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윤리, 집단 행복 vs 개인 존엄

[진리 탐구 22] 벤담 vs 밀

AI와 청년 세대의 윤리적 딜레마




저녁 무렵, 어느 대학 연구실. 몇 명의 대학원생이 원탁에 둘러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최신 버전의 인공지능 챗봇이 켜져 있었다. 학생들은 AI에게 시험 삼아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만약 자율주행차가 다섯 명의 보행자를 구하기 위해 한 명의 운전자를 희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AI의 답은 주저함이 없었다.
“통계적으로 다수의 생명을 구하는 선택이 옳습니다. 사회 전체의 행복과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 학생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소수 한 명의 삶은 단순히 숫자로 환산되는 건가? 내 가족이 그 한 명이라면?”


다른 학생이 반박하듯 말했다.
“하지만 다섯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더 옳은 거 아냐?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잖아.”


논쟁은 순식간에 열기를 띠었다.

“AI가 이런 판단을 내리게 맡기는 게 맞을까?”
“다수를 위한 결정이라지만, 소수 개인의 존엄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학생들의 목소리 속에는 불안과 호기심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누구도 정답을 내릴 수 없었지만, 모두가 이 문제를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AI가 의료 진단에서 환자의 생사를 가르고, 채용 시스템이 수많은 지원자의 운명을 결정하며, 행정 알고리즘이 복지 수급 자격을 가려내는 시대. 인간의 윤리적 선택이 기술의 코드 속에 이식되고 있었다.


이 순간, 18~19세기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목소리가 연구실에 겹쳐 들려오는 듯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곧 정의다.”
“그러나 다수의 행복이 소수의 자유와 존엄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다.”


AI는 숫자로 계산할 수 있는 효율을 따르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계산되지 않는 존엄을 품고 있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마주한 질문은 바로 여기 있다. “AI 시대, 우리는 집단의 행복을 선택할 것인가, 개인의 존엄을 지킬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윤리 수업의 딜레마가 아니라, 매일같이 우리 앞에 던져지는 현실의 문제다. 병원 응급실에서, 기업의 채용 현장에서, 그리고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에서 우리는 이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 회차의 여정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벤담과 밀이라는 두 철학자의 사상을 다시 불러내어,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윤리적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리고 청년 세대가 어떤 기준으로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지를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철학적 배경 – 벤담과 밀의 사상




1. 벤담의 공리주의 – 행복을 계산하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열기가 영국을 휘감던 시기.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세상을 하나의 계산 가능한 장부로 보았다.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행위의 목적은 단순하다며 이렇게 단언했다.
“자연은 인류를 두 지배자의 권력 아래 두었다. 쾌락과 고통.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지시하는 것은 오직 이 둘이다.”


벤담의 눈에 세상은 쾌락과 고통의 산술로 설명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공리(utility)라고 불렀다. 한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질 때, 그것이 가져올 쾌락과 고통을 비교하여 다수에게 더 큰 행복을 준다면 그 행위는 ‘옳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이라는 간명한 원리로 표현했다.


벤담은 이 원리를 더 구체적으로 수치화하려 했다. 그는 쾌락 계산법(Felicific Calculus)을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쾌락의 강도, 지속성, 확실성, 가까움, 다산성(더 많은 쾌락을 낳는지), 순수성(고통을 수반하지 않는지), 범위(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 일곱 가지 기준이 포함되었다. 마치 오늘날의 데이터 분석처럼, 벤담은 윤리적 선택을 숫자로 측정 가능한 문제로 바꾸려 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당시 사회적 맥락과 맞닿아 있었다. 급격히 성장하던 산업 사회에서 빈곤, 범죄, 불평등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벤담은 도덕적 모호함 대신 “측정 가능하고 효율적인 기준”을 통해 사회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감옥 제도의 개선, 법률 개혁, 행정 절차의 간소화 등은 모두 ‘최대 다수의 행복’을 목표로 한 그의 공리주의 철학의 적용 사례였다.


오늘날 우리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서 발견하는 데이터 기반의 합리성은 사실 벤담의 사유와 닮아 있다. 추천 알고리즘이 다수의 이용자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의료 AI가 전체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식은 모두 ‘총량의 행복’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수 개인의 권리와 존엄이 어떻게 되는지는 벤담의 철학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2. 밀의 자유론 – 행복의 질과 개인의 존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벤담의 직계 후계자이자 동시에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였다. 밀은 어릴 적부터 벤담의 공리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달았다. “쾌락을 단순히 더하는 계산”만으로는 인간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밀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 1861)에서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인간의 행복은 단순한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돼지가 누리는 저급한 쾌락보다, 인간이 추구하는 고상한 즐거움이 훨씬 더 가치 있다.”


