함께 이 윗집을 미워할 준비를 마친다. 나 역시 이런 몰상식한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가. 이 갈등은 결국 누수로 인해 다시금 심화된다.


“누수 피해 있으니까, 밑에 와서 확인해 주세요.”
“왜요?”
“네?”
“그러니까, 왜요.”
“선생님 댁에서 누수가 돼서 저희 집 천장이 다 젖었다고요. 피해 상황을 보셔야 보상을 하죠.”
“무슨 보상이요?”
“이 집에서 떨어진 물 때문에 저희 집에 물이 새는데, 보상해주셔야죠.”
“공사 다 했는데요? 그럼 끝이죠.”
“아랫집에, 누수가 되면, 윗집에서 확인하고, 보상하는 게 맞, 습, 니, 다! 그게 법이라고요!”
“무슨 법이요? 그런 법, 처음 들어보는데요?!”

<나의 누수 일지> 中 전쟁의 서막 54p~55p


대화만 봐도 숨이 턱 막힌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윗집 여자와 긴 시간 동안 이 문제로 감정 소모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계속해서 언제 보상을 해줄 건지 재촉하지만 윗집 여자는 연락을 하겠다는 말만 하고 어떤 연락도 먼저 주지 않는다. ‘나’는 혼자 애가 탄다. 벽지는 울퉁불퉁 균열이 생겼고 안에 곰팡이가 생겼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배를 전체 새로 하는 것도 일이고 무엇이 좋은 방법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연락을 주겠다고 해놓고 감감무소식인 윗집 여자가 너무도 괘씸하다. 긴 고민을 한 끝에 ‘나’는 피해 보상에 대한 내용 증명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주변의 지인들은 쉽게 고소해버리란 말을 해버린다. ‘나’는 이때까지 언제나 문제에 회피해왔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결심을 한다. 글을 읽는 나 역시 어서 빨리 정의 구현(?)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저렇게 상식이 없는 사람에게 ‘법’으로 통쾌하게 이기기를 바랐다. 마치 작가가 나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 상황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윗집에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다.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으로 해결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생각했으나 나만 다가갔나 보다. 다시 그들을 찾아갈 용기도 없다. 문 너머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온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괴로워졌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윗집의 대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내가 내는 소리도 고스란히 전달될 것 같아 덥고 답답해도 창문을 닫고 지낸다. 위에서 발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의 누수 일지> 中 진짜 감정 127p


하지만 ‘나’는 두렵다. 이 일에서 도망치고 싶다. 혼자 살기 때문에 언제든 해코지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온다. ‘나’는 법률 상담까지 받으며 이 일에 빈틈없이 대비한다. ‘자나 깨나 누수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는 이런 비슷한 일로 고민했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연락을 한다. 하지만 그 선배가 내놓은 대답은 의외이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 네가 괜히 긴 시간 속 끓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인생이란 그런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오랜 시간 겪어보니 그게 얼마나 나를 갉아먹는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어른들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더라. 많이 억울하겠지만,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보내줬으면 좋겠다.”

<나의 누수 일지> 中 도덕경 선배 145p


‘나’는 원하던 대답이 아니라 마음이 찜찜하다. 나 역시 선배의 조언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바로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나를 갉아먹더라도 내가 피하면 다른 사람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니... 그건 아닌가? 그건 내가 오버해서 생각하는 건가. 난 그냥 그 사람이 밉고 그래서 사실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거 아닌가. 내 일이 아니니까 멀찍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갉아먹어가면서도 정의 구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거 아닌가. 나는 내 속에 숨어 있는 음침한 욕망을 보았다. 소위 ‘갑질’하는 사람들이 ‘현생’에서 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만족하지 않았나. 


‘나’는 내용증명을 보내고 문자로 법적 대응까지 선전포고하고 나서 더 큰 공포에 사로잡힌다. ‘나’는 혹시 모를 해코지가 있을까봐 집 앞에 cctv까지 달게 된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선배에게 연락을 한다.


“그 사람은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거기다가 법적 절차를 줄줄 읊으면 기분이 좋겠니. 화가 나겠지. 이웃을 화나게 만들어서 좋을 게 뭐겠어. 네가 잘못했다는 거 아냐. 사람 마음이 그렇다는 거야.”

<나의 누수 일지> 中 3차전 163p


‘나’는 선배와의 통화를 마치고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약간의 얼룩 때문에 거실 전체를 새로 도배하는 것은 사실 진짜 원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법적 다툼을 이어가는 것도 진 빠지는 일이다. ‘나’는 그저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불안함 없이 지내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결말은 시시해진다. ‘나’는 윗집 여자를 만나 대화로 오해를 푼다. 감정적인 말들은 접어 두고 미래에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기를 약속한다. ‘나’가 그렇게 나오니 윗집 여자 역시 그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사정을 변명하며 그 제안을 수락한다.


어떤 일을 대화로 풀고 나면 생각보다 그게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걸 알게 된다. 바꿔 말하면 나는 이제껏 갈등을 대화로 풀어본 경험이 없었던 거다.
그저 감정을 삭이거나,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나 몰라라 도망치거나 아니면 없던 일처럼 눈을 감았다. 내 감정을 제일 앞으로 내세우고 그걸 몰라주는 세상과 상대를 원망하면서 문제를 더 크게 만들어왔다. 지나치게 심각해지면서. 필요 이상으로 비장해지면서.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알았다. 그럴수록 문제에 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결국 문제가 주인공이 되어 나를 휘두른다는 것을.

<나의 누수 일지> 中 결단의 시간 189~190p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된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정곡을 찔린 듯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문제를 ‘대화’로 풀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웠고 나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와 대화하기 겁이 났다. 상대방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가려둔 채 그를 철저하게 미워했다. 지나치게 심각해지면서. 필요 이상으로 비장해지면서. 세상을 살아가며 회피해선 안 되는 문제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화’가 두려워서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시간을 버리면서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미워할수록 마음과 기력이 새어나가는 걸 느끼면서도.


이 마음과 결심이 또 다른 상황과 만나면 금세 옅어지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고. 너무 빈틈없이 미워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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