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과 사회계약, SNS 군중심리

[진리 탐구 21] 홉스 vs 루소

저녁 무렵, 어느 대학가의 카페. 한쪽 테이블에서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청년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SNS 해시태그와 수천 개의 댓글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분노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공유했고, 또 다른 이는 눈물 어린 사연에 ‘좋아요’를 눌렀다. 마치 광장에 모인 군중처럼, 온라인 속 수많은 목소리들이 이 작은 기기를 통해 청년들의 일상을 흔들고 있었다.


“이게 진짜 정의일까?”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묻자, 다른 친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면 정의가 되는 거지. 저 봐, 다들 같은 의견이잖아.”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다수가 항상 옳은 건 아니잖아. 가짜뉴스에 휘둘려 잘못된 판단을 내린 적도 많잖아.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소란만 남는 거 아냐?”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는 인간 사회의 본질에 관한 오래된 질문이 담겨 있었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라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할까, 아니면 자유롭게 모였을 때 더 나은 ‘일반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17세기의 홉스와 루소가 치열하게 대립했던 사회계약론의 논쟁이, 21세기 청년들의 스마트폰 속에서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SNS는 현대판 아고라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익명의 군중심리가 폭발하며 혐오 발언, 가짜뉴스, 마녀사냥이 쏟아진다. 단 몇 시간 만에 한 개인이 사회적 매장으로 내몰리기도 하고,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 ‘진실’처럼 퍼져나가기도 한다. 이는 홉스가 묘사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온라인 공간이 다시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고,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는 그의 비관적 통찰은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SNS는 새로운 연대와 참여의 장이 되기도 한다. 청년들이 주도한 해시태그 운동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고, 기후 위기를 알리기 위한 청소년들의 캠페인은 전 세계적인 행동을 촉발했다. 때로는 ‘좋아요’ 하나, 리트윗 한 번이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물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루소가 말했던 ‘일반의지’—개인의 욕망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선을 추구하는 힘—가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구현되는 순간이다.


이처럼 같은 플랫폼에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여전히 공존하기 때문이다. 홉스는 인간을 ‘자연 상태에서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았고, 그래서 절대 권력(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루소는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사회적 제도와 불평등이 타락을 낳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유로운 합의와 참여 속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청년 세대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이 두 사상의 교차점이다. 한쪽에서는 온라인 군중의 충동적 폭력성이,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연대와 자유의 가능성이 동시에 솟아오른다. 청년들은 매일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며, 이 두 세계를 오가고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청년들이 경험하는 SNS의 군중심리는 홉스가 경고했던 위험의 재현일까, 아니면 루소가 기대했던 새로운 사회계약의 가능성일까.


이 회차의 여정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온라인 군중심리라는 구체적 현상을 통해, 인간 본성과 사회계약에 대한 오래된 논쟁을 다시 조명하고, 오늘의 청년 세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철학적 배경 – 홉스와 루소의 사회계약론




1. 사회계약론의 역사적 맥락



17세기와 18세기는 전쟁과 혁명의 격랑 속에서 정치철학이 새롭게 정립된 시기였다. 유럽은 종교전쟁, 내전, 왕권과 시민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 질문에 답하려 한 철학적 시도가 바로 사회계약론이다. 인간이 원래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들이 안정적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어떤 계약을 맺어야 하는지가 사유의 중심에 놓였다.


여기서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토머스 홉스장 자크 루소다. 두 사람 모두 국가와 사회를 개인의 합의에서 출발해 설명했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해석과 이상 사회의 모델에서 극적으로 엇갈렸다.






2. 홉스의 사회계약론 – 절대권력의 필요성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1651)에서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그는 “자연 상태”를 이렇게 정의했다.

인간은 본래 욕망과 공포에 따라 움직이며, 서로를 불신한다.

따라서 자연 상태는 곧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다.

이 상태에서는 생명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쾌하며, 짧다.”


이런 비극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서로 계약을 맺고, 권리를 절대적인 주권자에게 양도한다.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Leviathan), 즉 국가권력은 개인 간의 끝없는 투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민주적 합의보다는 절대적 권력에 무게를 두었다. 그는 질서와 안전이야말로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소 조건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온라인 군중심리를 떠올려 보면, 거짓 정보가 확산되고 감정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왜 등장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3. 루소의 사회계약론 – 자유와 일반의지



반면 루소는 『사회계약론』(1762)에서 전혀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은 본래 자연 상태에서 순수하고 선하며, 평화롭게 살아왔다고 보았다. 그러나 문명과 사유재산의 발전은 불평등과 탐욕을 낳아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루소는 인간을 다시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홉스와 달리 그는 절대권력에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일반의지(General Will)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지배해야 한다고 보았다.