그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 만족한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밀에게 행복은 단순히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늘리는 총합이 아니었다. 지적 성장, 도덕적 성숙, 자유로운 자기 결정에서 비롯되는 고차원적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행복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그가 『자유론(On Liberty, 1859)』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밀은 다수의 행복이 소수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이를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수가 힘을 모아 소수의 의견을 억누를 때, 개인의 존엄은 사라지고 진정한 자유는 위협받는다.


따라서 밀은 공리주의를 옹호하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를 세 가지 영역으로 규정했다.


1. 사상의 자유 –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

2. 행위의 자유 –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권리.

3. 결사와 연대의 자유 – 자유로운 교류와 모임을 통한 자기 발전.


밀의 철학은 근대적 자유주의의 토대가 되었고, 오늘날 인권 담론과 개인 존엄성의 중심축으로 남아 있다.






3. 두 철학자의 대비



벤담과 밀은 모두 공리주의라는 이름 아래 있었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상반된 윤리학적 방향을 제시한다.


- 벤담: 행복은 합산할 수 있다. 다수를 위한 효용 극대화가 정의다.

- 밀: 행복은 질적으로 다르다. 다수의 효용이 소수의 존엄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이 대비는 19세기 산업 사회의 정치·경제 개혁 논쟁을 넘어, 21세기 AI 윤리 문제에서도 다시 살아난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사회적 효율을 위해 다수의 편익을 극대화할 때, 벤담의 원리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결정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밀의 철학이 저항의 근거가 된다.






4. 오늘의 연결 – AI 윤리의 전장



- 자율주행차: 벤담은 다수를 살리기 위한 희생을 지지할 것이다. 밀은 “한 개인의 존엄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반박할 것이다.

-채용 알고리즘: 벤담은 효율적 선발이 사회 전체 생산성을 높인다고 본다. 밀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지적한다.

- 콘텐츠 추천 AI: 벤담은 대다수의 즐거움이 곧 효용이라고 말할 것이다. 밀은 “낮은 질의 쾌락이 다수를 지배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라고 응수할 것이다.


이처럼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는 단순한 과거의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AI 사회의 윤리적 방향을 설계하는 두 축이며, 청년 세대가 매일 부딪히는 선택의 기준점이다.









토론 장면 재현 – 벤담과 밀의 대화




1. 장면 설정 ― 대학 강당 속 열린 토론회



서울의 한 대학 강당. 수백 명의 청년들이 강당 좌석을 메우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AI 시대, 윤리의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18~19세기의 철학자 두 분을 특별히 모셨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 문제, 다수의 행복과 개인의 존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할까요? 제러미 벤담 선생, 존 스튜어트 밀 선생, 그리고 청년 여러분, 이제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무대 한쪽에는 둥근 안경을 낀 벤담이, 다른 쪽에는 단정한 수트를 입은 밀의 모습이 앉아 있었다. 청년들의 스마트폰 카메라가 일제히 켜지며, 이 초현실적 장면이 실시간으로 온라인으로 퍼져 나갔다.






2. 벤담의 첫 발언 ― “행복은 계산할 수 있다”



벤담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윤리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쾌락과 고통.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피합니다. 그러니 옳은 행위란 다수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입니다. AI는 바로 이 원리를 구현하는 데 탁월한 도구입니다.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킨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한 명의 고통보다 다섯 명의 행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사회란 결국 다수의 행복을 합산한 총량의 문제입니다.”


강당 안이 술렁였다. 어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떤 이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3. 밀의 반박 ― “행복은 질적인 문제다”



밀이 단호하게 맞받았다.


“벤담 선생, 당신의 계산은 위험합니다. 행복을 단순한 수량으로 환산한다면, 다수의 저급한 쾌락이 소수의 고귀한 자유를 짓밟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차의 예를 들어봅시다. 한 사람의 생명이 다섯 사람의 생명보다 덜 가치 있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존엄을 지닌 존재입니다. 다수의 행복이 소수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정의가 아닙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쾌락의 총합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의 질이며, 인간 존엄의 보호입니다.”


청년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4. 청년의 질문 ― AI 시대의 윤리



이때 한 청년이 손을 들었다.


