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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0일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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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Jun 20. 2019

가방에 대하여

4가지 생각

가방 1

거의 이 년 동안 매일 들고 다니는 빨간 백팩이 있다. 자전거 용품으로 유명한 브룩스 잉글랜드 제품이다. 이 가방을 너무 사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꽤 어려웠고 구매 대행으로 사기에는 학생인 나에게(물론, 직장인인 지금도)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이 가방을 찾아 헤매던 중에, 중고나라에 물건이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새 제품인데 새것보다 더 싼 가격이라 바로 연락을 해서 구매를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가방을 선물 받았는데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서 중고로 판다고 했다. 선물 한 사람이 이 사실을 알면 조금은 슬플 수도 있겠지만, 나와 가방은 이를 계기로 만나서 거의 한 몸처럼 다니고 있으니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내가 욕심을 갖고 열심히 찾아서 구매한 몇 안 되는 물건이라 그런지, 이 가방에는 애정이 간다.



가방 2

가방의 무게는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이다. 그리고 그 안의 많은 부분이 욕심으로 차 있다. 순례길을 처음 걸을 때 내 가방에 얼마나 많은 물건이 있었는지... 그 가방을 메고 하루를 걸은 후에 내 체력에 이 정도 무게의 삶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가방 속 삼 분의 일을 버렸다. 그리고 걷다가 힘들 때마다 내 가방에 어떤 것을 더 버릴 수 있을지 생각했다. 가방의 가장 아래부터 위까지 모든 물건을 떠올리고 그 무엇도 버릴 것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이 가방의 무게가 내가 그 길 위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무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폰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었던 일기장, 길을 걸으면서 꺼낸 적이 거의 없었던 화장품,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날씨지만 버릴 수 없었던 비옷 등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욕심으로 가득 찬 가방이었다.



가방 3

‘제 가방은 제가 들을게요.’ 여러 사람이 내 가방을 들어주려 했었고,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내 삶의 무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별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를 바꾸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 가방이 항상 내 등 뒤에 있었다.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그 사람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나의 욕심이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는 순간이 다가올 것 같아 두렵다. 나는 나, 너는 너. 선을 넘을 수 없도록 서로를 갈라놓는 병에 걸린 것 같다. 

가끔은 나도 궁금하다. 나는 평생 이렇게 독고다이 스타일로 살지, 아니면 욕심과 삶의 무게를 서로 나누면서 살 사람을 만날지. 


가방 4

요즘은 가방 안에 고양이 간식을 꼭 챙긴다. 길을 가다가 길고양이를 만나면 간식을 꺼내 조심히 다가간다.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었던 고양이들은 경계를 풀고 다가와서 간식을 먹는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고양이는 뭔가 맛있는 냄새를 맡더라도 쉽사리 다가오지 못한다. 그런 때에는 근처 깨끗한 공간에 간식을 짜놓고 자리를 피해준다. 멀리서나마 고양이들이 맛있는 간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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