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집 아르바이트 수난기
식칼을 들고 쩔뚝거리며 야채 창고로 들어서는데
불빛도 잘 들지 않는 컴컴한 창고에는 아무것도 없는 오래된 철제 앵글로 된 진열장과
휑한 바닥에는 아주 큰 양파망이 두개가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어,
그때 주방과 연결된 쪽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거야
“야….!! 오늘 다마네기 백마… “
다마네기 ??? 백마? 그게 뭐야.. ??
어리둥절한 상황을 뒤로하고 용기내서 안쪽을 향해 물었지..
“ 배배배 뱅마가 머에요 ??”
그 질문에 날아온 대답은 나를 한참 멍하게 만들었어..
“오늘 양파 백개 까라고 새끼야… “
백개라고? 백개를 언제까.??
오늘 서빙 안 해?
밥 안 먹어?
그리고 주방장 목소리는 아닌 것 같고 지금 이야기하는 놈은 누구야 대체..??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 살면서 양파를 까 본 적이 없었다는 거다.
일단 앉아서 양파를 까기 시작했어.
머리를 짜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
겉에서부터 껍질을 한 겹씩 살살 까보 기도 하고
칼로 뿌리 부분을 썰고 반대로 까 보기도 하고
양쪽을 칼로 자른 후 까보 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해보니 양쪽을 모두 자른 후 껍질을 까는 것이 제일 속도가 빨랐어.
혼자 양파와 실랑이를 하기를 이십 분여..
방수 앞치마와 긴 옷을 입고 창고 안에서 양파를 까다 보니 슬슬 더워지고 땀이 나기 시작하는 거야.
머릿속에서 생긴 땀방울이 모여 머리카락 사이를 타고 여러 줄기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뒤로 가는 땀방울이 아니고 앞으로 내려오는 땀방울이었어.
머리에서 흐른 땀들이 이마를 지나 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지 뭐야.
양파를 가지고 주물러대던 양손은 이미 양파 그 자체였지,
그걸로 눈을 비볐다간 아마 다시는 눈을 뜰 수도 없었을 거야.
수건도 없고 휴지도 없고 한 번 눈물이 눈에 들어가 그쪽으로 물길이 나고 나니까 땀방울들이
그 물길을 타고 줄줄이 흘러내려오기 시작했어.
당시 스타일을 중시하던(ㅋㅋ) 나는 당연히 머리도 길었지.
구불구불 파마한듯한 곱슬머리에 긴 머리가 남들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양의 땀을 머금고 눈 쪽을 향해 지속적으로 땀방울들을 공급해주는 탱크 역할을 하고 있었어.
확 머리를 다 뽑아 버리고 싶더군. ;;; ;
양파를 까려면 고개를 숙이고 양파를 봐야 하는데..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양파를 까 보기도 하고
다시 숙여서 까 보기도 하고 하다가
결국 나는 헤드뱅잉 하듯 고개를 뒤로 제쳤다 숙였다 하며 양파를 까기 시작했어.
햇볕이 쨍한 아침나절
어두컴컴한 창고에 혼자 앉아
헤드뱅잉을 하듯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한 손에는 식칼 한 손에는 양파를 들고 춤추듯 껍질을 까제 끼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니야… 완전 미친년이 따로 없지…
웃긴 건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마구 스쳤는데 유독 그만두겠다는 생각만 못했다는 거지…
하긴 머리를 뱅뱅 돌리며 양파를 까는데 뭔 생각이 있을 수 있었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은 점점 따가워져 오고 시야는 계속 흐려지는 거야..
양파 때문에 매운 눈에 눈물이 범벅이 돼서 눈을 뜰 수도 없고 감을 수도 없는 상황인 거지
그냥 팔뚝으로 쓱 닦지 그랬냐고??
맞아 그렇지.. 그럼 되지 ㅋㅋ
근데 이 병신은 그것도 생각 못하고 계속 머리를 빙빙 돌리고 있었지 뭐야.. ;;
그때였어
누군가 내 뒤통수를 빡하고 떄리며 한마디 하더군…
“벼-얼… 이런 미친년… 새로 알바를 뽑았다더니 미친놈을 뽑아야 놨네 “
돌아보니 주방장이었어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방에 주방장이 둘이 있었어 그중에 한 명이 내 모습을 보다 못해
하도 어이가 없으니 뒤통수를 갈긴 거지… ;;;
그러고는 양파망 위로 휴대용 크리넥스 한팩을 툭하니 던지는 거야..