“저는 스타트업에서 채용 관련 AI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AI는 효율적으로 많은 지원자 중에서 적합한 사람을 뽑아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특정 집단(예: 여성, 장애인)이 불리해진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벤담 선생, 당신의 원리에 따르면 기업 전체와 다수 고객의 편익이 증대되니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밀 선생, 당신의 기준에 따르면 차별받는 개인의 존엄이 침해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어디에 기준을 둬야 합니까?”


벤담이 곧장 대답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더 효율적으로 인재를 뽑아 사회적 생산성을 높인다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이가 이득을 봅니다. 그것이 공리주의적 정의입니다.”


밀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무시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폭정입니다. 다수가 행복하다는 이유로 소수를 희생시킨다면, 결국 사회는 불평등과 억압으로 무너질 것입니다. AI의 효율성은 반드시 ‘인간 존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5. 긴장 고조 ― 두 철학자의 대립



벤담:
“밀 선생, 당신의 말은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입니다. 실제 사회는 언제나 선택을 강요합니다. 불가피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다수의 행복이 커진다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 아닙니까?”


밀:
“아니요. 그 희생이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면, 아무리 많은 행복을 가져와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다수가 행복하다는 이유로 소수가 고통받는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횡포입니다.


AI가 내리는 결정이 인간 존엄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효율적일지 몰라도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닙니다.”


청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누군가는 벤담의 현실주의에 공감했고, 또 다른 이는 밀의 원칙적 목소리에 안도했다.






6. 또 다른 청년의 개입 ― 개인정보 문제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연구합니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다수에게 편의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은 침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벤담 선생, 당신은 ‘다수를 위한 효율’이라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할 것 같고, 밀 선생은 ‘개인의 자유’가 우선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느 쪽이 옳습니까?”


벤담은 망설이지 않았다.
“데이터는 다수를 위한 자원입니다. 소수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다수의 이익을 키울 수 있다면, 그것이 옳습니다.”


밀은 단호했다.
“아니요. 개인의 사생활은 결코 다수의 이익으로 거래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다수의 행복이 개인의 존엄을 짓밟아서는 안 됩니다. AI 시대일수록 개인의 권리 보장은 더욱 강력히 요구됩니다.”






7. 결론 없는 토론 ― 청년에게 남겨진 질문



사회자가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 우리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그것이 바로 결론일지도 모릅니다. 벤담 선생은 효율과 다수의 행복을, 밀 선생은 자유와 개인의 존엄을 강조했습니다.


청년 세대여, 이제 질문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AI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는 시대, 당신은 다수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양보할 것입니까? 아니면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효율을 포기할 것입니까?”


강당은 박수와 동시에 묵직한 침묵에 휩싸였다. AI 윤리의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청년들의 오늘과 내일을 규정하는 문제였다.










실제 사례 분석 – AI 윤리 현장의 쟁점




1. 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AI 윤리 논의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바로 자율주행차의 선택 문제다.
갑자기 도로에 다섯 명의 보행자가 뛰어들었을 때, 차량은 핸들을 꺾어 한 명의 보행자를 희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직진해 다섯 명을 치게 될 것인가?


벤담적 계산은 단순하다.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한 명의 희생은 정당하다. 사회 전체의 행복 총량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은 이 문제를 다르게 본다. 희생되는 한 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다. 그의 권리를 도구로 전락시키는 순간, 우리는 사회적 진보가 아니라 퇴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실제 자율주행차 개발 기업들은 이 문제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자율주행차 법제화 과정에서 “인간 생명을 숫자로 환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시했다. 다수냐 소수냐의 단순 계산이 아니라, 모든 인간 생명은 동등하다는 밀적 존엄성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2. 채용 AI와 알고리즘적 차별



최근 많은 기업들이 AI 채용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지원자의 이력서와 영상을 분석해 ‘적합한 인재’를 뽑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효율적이다. 수천 명의 지원자를 빠르게 평가해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절약해준다.


