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인사 :: [서울아가씨 화이팅]

by 김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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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네이버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람이 떴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은지 너무 오래라 의아했다. 광고성 댓글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반갑게도 노니 언니였다. 언니의 말처럼 언니와 내가 마지막으로 댓글을 주고받은 것은 2년 전이었다. 2년이라니. 시간은 이렇게나 빨리 흐른다.

언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신기하게도 네이버 유랑(유럽여행) 카페에서였다. 언니가 남겼던 여행 후기가 너무 좋았고 언니의 다른 글이 궁금해서 블로그를 방문했다. 그렇게 언니의 블로그에 다녀간 흔적을 남긴 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블로그 이웃으로 많은 댓글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흘렀고 나는 크고 작은 일상의 변화를 겪으며 블로그를 잊고 살게 됐다.

그래도 가끔 언니의 글이 새글로 피드에 오르는 것을 보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언니에게 마음으로 작은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저 다시 댓글을 남기면 되는 일인데도 어째서 그 말을 떼기가 그렇게 쉽지 않던지.


그러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인터넷 상의 인연일 뿐인 나에게 남겨준 노니 언니의 댓글이 참 반갑고 미안했다. 미안함은 그저 내가 먼저 안부를 묻지 못한 내 무심함에 대한 미안함이었고 반가움이 훨씬 컸다. 언니는 정말 기쁜 소식을 전해줬는데 언니가 쓴 책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책이라니! 언니와 안부를 주고받지 못한 2년 동안 언니는 꾸준히 기록했고 그 기록의 결실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언니는 내 생각이 났고 책을 한 권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아. 이렇게 그냥 책을 받아도 되는 걸까? 염치없지만 나는 언니의 선물을 넙죽 받았다.

그리고 곧 언니의 책이 도착했다. 연두색의 푸릇푸릇한 표지에 단정한 하얀 글씨가 예쁜 책이었다. 어쩐지 책에서 푸른 사과향이 날 것만 같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내내 언니의 책을 읽었다. 언니가 들려주는 얘기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설레기도 했다. 언니가 들려주는 상주 얘기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상주의 풍경을 혼자 떠올려보기도 하고 sns에 검색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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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와 관련 없는 강원도 사진)

소속을 바꿔가며 안정감을 얻는 방식에 익숙한, 독립하지 못한 자아에 대한 콤플렉스가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도시를 벗어나 직접 몸을 움직여 삶을 꾸리는, 동경하는 모습의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잘 몰라서 그럴 수 있었다. 잘 몰라서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12p)
아, 아이가 없다.
'버스 벌써 출발했나'
버스가 이미 지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간이었다. 눈으로 버스와 아이를 찾는데 멀리 안개 사이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였다. 안심이 됐다. 버스는 아직이구나.
남은 4분, 정류장 안쪽에 서서 빠르게 눈썹을 그리고 있는데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버스 오는데요."
저 멀리서 안개를 헤치고 첫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뒤돌아서 정신없이 뭘 하고 있는 내가 버스를 놓치기라도 할 까 봐 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아는 척을 하지 않은 사이지만, 서로의 수요일 아침을 안다. 매일 첫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아이. 뒷자리를 좋아하는 아이. 종점 하나 전에 내리는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천천히 내린 뒤에야 마지막으로 내리는 아이. (80p)
행복은 상주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서울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따뜻한 라테와 달콤한 팬케이크에 있었다. (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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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했던 것들은 진로에 대한 것들이었다. 10대에는 30대가 되면 당연히 내가 무엇인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자리를 잡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30대란 그런 나이니까. 그래서 궁금했다. 30대의 나는 과연 뭘 하고 있을까?

30대가 돼서도 여전히 10대 때와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나는 여전히 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 그 고민을 가장 많이 한다.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 계속해서 일이란 것을 하고 있고, 시급, 주급, 월급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경제활동을 하고 사회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일이 회사에는 필요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도대체 이걸 왜 해야 할까? 이런 생각에 문득문득 휩싸인다. 어쩌면 대답은 간단하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다.

특별한 스펙이 없는 내가,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인 내가 합격할 수 있는 회사의 범위란 생각보다 좁으니까, 그저 나를 선택해줬으니 하루하루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의 일을 해내고, 차곡차곡 월급을 받는다.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진다.

알지만, 이제는 너무 잘 알지만 그럼에도 문득문득 마음이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언니는 현실과 타협하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언니가 어떻게 상주에 가게 됐는지, 상주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또 그곳에서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 책에는 담백하지만 따뜻한 문장들로 가득 남아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똑같은 핑계를 대며 하루하루를 버텨갈 때 언니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그 기록은 쌓여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문장으로 적으면 단 몇 문장으로 끝나버리지만 기록을 꾸준히 한다는 것,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고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다.

언니가 나를 잊지 않고 이 책을 보내준 것이 다시 한번 고마웠다. 그저 책을 보내줘서가 아니라 이런 글을 읽게 해 줘서.


(그러고 보니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뭔지도 몰랐던 내게 브런치를 알게 해 준 것도 언니였다. 그렇게 언니 덕에 이곳을 알게 되어 글을 쓰면서도 그 시작을 완전히 잊고 지내고 말았다니. 다시 한번 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겠다.)



[서울아가씨 화이팅]의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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