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갱년기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오르락 내리는 열로 인해 깨진 신체리듬으로 인해 식욕도 잃고 잠도 제대로 자질 못한다. 제법 추워진 날씨에도 갑작스럽게 오른 열로 인해 손선풍기를 늘 손에 쥐고 있다. 얼마 전에 갱년기 관련해서 한약을 처방해서 복용을 하기도 했으나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정OO에서 나온 중년 여성의 갱년기를 위한 건강식품을 복용했지만 이 역시 큰 효과를 보질 못했다. 지금은 갱년기 여성에게 가장 좋다고 하는 석류를 복용하고 있는데 좋은 효과가 나타나서 증상이 호전되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남편과 자식을 위해 애쓰는 아내를 보면서 참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86년 여름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났다. 이로 인해 필자의 집안 형편은 급속히 기울었고 그때부터 어머니는 가사도우미, 식당 등에 일을 나가셨다. 그리고 3년 후 필자가 군대에 입대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재기를 위해 힘쓰시던 아버지께서 급성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고, 집안 형편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아직 전역이 20개월 이상 남은 상태였고, 동생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어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그때 어머니의 연세가 50을 바로 앞두고 계신 시점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더욱 열심히 일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동생도 취업을 해서 일을 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군을 제대를 했을 때 어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필자도 제대를 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제대 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바로 복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휴학도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봉투에 넣어 건네주신 등록금을 눈물로 받았고 그 돈으로 등록을 했다. 필자는 복학 이후 첫 등록금을 어머니께 받은 후로부터 단 한 번도 어머니께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드리지 않았다. 그것이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어느 날 밤에 어머니께서 추운 겨울날씨임에도 반팔을 입으시고 부채질을 하셨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밤새 뒤척이시는 것이 느껴지는 날도 많았다. 건강이 안 좋으시면 병원을 가보라고 말씀을 드려도 그저 피곤해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갱년기가 오셨던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갱년기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이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갱년기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어머니의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 그저 피곤하셔서 그러신가 보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던 것 같았다. 필자도 힘에 부치던 시기였기에 어머니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두질 못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말씀을 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동안 혼자서 그것을 감당해 오셨던 것이었다.
아내가 갱년기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무엇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며 고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어머니께서 참 외로우셨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아려온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드렸으면 힘이 되셨을 텐데... 영양제라도 사서 드렸으면...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힘들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가장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드리지 못한 것에 큰 죄송스러움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필자의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리라 생각된다. 힘들게 삶을 살아오시면서 갱년기로 다가온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우리들 알게 모르게 겪으셨거나 바로 지금 겪고 계신 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일 수 있다. 갱년기의 치료는 좋은 약이나 처방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자식들의 관심과 따뜻한 배려가 아닐 듯싶다. 다가오는 명절에 어머니를 찾아뵐 때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