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영화 - 시작과 중간, 끝이 없는 자유

by 김밀

[담배와 영화] 금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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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시작과 끝이 없고, 중간도 없다. 어느 책이든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이 맞다면, 이 책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일기가 아니고, 신문에 연재되는 글도 아니다. 일상의 사건에서 벗어나 있다. 그냥, 읽는 책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물질적 삶]



책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 이 인용문이 나온다. 처음에 읽었을 때도 기억에 남았지만 [담배와 영화]를 다 읽고 난 후 나는 다시 한번 이 인용문을 떠올렸다. 이 인용문대로라면 이 책이야 말로 시작과 끝이 없고, 중간도 없다. 그냥, 읽는 책이다.

처음 이 책을 몇 장 읽고 아, 나는 또 다 읽지 못할 책을 샀구나. 싶었다. 책은 일반적인 판형보다 약간 좁고 길쭉했다. 그리고 글씨체가 예뻤다. 종이의 질감이 좋았고 넘기는 맛이 좋은 잘 만든 책이었다. 분명 재미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어려웠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이어지자 나는 책을 덮었고 그대로 책장 위에 올려두었다. 그렇게 책장 위에 쌓이는 책들은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완독 하는 즐거움을 경험했다. 마지막까지 이 책을 다 읽고 그 어떤 책 보다 큰 성취감을 느꼈는데 그건 중간에 포기한 책을 다시 잡아 완독을 경험하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험 기간에 시험과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그렇게 하기 싫던 방청소마저 재밌는 원리와 비슷했다. 이 책이 방청소만큼 싫었다는 게 아니라 시험만 아니라면 뭐라도 재밌는 그 심정 말이다.


나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재택근무는 10시부터 7시까지였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나는 혼자 일어서거나 앉을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아이고야 소리가 아니라면 입을 열 일이 없다. 재택근무는 여유 시간이 많아 보이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아서 하루는 회사에 출퇴근할 때처럼 여유 시간도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그래서 10시에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1시간은 무조건 책을 읽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결심으로 제일 처음 고른 책이 이 책이었다. 어쩐지 이 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다 읽어내고 싶었다.

'읽다가 어려워서 포기한 책은 일하기 직전에 읽으면 재밌다'라는 가설이 있다면 그것을 입증할 만큼 이 책은 정말 재밌었다. 그렇게 독서 노트까지 적어가며 이 책을 다 읽었으니 뭐라도 적고 싶어 이 글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이 책에 대해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또 막막해진다. 나는 이 책에 대해 무슨 얘길 할 수 있을까? 그만큼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기나 한 것일까?


나는 작가의 전작인 [아무튼, 택시]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그 책은 내가 좋아하는 식의 유머가 가득하다. 말장난 같기도, 비꼬는 것 같기도 한 유머가. 나는 확실히 몸 개그보다는 말로 웃기는 것을 좋아한다. 재밌는 유머는 통찰과 창의력이 가득하고 그런 것을 만나 '피식'이라던가 '빵' 터지는 웃음을 경험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금정연 작가는 [아무튼, 택시]에서 몇 번이고 그렇게 나를 웃게 만들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혹시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어려워서 이 책을 포기했었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 책도 역시 작가의 그 말맛이 살아 있다.


담배는 시간을 연기로 바꾼다. 그것은 픽션이다. 영화는 시간을 공간으로 바꾼다. 그것도 픽션이다. 이 책에서 나는 픽션을 픽션으로 바꾼다. 그것은 두 배의 픽션. 혹은 그냥 픽션. 어쩌면 (절반의) 현실. 아니면 현실인 동시에 픽션인 무엇.... 이든 무슨 상관이며 난들 알겠는가? 인생은 계속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노래와 함께 시작한다.


현실일까 꿈일까 사실일까 아닐까

헷갈리고 서 있지 마 우

(13p)


단어와 단어는 꼬리잡기를 하듯 이어지고 그것은 다음 문장으로 이어진다. '의식의 흐름 기법'같기도 한 이 문장들에 취해 그저 술술 읽어나가기만 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러다 보면 남진의 <둥지>가 등장하고, 그것이 남진의 <둥지> 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으니. 그러니 이 작가가 곳곳에 심어놓은 농담과 유머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면 그냥 술술 읽어 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는 이야기 구조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기. 승. 전. 결], [서론. 본론. 결론],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의무 교육을 마치는 동안 이야기란 저런 구조여야 한다고 몇 번의 시험과 함께 인이 박혀 버린 나에게 그의 책이 어려웠던 건 그런 이유였다. 어느 부분을 읽든 시작 같기도, 중간 같기도 결론 같기도 했다. 아니 시작과 끝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중간만 있는 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확신이 없다. 작가는 충실하게 서론, 본론, 결론을 계획하고 그에 맞춰 한 권의 책을 완성해냈는데 내가 이 책에는 그게 없었다고 해서 망연자실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그래서 이 책이 신선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다 읽어보고 싶었다. '이야기'라는 것에마저 고정되어 있는 나의 인식을 탈탈 흔들어 물렁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인간의 상상력은 이야기를 만들어나감으로써 실존적 공허함에 억지로 질서를 부여하는데, 궁극적으로 무의미할 뿐인 인간의 이야기는 시작, 중간부, 결말을 산뜻하게 지닌 질서 있는 유기체를 기만적으로 엮어 낸다. 이렇듯 예술은 형식이 지닌 위안적 힘을 활용한다. 허구의 연금술은 사소한 일상사를 문학 속의 모험으로 변모시키지만, 그 결과 발생하는 이야기는 결코 진실이 아니다.

(74p)


작가는 이 책을 쓰는 동안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이 책을 과연 끝낼 수 있을까? 마감 기일은 이미 지나버렸는데 과연 원고를 넘길 수 있을까? 작가의 걱정과 고민의 결과를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시작과 끝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운 책 한 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책은 5일 동안 매일 1시간씩 나에게 지적인 즐거움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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