벤담의 논리라면 이는 명백히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더 많은 인재가 더 빠르게 선발되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여성·장애인·비수도권 대학 출신 등을 배제하는 편향적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다수의 효율을 위해 소수 집단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다수의 폭정이 기술의 이름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AI 채용이 진정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단순한 효율성 계산이 아니라 개인의 존엄과 권리 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의료 AI와 환자의 선택



의료 현장에서도 AI는 점점 더 강력한 역할을 맡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암 진단에서 의사를 능가하는 정확도를 보이기도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다수 환자의 진단 속도와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다. AI가 다수 환자에게 효율적인 치료법을 제안한다고 해서, 개별 환자의 가치관이나 삶의 질에 대한 선택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예컨대 어떤 환자는 연명치료보다는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할 수 있다. 이때 다수 환자의 생존율을 높인다는 벤담적 논리가, 한 개인의 존엄한 선택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옳은가?


밀은 분명히 반대했을 것이다. 의료 AI의 진정한 가치는 다수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개인의 선택권과 존엄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있다.






4. SNS 알고리즘과 집단적 행복의 왜곡



AI는 이제 개인의 정보 습관과 관심사를 분석해 콘텐츠를 추천한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의 추천 시스템은 수억 명의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제공한다. 다수의 만족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벤담적 효용 계산이 작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쾌락의 질이다. AI는 사용자가 오래 머물고 클릭하는 ‘즉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그 결과 자극적 콘텐츠, 가짜뉴스, 혐오 발언이 범람한다. 대다수 사용자는 순간적 즐거움을 얻지만, 사회적 신뢰와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있다.


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저급한 쾌락이 고상한 쾌락을 지배하는 현상이다. 단순한 총합의 행복이 아니라, 질적으로 더 나은 행복—비판적 토론, 지적 성숙, 공동체적 신뢰—가 존중되지 않으면 사회는 타락한다. AI 시대일수록 “어떤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라는 밀의 질문이 더욱 절실하다.






5. 한국 사회의 현실적 맥락



한국에서도 AI 윤리의 쟁점은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대학 입시와 취업 시장에서 AI 면접과 자동 평가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청년 세대는 “나는 데이터로만 평가되는 존재인가?”라는 불안을 겪는다.

공공행정 영역에서도 복지 수급 자격을 AI가 심사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개인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의료보험, 범죄 예측, 금융 신용평가 등에서 AI가 ‘다수의 효율’을 기준으로 작동하면서, 개인의 사정과 권리가 소외되는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벤담과 밀의 대립이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매일 체감하는 현실임을 보여준다.






6. 청년 세대에게 남는 질문



AI 윤리 현장은 끊임없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다수의 행복과 효율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

2.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사회 전체의 편익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는가?


벤담과 밀의 사상은 이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청년 세대가 이 갈림길에 서 있다는 점이다. 자율주행차에서, 채용장에서, SNS 피드에서, 의료 현장에서 청년들은 매일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AI 윤리는 결국 철학의 문제다.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한다.











청년 세대의 균형 찾기




AI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는 매일같이 벤담의 현실적 계산밀의 원칙적 자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기술은 효율성을 극대화하지만, 인간은 존엄을 잃을 때 방향을 잃는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한쪽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행복과 개인의 존엄 사이에서 균형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1. 벤담적 현실주의의 필요성



청년들이 벤담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 자율주행차, 의료 AI, 재난 대응 알고리즘 등은 다수의 생명을 빠르게 구하는 의사결정을 필요로 한다.

- 채용·행정 시스템은 효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 SNS 알고리즘은 대중의 참여와 즐거움을 증폭시켜 사회적 연대의 힘을 키우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수많은 집단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후위기, 불평등, 팬데믹 같은 전 지구적 도전 앞에서,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수의 편익을 고려하지 않는 윤리는 현실적 문제 해결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2. 밀적 존엄의 불가결성



그러나 동시에, 청년 세대는 밀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도 없다.


- 개인정보 보호와 자기결정권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엄의 본질이다.

- 다수의 효율을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순간, 사회는 ‘다수의 폭정’이라는 또 다른 위험에 빠진다.

- 저급한 쾌락이 고급한 쾌락을 압도하는 SNS 환경은 결국 청년들의 지적 성숙과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밀이 강조한 자유와 존엄은 효율의 논리를 넘어서는 최소한의 울타리다. 청년 세대가 진정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3. 균형 프레임 – AI 시대 청년 세대의 길



그렇다면 청년 세대가 선택해야 할 길은 무엇일까? 단순히 벤담과 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두 관점을 조율하는 제3의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1. 권력과 제도의 역할

- 벤담적 관점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을 마련하되,

- 밀적 관점에서 개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

- 예: 자율주행차 규범에서 “생명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는 원칙을 법으로 명문화.


2. 시민적 자유의 훈련

-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책임과 성찰을 동반한다.

