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영화] 금정연
책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 이 인용문이 나온다. 처음에 읽었을 때도 기억에 남았지만 [담배와 영화]를 다 읽고 난 후 나는 다시 한번 이 인용문을 떠올렸다. 이 인용문대로라면 이 책이야 말로 시작과 끝이 없고, 중간도 없다. 그냥, 읽는 책이다.
처음 이 책을 몇 장 읽고 아, 나는 또 다 읽지 못할 책을 샀구나. 싶었다. 책은 일반적인 판형보다 약간 좁고 길쭉했다. 그리고 글씨체가 예뻤다. 종이의 질감이 좋았고 넘기는 맛이 좋은 잘 만든 책이었다. 분명 재미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어려웠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이어지자 나는 책을 덮었고 그대로 책장 위에 올려두었다. 그렇게 책장 위에 쌓이는 책들은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완독 하는 즐거움을 경험했다. 마지막까지 이 책을 다 읽고 그 어떤 책 보다 큰 성취감을 느꼈는데 그건 중간에 포기한 책을 다시 잡아 완독을 경험하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험 기간에 시험과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그렇게 하기 싫던 방청소마저 재밌는 원리와 비슷했다. 이 책이 방청소만큼 싫었다는 게 아니라 시험만 아니라면 뭐라도 재밌는 그 심정 말이다.
나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재택근무는 10시부터 7시까지였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나는 혼자 일어서거나 앉을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아이고야 소리가 아니라면 입을 열 일이 없다. 재택근무는 여유 시간이 많아 보이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아서 하루는 회사에 출퇴근할 때처럼 여유 시간도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그래서 10시에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1시간은 무조건 책을 읽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결심으로 제일 처음 고른 책이 이 책이었다. 어쩐지 이 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다 읽어내고 싶었다.
'읽다가 어려워서 포기한 책은 일하기 직전에 읽으면 재밌다'라는 가설이 있다면 그것을 입증할 만큼 이 책은 정말 재밌었다. 그렇게 독서 노트까지 적어가며 이 책을 다 읽었으니 뭐라도 적고 싶어 이 글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이 책에 대해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또 막막해진다. 나는 이 책에 대해 무슨 얘길 할 수 있을까? 그만큼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기나 한 것일까?
나는 작가의 전작인 [아무튼, 택시]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그 책은 내가 좋아하는 식의 유머가 가득하다. 말장난 같기도, 비꼬는 것 같기도 한 유머가. 나는 확실히 몸 개그보다는 말로 웃기는 것을 좋아한다. 재밌는 유머는 통찰과 창의력이 가득하고 그런 것을 만나 '피식'이라던가 '빵' 터지는 웃음을 경험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금정연 작가는 [아무튼, 택시]에서 몇 번이고 그렇게 나를 웃게 만들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혹시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어려워서 이 책을 포기했었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 책도 역시 작가의 그 말맛이 살아 있다.
단어와 단어는 꼬리잡기를 하듯 이어지고 그것은 다음 문장으로 이어진다. '의식의 흐름 기법'같기도 한 이 문장들에 취해 그저 술술 읽어나가기만 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러다 보면 남진의 <둥지>가 등장하고, 그것이 남진의 <둥지> 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으니. 그러니 이 작가가 곳곳에 심어놓은 농담과 유머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면 그냥 술술 읽어 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는 이야기 구조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기. 승. 전. 결], [서론. 본론. 결론],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의무 교육을 마치는 동안 이야기란 저런 구조여야 한다고 몇 번의 시험과 함께 인이 박혀 버린 나에게 그의 책이 어려웠던 건 그런 이유였다. 어느 부분을 읽든 시작 같기도, 중간 같기도 결론 같기도 했다. 아니 시작과 끝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중간만 있는 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확신이 없다. 작가는 충실하게 서론, 본론, 결론을 계획하고 그에 맞춰 한 권의 책을 완성해냈는데 내가 이 책에는 그게 없었다고 해서 망연자실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그래서 이 책이 신선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다 읽어보고 싶었다. '이야기'라는 것에마저 고정되어 있는 나의 인식을 탈탈 흔들어 물렁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작가는 이 책을 쓰는 동안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이 책을 과연 끝낼 수 있을까? 마감 기일은 이미 지나버렸는데 과연 원고를 넘길 수 있을까? 작가의 걱정과 고민의 결과를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시작과 끝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운 책 한 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책은 5일 동안 매일 1시간씩 나에게 지적인 즐거움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