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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의 이유

feat. 조선의 페미니스트

이책은 발터 벤야민 선집 시리즈(ex- 1: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혹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 같은 책이 연상되는 '엑스리브리스(Ex-libris)'의 보고였다.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에서 일본 헤이안 시대의 궁녀 세이쇼 나곤의 수필집 '마쿠라노소시'를 인용하며 "마음 같아선 이책을 통째로 인용하는 걸로 책을 끝맺고 싶다'고 하기도 했는데, 나 또한 이번 독후감은 '조선의 페미니스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글을 인용하기만 해도 충분할 정도로 크게 공감했고 감명 받았다.


여성들이여! 분노하라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라 (108쪽)


봉건시대에 노예가 되었던 여자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가정에서 쫓기어 시장으로 달리는 상품이 되어버렸으며 더한층 재래의 기반을 굳게 하여 경제적 조건에 목을 메여 영원한 남성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109쪽, 정종명, '불평 비분, 과거나 현재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동아일보', 1925년, 1월 1일)


여성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품화되었다는 그녀의 현실 인식은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의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녀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것에 분노를 터뜨렸다. 또한 "여자는 집에 있어서 밥을 짓고 옷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기르며 기타 모든 노력을 다 들이되 남자는 그것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그저 남자 자기 혼자가 벌어서 다 먹이는 것처럼 생각하여 압박을 하고 구속을 준다."라며 재생산 노동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그리고 여성 타자화의 대표적 속담인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끄집어내면서 "이때까지 여자를 정치상에나 경제상에나 모든 방면에 간섭치 못하게 하고 남자 자기네만 만반의 권리를 차지하여왔지마는 유사 이래 지금까지 망국패가의 못된 짓은 모두 남자들이 한 것이 아니냐. 과거는 그만두고 현재에도 남자가 모두 이 세상에 평화를 파괴하고 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이 아니냐."며 "남자는 야심뿐이요, 죄악의 덩어리"라고 비난했다. (110쪽, 정종명, '남자에 대한 시비-남성은 오직 야심뿐', '별건곤' 제19호, 1929, 130쪽)


연애 고민을 대량생산하여 인간에게 적지 않은 불행을 초래케 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라 할 것이외다. 그렇다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들 수 있으니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순결하고 진실하여야 할 애정 그것까지도 물질적 이해로 타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외다. 위선 정조관부터 남녀가 다르게 되어서 남자는 제 맘대로 성적 방종을 하면서도 여자에게는 편무적으로 정조를 강제하려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혹은 남녀는 원래 생리적으로 따른 까닭에 모성을 가진 여자 편은 그 자녀의 혈통을 밝힐 필요상 정조를 지켜야 하겠다 하지마는 그것은 전혀 남성의 성적 방종을 옹호하려는 한갓 구실에 불과한 줄 압니다. 연애의 고민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책은 남녀 간 사회적 지위가 균등되고 또한 전 인류가 보다 행복한 지상낙원 시대가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 진화의 구원한 장래에서나 바랄 것인즉 현하 정세 밑에서는 동지 연애로서나 만족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139쪽, 정칠성, '연애의 고민상과 그 대책', '조선지광' 1931년 1월호 253~255쪽)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텍스트 중 가장 마음이 많이 가는 건 역시 자본주의 비판인데, '조선의 페미니스트'들 역시 시대를 뛰어 넘어 앞선 고민들을 해왔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다만 한 가지, 책에서 살짝 아쉬운 부분은 저자가 다소 사족 같은 머리말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정의하고 페미니즘의 한계에 대해 미리 자수하는 부분이다.


"이를 종합하면 페미니즘은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 생생한 경험에서 나온 분노, 역사적 현실적 맥락 살피기, 복수 명사로서의 이론과 실천 따위로 정리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불온하고 불편하다. 게다가 정답도 없다. 페미니즘은 완벽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정해진 틀도 없는 이론이자 실천이다." (8쪽)


페미니즘이 불편한 거야(기득권자인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더라도 '불온'하다는 단어는 불편하다. 저자도 이어서 언급하듯이,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 정의했다. 또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페미니즘 정치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서는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페미니즘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략만큼은 다양해야 한다.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이제는 너무 많이 인용해서 이건 뭔가 연락이라도 한 번 드리고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문구를 다시 한 번 소개하면,


"페미니즘은 불공정한 것에 대한 필연적인 저항이다."(임경선&요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불공정한 것에 대한 필연적인 저항이 불편할 수는 있지만 불온한 것으로 인식돼선 곤란하지 않겠나. 이미 불공정한 것을 감내해온 세월이 너무 길고도 깊었다. 더구나 지금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은 '필연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급선무다. 마치 신자유주의에 이르러 끝판왕이 된 듯 활개치고 있는 자본주의를 비판할라 치면 '빨갱이' 운운하듯, 뭔가 대단히 불공정한 것에 대해 반기를 드는 순간 '페미니즘'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식이다. '페미니즘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략만큼은 다양해야 한다'는 벨 훅스의 이야기가 이 대목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온다.


끝으로, 한국 여성학자의 글을 인용하는 걸로 독후감을 마친다.


"여성이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은 언제나 변화하며, 그에 따른 차별의 양상도 달라진다. 또한 여성은 모든 계급과 지역에 존재하고 모든 연령을 경험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파트너를 선택하고 가족을 구성한다. 여성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언제나 변한다. 실제로 페미니즘은 그 어떤 사상보다 활발하게 내부를 비판하고 논쟁해왔다. 페미니즘은 질문과 논쟁의 역사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8쪽, 권김현영 외, '페미니스트 모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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