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X 브런치 <나도 작가다> 공모전 당선 작품집
올 해도 이렇게 가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책이 집에 도착했다. 올해 네가 한 일이 있다고, 여기 손에 잡히는 이 책을 만져보라고 말해주듯이. 봉투에서 꺼낸 책은 놀랄 만큼 차가웠다. 한 권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책 속에 내가 쓴 글이 있다니.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글을 내는 일에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쓴 글을 출력해서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편집하고 다듬어 이메일로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발행 버튼을 누르고 함께 뜨는 해시태그 중 <나도 작가다> 해시태그를 눌러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주제가 있었고, 그 주제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제출하는 일에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니었기에 평소대로 글을 발행하고 그대로 잊고 있었다.
그런데 글이 당선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지어 그 글을 낭독하러 EBS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본격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 처음으로 들어가 본 라디오 부스 안에서 내가 쓴 글을 생경한 기분으로 읽고 나왔다. 얼마 후 그 녹음 파일은 팟캐스트에 올라왔고, 나는 도무지 녹음된 내 목소리가 이상하고 낯설었다.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니 내가 쓴 글인데도 남의 글처럼 들렸다.
당선이 되면 녹음을 하고 팟캐스트로 등록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나온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편집자님께 메일이 왔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부끄럽고 민망했다. 나의 보잘것없는 실패담이 한 권의 책에 섞여 전국 서점에,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서점에 등록된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한 기분이었다. 나에게는 팟캐스트보다는 확실히 책 쪽이 주는 무게감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저는 책을 내는 일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은데요 할 수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민망해도 궁금했고, 가슴 뛰는 일임에는 분명하니까.
집에 책이 도착했고, 그 책을 만져보고 나서야 나는 괜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부끄럽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주저했다면, 도망쳤다면 나는 이 책을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고작 한 챕터에 참여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벅찬 기분이 드는데 오로지 내 글로 채워진 한 권의 책을 만난다면 얼마나 가슴이 뛸까?
백일장 키드는 알았을까? 자신의 몰락한 실패담이 한 권의 책에 실릴 줄, 그것이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내 이름이 적힌 책이 나오는 일은 꿈이었다. 어릴 때는 당연히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꿈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꿈들이 그렇듯 점점 현실속의 나와 멀어지기만했다.
하지만 백일장 키드는 몰락했어도 완전히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고, 글쓰는 언저리에 머물고 머뭇거리다 이렇게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더 먼 미래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 어쩌면 백일장 키드의 꿈이 이루어지진 않을까?
책의 서문에 실린 추천사를 읽다 코 끝이 조금 찡해졌다. 마지막으로 그 추천사를 남긴다.
생계와 금전적 대가를 위해 스포츠나 취미 활동을 직업으로 만든 사람을 프로페셔널이라고 한다.
'아마추어'는 이들과 굳이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어 생긴 단어다. 아마추어리즘이란 이겼다고 자랑하지 않고, 패했다고 불평하지 않으며, 자기 절제와 용맹심을 바탕으로 멋있게 임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러한 정신이 없다면 진정한 아마추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마추어는 프로보다 결코 부족한 존재가 아니다. 프로보다 고귀한 존재다.
이 책은 언어와 문장의 세계에서 '고귀한 아마추어리즘'의 실현을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사례다.
진정성만으로 완성된 더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책이다.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