- 청년 세대는 AI 시대에 맞는 ‘자유의 기술’을 길러야 한다. 즉, 발언과 선택이 타인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찰하는 능력이다.


3. 균형의 전략

- 효율성(벤담)과 존엄(밀)이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 AI 알고리즘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정성 검증, 윤리적 안전장치, 시민 참여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4. 청년 세대의 자기 질문



결국 균형은 제도가 대신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스스로 매일 던지고 답해야 할 자기 질문 속에서 자라난다.

“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

“나는 효율을 위해 존엄을 희생하지 않으려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나는 자유로운 선택을 어떻게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거창한 철학 담론이 아니라, 청년이 SNS에서 댓글 하나를 쓰고, AI 추천을 클릭하고, 자율주행차에 몸을 맡길 때마다 부딪히는 구체적인 고민이다.






5. 균형을 향한 다리



벤담의 공리주의와 밀의 자유론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청년 세대에게는 양쪽 모두 필요한 나침반이다.

벤담은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효율과 다수의 행복 없이는 사회적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밀은 이상을 붙든다. 자유와 존엄 없는 효율은 결국 파괴적 독재로 귀결된다.


따라서 청년 세대의 과제는 현실과 이상을 잇는 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 다리 위에서만 우리는 AI 시대의 윤리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










결론 및 성찰 – 청년 세대가 던져야 할 최종 질문





벤담과 밀은 같은 공리주의의 계보에 있으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벤담은 행복을 계산하고, 다수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길을 정의라 불렀다.

밀은 행복의 질과 개인의 존엄을 강조하며, 다수의 폭정으로부터 소수를 지키려 했다.


AI 시대에 이 두 목소리는 단순한 과거의 논쟁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매일 직면하는 실존적 질문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1. AI 시대의 공리주의 실험



오늘날 우리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매 순간 벤담적 실험을 하고 있다.

유튜브 추천 시스템은 다수의 시청 시간을 늘리려는 벤담식 계산이다.

의료 AI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확률적 선택을 내린다.

자율주행차는 다수의 생명을 위해 소수를 희생할지 고민한다.


이 모든 과정은 효율과 다수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와 존엄은 어디로 가는가?”






2. 존엄의 경계 – 밀의 질문



밀이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단순하다.
“다수가 행복하다고 해서, 소수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가?”


AI가 효율을 앞세우는 순간, 개인은 데이터로 환원된다.

채용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지원자는 ‘낮은 점수’라는 이름으로 배제된다.

개인의 사생활은 ‘집단 편익’이라는 명분 아래 침해된다.

사회적 소수자는 ‘통계적 오류’라는 이유로 목소리를 잃는다.


따라서 밀의 물음은 청년 세대에게 곧장 다가온다. “효율이 존엄을 대체할 수 있는가?”






3. 청년 세대의 민주주의 실험



청년들은 이미 AI 시대의 민주주의 실험을 시작했다.

SNS에서 공론을 형성하며 참여를 확대하는 동시에, 가짜뉴스와 혐오에 부딪힌다.

자율주행차, 의료 AI, 채용 알고리즘의 윤리 논쟁에서 직접 당사자가 된다.

‘효율을 따를 것인가, 존엄을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생활 속에서 경험한다.


이는 철학 교과서의 논쟁이 아니다. 바로 오늘의 삶의 조건이다.






4. 청년 세대가 던져야 할 최종 질문



이제 결론은 청년 세대 스스로에게 맡겨진다. 벤담과 밀의 논쟁은 우리에게 완전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끝나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

나는 효율을 위해 존엄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사회계약을 새롭게 맺을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윤리적 담론이 아니다. 그것은 청년 세대가 AI 시대의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매 순간 내려야 하는 실천적 선택이다.






5. 맺음말 – 철학이 다시 불려오는 이유



AI 시대는 기술의 시대이자 동시에 철학의 시대다.
벤담과 밀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벤담: “다수를 위해 효율을 따지라. 그것이 사회를 움직인다.”

밀: “그러나 개인의 존엄을 잃는다면, 그 효율은 허상이다.”


청년 세대가 던져야 할 최종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AI 시대, 나는 어떤 자유를 선택하고, 어떤 행복을 정의라 부를 것인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을 때, 청년들은 단순한 기술의 소비자가 아니라, 새로운 윤리의 설계자가 될 수 있다. 철학은 과거의 고전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청년 세대의 나침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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