- 일반의지란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익을 향한 의지다.

- 개인의 사적 이익을 넘어서,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힘이다.

- 따라서 참된 자유는 혼자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의 합의 속에서 더 큰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고, 프랑스 혁명과 현대 시민사회의 이상을 낳았다. 오늘날 청년들이 SNS를 통해 목소리를 모으고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현상은 루소가 꿈꿨던 “일반의지의 실천”과 연결된다.






4. 두 철학자의 대비



홉스와 루소의 사유를 대비하면, 두 가지 핵심 차이가 드러난다.


1.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홉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위험하다 → 강력한 권력 필요.

루소: 인간은 본래 선하다, 그러나 사회가 타락시킨다 → 자유와 평등 회복 필요.


2. 사회계약의 형태

홉스: 권리를 주권자에게 양도 → 질서와 안전 확보.

루소: 모두가 공동체의 일반의지를 따른다 → 자유와 평등 구현.


3. 국가의 역할

홉스: 절대 권력자가 통제.

루소: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






5. 현대적 맥락 속 의의



오늘날 SNS와 온라인 군중심리는 이 두 사유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짜뉴스와 집단적 혐오가 확산될 때, 우리는 “홉스가 옳았다”고 느낀다. 통제 없는 인간은 위험하다. 그러나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해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때, 우리는 “루소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함께할 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결국 현대 사회는 홉스와 루소의 시선을 모두 필요로 한다.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와 동시에, 자유로운 참여와 연대를 통한 공동체적 가치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청년 세대에게 이 논쟁은 단순한 철학사가 아니라, 매일의 온라인 경험 속에서 체감되는 현실이다.








홉스의 인간 본성론 – 두려움과 권력의 필요성





1. 두려움 속의 인간



토머스 홉스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두려움의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의 『리바이어던』 첫 장을 펼치면, 우리는 인간을 욕망과 공포가 지배하는 존재로 그려낸 문장을 마주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지만, 동시에 그 욕망 때문에 타인에게 위협을 느낀다.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공격하며, 명예를 얻기 위해 타인을 누르려 한다.


홉스가 묘사한 이 세계는 한마디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각자가 서로를 잠재적 적으로 바라보는 상황에서 신뢰는 불가능하고, 공존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라는 말(“Homo homini lupus”)은 바로 이러한 자연 상태를 함축한다.






2. 자연 상태의 비극



홉스의 관점에서 자연 상태는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 그는 이를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쾌하며, 짧은 삶”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협력할 수 없고, 결국 모두가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홉스가 인간 본성을 비관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관찰했다는 점이다. 전쟁과 내전을 직접 목격한 그는, 제도와 권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인간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끝없는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본능은 자기 보존이고, 그 본능은 두려움과 욕망이 함께 작동하는 조건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3. 두려움이 낳은 계약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이 비극을 벗어날 수 있을까? 홉스의 답은 단호하다. 권위에 자신을 복속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의 공격성을 멈추기 위해 자발적으로 권리를 양도하고, 강력한 주권자를 세운다.


이 계약은 단순한 합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누구도 완전한 자유 상태에서 안전할 수 없기에, 일정한 자유를 포기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이성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홉스가 강조한 것은 권력의 필요성이 아니라, 사실상 절대 권력의 불가피성이었다. 오직 강력한 주권자만이 개인의 끝없는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






4. 리바이어던 – 괴물 같은 국가



홉스가 국가를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 부른 것은 상징적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거대한 괴물을 떠올리게 하는 이 표현은, 국가가 인간 개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압도적 존재임을 뜻한다.


리바이어던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서로 죽이지 않게 막아주는 방패다. 그 안에서만 우리는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여기서 홉스가 제안하는 국가란 단순한 행정 기구가 아니라, 인간의 두려움을 흡수하고 폭력을 독점하는 강력한 권위 그 자체다.






5. 오늘의 연결 – 온라인 군중과 통제



홉스의 사유는 21세기에도 놀라운 현실감을 갖는다. SNS를 떠올려보자. 정보와 소통의 장이라 불리지만, 동시에 혐오 발언, 가짜뉴스, 군중심리의 폭주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자유로운 발언의 장”이라 치켜세우지만, 그 속에서 소수자가 공격당하고 허위 정보가 확산될 때, 많은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이럴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홉스를 떠올린다. “이 혼란을 누가 통제해야 하지 않는가?” 플랫폼 규제, 표현의 한계, 심지어 국가적 법률 개입 요구가 등장한다. 온라인이라는 ‘자연 상태’가 위험으로 변할 때, 권력의 개입을 통해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홉스적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6. 청년 세대의 체감



청년 세대는 이 논리를 특히 실감한다. 자유로운 표현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열은 크지만, 동시에 혐오와 조리돌림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글이 삽시간에 수천 개의 댓글로 공격당하거나, 한 번 잘못 퍼진 가짜 정보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현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청년들은 양가적인 감정을 가진다.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규제와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이는 바로 홉스적 통찰, 즉 자유만으로는 안전할 수 없고, 안전을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깨달음을 반영한다.






