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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Nov 08. 2020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 한수희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한수희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 이유는, 굳이 그 일이 아니어도 좋고 딱히 돈 때문만은 아닌데도 그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일이 불안과 패배와 절망을 선물하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책상 앞에 앉아 빈 화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설레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데, 차분해지는 이유는 내가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서 나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 쓰면 쓸수록 내가 못 쓴다는 걸 깨달을 거라는 사실, 그 사실이 왜 절망적이면서도 기쁜 걸까.

그 감정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은,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큰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쪽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그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 나보다 더 대단한 존재, 나보다 더 큰 존재를 좋아하고 갈망하는 것은 그런 일이다. 매 순간이 패배와 좌절의 연속이다. 그런데 실은 그 패배감과 좌절감이 우리라는 존재를 조금씩 이룩해 나간다.

나보다 더 큰 것 앞에서 겸허히 무릎을 꿇은 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분투하는 것. 그런 것이 어쩌면 사람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기쁨이 아닐까. 기쁨은 승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패배에서도 온다는 사실을, 무언가를 오랫동안 좋아하고 갈구한 사람들은 아는 것만 같다.  (97p)



이 책은 선물로 받은 책이다. 상자 안에는 이 책과 하늘색 카드가 곱게 들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기뻤고 카드에 적힌 말들은 따뜻했다. 나는 몇 번씩이나 카드를 읽고 선물을 보낸 이에게 답장을 했다. 

한수희 작가의 책 중에 내가 처음 읽은 책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였다. 나는 에세이만큼은 유머가 있는 글을 좋아하는데 그 책은 딱 그런 책이었다. 삶에서 오는 따뜻하고 공감 가는 웃음이 가득하고 그 안에서 가볍지 않은 생각의 무게가 들어있었다. 그 책으로 한수희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책에서 얘기했던 가족들과의 일상을 sns를 통해 볼 수 있었는데 책에서 읽었던 장면들이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났다. 

책에도 sns에서도 굳이 멋을 부리지 않으려는 사람, 담백하고 꾸밈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녀가 더 좋아졌다. 한수희 작가의 신작 에세이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내 마음을 읽은 듯이 이 책을 선물로 보내주다니. 


나는 매일 아침 이 책을 읽었다. 매번 좋은 문장을 만났고 (그건 정말 어려운 일!), 매번 고개를 끄덕이게 됐으며(그건 더 어려운 일!), 읽을 부분이 점점 줄어들어가는 것이 아까웠다(보통은 다 읽어갈수록 완독의 쾌감이 코 앞이라 기뻐진다).

이 책에서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와 달리 생활 유머의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대신 작가가 읽은 책과 영화에 대한 사유가 챕터마다 녹아 있었다.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나도 무엇인가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욕망이 들곤 했는데, 작가가 풀어내는 후기들을 읽어보면 그런 마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작가는 매일매일 새벽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작업실에 가서 그 날 분량의 글을 쓴다. 그리고 본업을 하고, 퇴근하면 집에 와서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생활인으로서의 글쓰기다. 하루키의 소설 쓰기와 매우 닮아있다! 하루키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작업실에서 매일매일 소설을 쓰고 저녁에 퇴근해서 몸에 좋은 담백한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는가.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장으로 서술한 하루 일과처럼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늘 본업(경제활동-즉 매달 월급이 나오는 일)을 본업이라고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본업이고 싶은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도 않는다. 집안일도 많다고 보기에는 소소한 수준임에도 늘 일 끝나고 저녁 먹고 치우고 나면 자기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그 시간에 핸드폰만 들여다본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쓴 지가 언제지?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몇 주를 흘려보내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매일매일 글을 쓰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대단하며, 심지어 작가는 본업도 따로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성실하게 매일매일 글을 쓰고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작가도 맨 위에 내가 쓴 그런 마음을 토로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 빈 화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설레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데, 차분해지는 이유는 내가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책은 패배한 글의 결과물이라고는 조금도 볼 수 없지만 작가로서 그녀가 매일 느끼는 그 패배의 감정을 나는 아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패배하는 감정이 싫어서 글쓰기를 멀찍이 밀쳐두었다가 슬그머니 다시 돌아오곤 한다면, 그녀는 기꺼이 매일 그 순간을 장렬하게 맞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글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주도 결국 주말을 모두 흘려보내고 이제야 슬그머니 노트북을 열었다. 그래도 오늘은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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