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by fichten

올해처럼 긴 장마와 갑작스러운 폭우, 사람들이 쓰러질 만큼 지독했던 폭염이 또 있었을까.

유독 기후변화가 유별났던 해인만큼 제일 큰 영향을 받았던 곳은 아마도 농어촌 부문이 아닐까.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어렵고 힘든 여름날을 보냈다고 말하고 싶다.

뉴스에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인구 10만도 안 되는 소도시)에 주소지가 있는 면 단위까지 정확하게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최대 강수량을 기록했다며 연일 보도하는 것은 그만큼 이곳 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며칠 내내 무섭도록 내리 퍼붓는 것은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조 부 때부터 일궈오던 밭이 물에 잠기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집 앞 넓은 들녘이 마치 강물처럼 변해가는 것은 하루면 충분했다.

이제 막 파릇파릇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벼들은 온데간데없고 누런 흙탕물과 여러 가지 부유물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은, 이곳도 이제는 자연재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밭 시설 하우스 안의 고추는 마치 수족관의 수초처럼 윗부분만 보이고, 밟고 다니던 땅은 하구의 강물이 역류를 해서 어느새 넘실대는 강이 되어 있었다.

고춧대 아랫단에는 며칠 전에 빨간 첫물 고추들이 이제 막 달려 있었는데 참 막막하고 또 막막할 따름이었다.


기후위기, 이 말은 예전부터 많이 써 왔었고 매번 중요시되는 이슈이기도 하다.

하지만 매년 겪는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서 식량위기를 겪거나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의 우선순위가 되고,

강대국들 간의 갈등으로 국가 간의 경제적인 위기가 더 시급하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 나타나는 이상 기온 현상은 동화책에 나오는 마법사의 세계도 아니고 지구를 지켜주는 영웅들이 나오는 영화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8월의 여름날, 스웨덴의 열 다섯 소녀는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팻말을 들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으로 향했다.

그 해 유럽은 45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이곳저곳에서 산불이 나고 사람들은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소녀는 스웨덴 정부에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시위를 계속 이어나갔다.

2019년 스웨덴의 그레타 튠베리라는 소녀가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함으로써,

다시 한번 기후변화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게 된다.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받은 첫 번째 세대이며,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마지막 세대다."


그레타 튠베리의 말은 곧 외침이다. 아니 절규처럼 들린다.

어쩌면 매우 절박하여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지금 이 순간의 행동들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이 세대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절박함이 처절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희망적임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학생이 학교 공부에 충실해야지, 무슨 어른 일에 껴들지 하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 입장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그것도 듣고 보면 맞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소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만약에 내 아이가 이런 선택을 한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안돼. 정신 차려. 이런 말이 제일 먼저 나올 것이다.

네가 나선다고 달라질 거 같아. 그런다고 저기, 미국하고 중국이 사이좋게 우리 그러자, 할 거 같아.

아니 먼저 우리나라에서 말이지, 네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아마도 그곳 경비원이 그러겠지.

학생, 여기서 이러면 혼나. 어서 집에 돌아가.

모든 것이 부정적일 수는 없지만 아직 우리는 한 스웨덴 소녀의 입장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냥 개개인이 환경운동가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물에 잠겼던 밭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다 썩어버린 고추들과 단호박들이 살아서 나의 대출금을 갚아주는 않는다.

처음으로 참깨를 사 먹은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는 않는다.

잠시 어린 소녀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하는 것과 또다시 떨어지는 빗방울에 움찔해야 하는 상황이 돌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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