7. 홉스의 의의와 한계



홉스의 사유는 두려움과 권력의 관계를 날카롭게 포착했지만, 동시에 비판도 받았다. 절대 권력은 질서를 보장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자유를 억압할 위험도 크다. “질서를 위해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명제는 독재 정권과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도 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홉스가 남긴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유와 권력 사이의 균형이 없다면 공동체는 쉽게 무너진다. 두려움이 통제되지 않을 때 인간은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고, 결국 사회적 삶 자체가 파괴된다.






8. 결론 – 두려움이 만든 권력의 철학



홉스의 인간 본성론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인간은 본래 완벽히 선하지도, 무한히 이성적이지도 않다. 욕망과 두려움 속에서 흔들리는 존재이며, 바로 그 약함 때문에 강력한 권력과 제도가 필요하다.


오늘날 청년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느끼는 자유와 불안의 교차점은, 홉스가 묘사한 자연 상태의 그림자를 닮아 있다. 자유로운 발언과 안전한 삶, 이 두 가지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홉스는 권력을 강조했지만, 현대의 청년들은 그 균형점을 다시 물어야 한다. 권력은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지만, 자유를 억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루소의 인간 본성론 – 자유와 평등의 사회





1. 루소의 질문 ― 인간은 본래 선한가?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본래 어떤 존재인가?” 홉스가 인간을 서로를 두려워하며 끝없이 경쟁하는 늑대로 보았다면, 루소는 정반대의 시각을 제시했다.


그에게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본래 선한 존재였다. 자연 속에서 단순히 살아가던 인간은 욕심도, 권력 다툼도, 불필요한 경쟁도 없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인’은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존재였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성적으로 타인을 해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공감과 평등 속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였다.






2. 불평등의 시작 ― 사유재산



하지만 문제는 사유재산의 탄생이었다. 루소는 불평등의 기원을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처음 말한 순간에서 찾았다. 재산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차이가 생기자, 인간은 더 이상 평등한 상태에 머무르지 못했다.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제도와 권력이 등장했고, 권력은 곧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즉, 루소의 눈에 국가와 권력은 인간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을 강화하는 구조였다. 자연 상태에서의 평화로운 공존은 사라지고, 사회는 불평등과 억압으로 가득 찼다. 루소는 이를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3. 사회계약 ―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



그러나 루소는 비관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불평등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계약은 홉스처럼 절대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참여하는 계약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일반의지(General Will)이다. 일반의지는 단순한 다수결이나 개인들의 사적 이해관계의 합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공익을 향한 의지이며, 각 개인이 자유로운 존재로서 스스로 동의하는 의지였다. 루소가 꿈꾼 사회는 강자의 권력에 눌리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시민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공동체였다.






4. 루소와 자유 ―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루소가 생각한 자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방종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법에 복종할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말했다. 이는 역설처럼 보이지만, 루소의 철학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개인이 공동체의 일반의지에 참여해 스스로 만든 법에 복종한다면, 그것은 타인의 강제에 의한 복종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루소는 ‘진정한 자유’를 발견했다. 진정한 자유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에서 법을 만들고 지킬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5. 현대 사회로의 연결 ― SNS와 청년 세대



오늘날 루소의 사유는 청년 세대의 디지털 공론장 경험과 닮아 있다. SNS 공간에서 청년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집단적 목소리를 통해 사회를 바꾸려 한다. 기후 위기 시위, 청년 주거 문제, 젠더 평등 운동,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 요구 등이 해시태그와 온라인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는 과정은 일종의 ‘일반의지’ 형성에 가깝다.


루소적 시각에서 보면, 청년들은 단순히 개인의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공익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촛불집회와 같은 거리 시위, 온라인 서명 운동은 모두 “시민이 직접 주체가 되어 사회를 바꾼다”는 루소의 이상과 이어진다.






6. 루소 철학의 함의 ― 이상과 현실 사이



물론 루소의 철학은 이상주의적 한계를 지닌다. 일반의지가 언제나 공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목소리가 소수를 억압할 수 있고, 공동체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위험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소가 강조한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시민이 주체로 참여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루소는 권력이 아닌 시민의 참여, 억압이 아닌 자유와 평등, 복종이 아닌 자기결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7. 청년 세대의 과제



오늘날 청년들은 루소가 제기한 문제와 직접 마주한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내가 진정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SNS와 거리에서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어 간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루소적 이상을 시험하고 있다. 공동체의 일반의지를 향한 참여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자유와 평등이 어떻게 함께 보장될 수 있는지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는 것이다.






