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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May 13. 2021

진짜 [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  :이태리부부

요즘 자주 하는 생각 중에 하나가 있다. '내가 결혼을 참 빨리 했구나.' 하는 생각이다. 당연히 빠르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나는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첫 번째였다. 요즘은 결혼도 출산도 늦게 하는 편이라 내 주변은 2,3년 전에 가장 많이 결혼을 했고, 올해 가장 출산이 많다. 그런데 나는 벌써 내년이면 결혼 10년 차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수 있다니.

내가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였다면, 지금의 남편을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2006년 6월 13일

절대 잊어버릴 수 없다.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던 날이다.

나는 42일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위해 휴학을 하고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는 약간 유럽에 미쳐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주사를 맞은 것 마냥 아침부터 밤까지 유럽 생각밖에 없었다. 혼자 여행을 가 본 적도 없고, 여행에 깊은 취미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집을 벗어나 최대한 멀리 가보고 싶었다. 그럼 미국이나, 일본이나, 태국도 있을 테지만 그런 곳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유럽을 가보고 싶었다. 3월에 런던 IN, 파리 OUT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도 믿어지지 않아서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었다.

어떤 약에 취해있었든 막상 12시간 이상 비행을 마치고 런던에 도착했을 땐,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그토록 원했던 유럽이라는 감상 대신 나는 지금 혼자 있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며, 길치라는 사실만 확실해졌다. 하지만 42일 동안 나는 확실히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것을 봤고, 새로운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서 몇 개월 동안 진한 향수병을 앓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유럽에 가볼 수 있을까? 그 생각만 매일매일 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다니면서도 어떻게 하면 유럽에 나가서 살 수 있을까? 자주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에 살고 싶었다. 많은 나라 중에서도 이탈리아가 단연 좋았기 때문이다. 가이드에 지원해볼까? 나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잘 못하는데. 민박집을 운영해볼까? 그럴만한 돈은 없는데. 늘 용기가 없어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좌절했지만 결혼하고도 몇 년 동안은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남편한테 유럽에 가서 민박집을 해보자고 꼬드기곤 했다.








그런 나의 '로망'을 실현해 준 부부가 여기에 있다. 유튜브가 이런 나의 욕망을 귀신같이 알고 추천 영상으로 스윽 띄워준 <이태리부부> 채널이다. 내가 처음 봤던 동영상은 지금 이 책을 쓰신 김혜지 작가님이 마늘인지, 대파인지를 까면서 얘기를 하시는 영상이었다. 유럽 풍경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워낙 말씀을 꾸밈없고 재밌게 하셔서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로 코로나가 터졌다. <이태리 부부>는 베네치아에 살고 계셨고 남편분의 직업은 가이드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일을 오랫동안 쉴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부부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 더 주력했다. 나는 이 채널에서 보여주는 베네치아의 골목골목과 수상버스에서 보여주는 풍경을 보며 옛 기억도 끄집어내면서 대리 만족했다.


<이태리부부>가 운영하는 여러 가지 SNS 플랫폼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브런치다. 물론 베네치아의 숨 막힐 듯한 풍경도 좋지만 브런치를 통해서 긴 글로 만나는 <이태리부부>의 사는 얘기가 참 좋았다. 사람 사는 일에 당연히 환상과 로망만 있을 순 없다. 내가 6개월 동안 환상에 차서 유럽 여행을 준비했지만, 런던에 발이 닿는 순간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그곳에서 '산다'는 것은 생존을 위해 우리가 이 곳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더 고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기에는 유튜브보다는 글이 더 유용한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를 늘 기다렸고, 댓글을 달면서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드디어 그런 그녀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탈리아에살고있습니다




책의 표지마저 너무 베네치아 그 자체다. 솔직히 그동안 유튜브를 통해, 브런치를 통해 <이태리 부부>의 이야기를 많이 보고, 읽었기 때문에 익숙한 이야기들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자꾸 나의 20대, 30대 초반이 떠올랐다. 누구나 무모하게 용감한 시절도 있고, 그 안에서 불안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시절도 있으니까. 그녀는 영상에서 보던 대로 과장하고 수식하는 법 없이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튜브와 브런치에서 볼 수 없었던 진솔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지 못하고 계속 들고 다녔다.

내가 만약에 그때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이탈리아행을 단행했다면 그녀처럼 용감하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닥치면 다 한다고 하지만 그녀처럼 꿋꿋하게 잘 해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도 너무나 대단하다. 그 기록의 힘은 이렇게 빛을 발하며 위기의 시대에 <이태리 부부>를 지탱해주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기록을 멈추지 말고 보여주시길. 언젠가 이 책을 들고 직접 베네치아에 가서 작가님께 사인을 받는 꿈을 이룰 수 있으면 한다.



<이태리부부>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QHriDyMfy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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