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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Oct 11. 2020

말하기를 말하기 -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은 싫어하지만, '하면 는다'는 말은 좋아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 해보면 조금은 늘 것이다. 그리고 해봐야만 '아, 이 분야는 나랑 정말 안 맞는구나.'하고 판단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94p)


읽기, 쓰기, 말하기 중에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단연 '말하기'였다. 어릴 때는 내성적인 성격이 병적으로 심해 자기소개를 해야 하거나 발표를 해야 될 때면 식은땀이 줄줄 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책 읽는 것, 글을 쓰는 것은 모두 혼자 할 수 있지만 말을 하는 것은 혼자 할 수 없다. 물론 혼자 소리 내어 책을 읽거나 무엇인가 녹음을 하느라 이야기를 할 순 있지만 대개 말을 한다는 것은 2인 이상의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말이 어눌한 편은 아니었다. 듣는 것도 좋아했고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했다. 친구들은 내게 고민을 잘 털어놨고, 나는 버거운 기분이 들면서도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지 않아 기꺼이 고민을 듣는 역할을 자주 맡았다. 그렇게 1:1의 상황에서는 청산유수가 되었다가도 1: 다수의 상황만 되면 누가 입을 꽉 붙잡고 있기라도 한 듯 말이 안 나왔다. 

"조용한 성격이신가요?"

"말이 별로 없으신가 봐요?"

"너도 말 좀 해."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럴 땐 속으로 '아니에요. 저 말 많아요. 그냥 지금 사람이 너무 많을 뿐이에요!'하고 외치곤 했다. 그런 수줍음이나 부끄러움도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나아지긴 했다. 아직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표를 해야 하거나 인사를 해야 하는 건 너무 떨리지만 어릴 때만큼 심각해지진 않는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말하기에도 교육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누구나 말을 하고 있지만 모두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에도 우리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작 하루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가 누군가와 말을 하려고 하면 금방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말이야말로 많이 해 본 사람이 잘하는 것 중에 하나다. 그런데 말을 잘한다는 것이 뭘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말이 많은 사람이 불편했다. 말이 보통 수준보다 많은 사람들은 대개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고 자기 얘기가 끝난 후에는 급격히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많은 말만큼 평소의 태도나 그 말을 책임지는 행동이 비례하는 경우도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소위 '나대는' 유형에 대해 나는 내 과가 아니라는 판단을 일찍부터 내리고 멀리하기 급급했다. 어느 집단에서 잘 따지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은 그런 것이 필요했는데도 말이다. 


 사회에 나와보니 말을 해야 될 상황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대는' 것이 싫어 상대방이 알아주겠지, 조직이 알아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넘어가거나,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에서도 참았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고 생각하면 보통 모른다. 그냥 내가 말을 안 하면 모른다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해야 될 말이 있다면 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는 것 자체도 하나의 의견이기 때문에 그것이 오해를 낳기도 한다. 그런 오해를 몇 차례 겪고 내 성과도 없던 일이 되어 버리기도 하면서 나는 점점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의욕 없는 직원이 되어 있었다. 그런 것이 억울하면서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면담을 요청할 자신이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내 입장을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꾹꾹 참았던 감정을 터트리는 것이 무서워 관계를 끊어버렸다. 1:1로 친구와 앉아 내가 무엇이 불편했고 어려웠는지 설명하느니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을 택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부터 우연한 계기로 나는 입을 열게 되었다.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면서 부당한 처우를 당한 적이 있는데 이대로 그만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속으로는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얘기했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그 대표였다. 틈만 나면 직원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좋아했던 그 대표가 갑자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아마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표는 무시하는 것도 아니었고 수긍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를 하다 면담을 끝냈다. 그렇게 당황하는 대표를 보면서 나는 작은 용기를 하나 얻었다. 내가 말을 잘한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사람들도 모든 상황에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나대는' 사람들을 무작정 부담스러워히진 않게 됐다. 침묵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침묵하는 것만큼 비겁한 것도 없다. [말하기를 말하기]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는 일에 대해 너무 주저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말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기꺼이 경험하고 부끄럽더라도 굳은 살을 만들어야지. 그러다 보면 속이 꽉 찬 말하기를 여유롭게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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