“닦아 인마… “
그리고서는 바나나 우유 하나와 빵 한 봉지를 던져주며 한마디 하더군…
“힘드냐???”
헐…
순간 가슴속이 울컥하면서 진짜로 울뻔했어.
그렇게 멍하게 주방장을 보고 있는데..
“뭐해 새끼야.. 먹으라니까.. 그리고 칼 이리 줘봐..”
그리곤 내 칼을 건네 받은 주방장이 양파를 들더니 직접 까기 시작하는 거야.. ;;
혹시 양파가 스스로 껍질 벗는 것 본적 있어??
주방장이 칼을 들어 양파를 바라보자 양파는 곧 혼자서 껍질을 벗기 시작했어
나 한테는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놈들이 주방장 앞에서는 아무런 저항 없이 껍질을 벗고 그 하얀 속살을 거리낌 없이 홀라당 홀라당 보여주는 거야…
나는 바나나우유의 시원함과 샤니 옥수수 크림빵의 달콤함을 잊은 채 넋이 나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지…
어떻게 하면 저렇게 양파를 깔 수 있을까...
나도 하고 싶었어..
나도 그렇게 양파를 까고 싶었던 거지..
“빨리 처먹어… “
내가 빵과 우유를 다 먹고 나자 주방장은 닌자처럼 칼을 휙 던져 쌓여있던 양파의 한가운데 정확히 따악… 하니 꽂고서는 그 진동의 여운이 채 멈추기도 전에 휘리릭 하고 사라지는 거야.. ;;;
솔직히 완전 완전 완전 감동이었어..
양파 까는 것도 감동이었고 닌자가 표창을 던지듯 칼을 던져 양파에 딱 꽂는 그 모습도 감동이었어!
가슴속에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결심했지
양파를 잘 까는 알바가 되자…
순식간에 백개 이백 개 삼백 개를 날려버리는 엄청난 기술을 습득하자..
결국 이 결심과 훗날의 노력이 군대를 입대한 후 훈련소의 취사병 지원을 나 갔을 때
중국집 알바 출신과 자존심을 건 양파 까기 승부를 벌이게 된 계기가 될 줄은 이때는 몰랐던 거야
그렇게 열한 시 사십분까지 70개 정도의 양파를 깠던 것 같아,
내가 빵 먹는 동안 주방장 앞에서 스스로 껍질을 벚어젖힌 놈이 스무 놈이 넘으니까
참 초라한 실적이었지..
하지만 시간은 이미 11시 40분 다시 복귀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어
내일부터는 기필코 더 많이 까겠다는 다짐을 반복하며 다시 가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
가게로 돌아오니 이미 식사는 다 치워져 있었고
나는 선배가 주는 빨간색 줄무늬 홀복을 입고 서빙을 하기 시작했어..
서빙에 필요한 내용을 몇 가지 배웠어..
주문을 받는 방법
전표에 적는 메뉴 이름은 또 달랐어.
칼국수는 "칼"
만둣국은 "국"
만두는 "두"
냉면은 "냉"
전표를 반드시 두장을 적어 계산대와 주방에 넣어주어야
주문 마무리가 끝나는 거지
근데 시작부터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 있더군..
전표 위에 테이블 번호를 적어야 했어
테이블 번호는 주문할 때와 서빙할 때 두 번 필요한데
열두 시가 되어가고 손님들이 올 시간인데 순식간에 테이블 번호를 다 외우라는 거아. 헐…
게다가 테이블에 붙어있는 번호는 떨어진 것도 많고 온통 뒤죽 박죽에
가게 안에 간이로 만들어 놓은 이층 테이블들이 또 있었어.
주방에서는 뭘 하는지 두들기고 웃고 떠들고 정신이 없고
난 부랴 부랴 테이블 번호를 외우느라 정신없는 새
거짓말처럼 12시가 다가오자 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하는 거야...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