8. 결론 ― 루소의 자유와 평등의 철학



루소의 인간 본성론은 홉스와 달리 인간의 선함과 평등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는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제안했고, 그것은 자유와 평등이 결합된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루소가 던진 질문을 다시 맞이한다. “우리는 어떻게 자유롭고도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디지털 공론장과 거리에서의 실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토론 장면 재현 – 홉스와 루소의 대화





1. 장면 설정 ― 대학 강당 속 열린 토론회



늦은 저녁, 한 대학의 강당에 수백 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주제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계약, 그리고 SNS 시대의 군중심리.”
놀랍게도 무대 위에는 두 명의 특별한 인물이 서 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와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마치 시간을 초월해 등장한 것이다. 학생들의 스마트폰은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온라인 공간과도 연결되고 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는다.
“오늘 우리는 인간 본성과 사회계약의 의미를 두 거장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들어보고자 합니다. 홉스 선생, 루소 선생, 그리고 청년 학생 여러분, 함께 시작해보겠습니다.”






2. 홉스의 첫 발언 ― 인간은 두려움 속의 늑대



홉스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인간은 본성적으로 서로를 불신하고 두려워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이익을 좇고, 서로를 경쟁자로 본다. 그 결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지요. 법과 권력이 없다면 여러분은 강당을 나서면서도 서로의 스마트폰을 빼앗거나, 시험 점수를 두고 다툴 수도 있습니다. 이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강력한 주권자에게 권리를 양도해야 합니다. 절대 권력 없이는 사회적 평화도, 개인의 안전도 없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또 다른 이는 “너무 비관적이다”라고 중얼거린다.






3. 루소의 반박 ― 인간은 본래 선하다



루소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히 말했다.
“나는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본래 선하고 평등한 존재였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서로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며 살아갔습니다. 불행의 시작은 ‘사유재산’이었습니다. 땅과 물건을 ‘내 것’이라 주장하는 순간, 불평등이 싹텄고 권력이 필요해졌습니다. 문제는 권력이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력한 군주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그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간다.
“여러분이 SNS에서 목소리를 모아 사회를 바꾸려 하는 것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시민의 일반의지야말로 진정한 주권입니다.”






4. 청년 질문 ― SNS 군중심리의 양면



이때 학생 한 명이 손을 든다.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세대는 SNS에서 힘을 모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도 믿지만, 동시에 혐오와 가짜뉴스에 휘둘리기도 합니다. 수많은 해시태그 운동이 때로는 긍정적 변화를 이끌지만, 또 어떤 때는 군중심리가 폭력적으로 흐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홉스가 곧바로 답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주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무질서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줍니다. 규제와 권력이 없으면 가짜뉴스, 혐오 발언, 사이버 폭력이 난무하지요. 따라서 강력한 법과 제도적 통제가 필요합니다. 온라인 플랫폼에도 절대적 주권자가 있어야 합니다.”


루소는 고개를 저으며 반박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이 된다면, 여러분은 더 이상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시민들이 스스로 공론장을 성숙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잘못된 정보와 혐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들의 비판적 대화와 참여 속에서 극복될 수 있습니다.”






5. 긴장 고조 ― 두 철학자의 대립



홉스: “루소 선생, 당신의 이상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사람들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입니다. 청년 세대도 분노와 좌절 속에서 쉽게 분열되지 않습니까? 권력이 없으면 사회는 순식간에 붕괴합니다.”


루소: “홉스 선생, 당신의 현실주의는 사실상 시민을 불신하는 태도입니다. 청년 세대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억압된 구조 때문이지,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꿈꾸고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면, 사회는 스스로 성숙해집니다. 민주주의는 강제된 질서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자라납니다.”


학생들의 눈빛은 더욱 뜨거워졌다.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이 장면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6. 청년의 개입 ― 새로운 사회계약을 향해



다른 학생이 조심스레 묻는다.
“그렇다면 저희는 어디에 기대야 합니까? 강력한 국가 권력입니까, 아니면 시민 스스로의 일반의지입니까?”


홉스는 단호하다.
“여러분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결국 강력한 국가입니다. 권위 없는 자유는 혼란일 뿐입니다.”


루소는 차분히 대답한다.
“나는 여러분이 시민으로서 직접 참여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조건에서 법을 만들고 지킬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권력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7. 결론 ― 청년에게 던져진 질문



토론이 끝나자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
“오늘의 대화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청년 세대여, 여러분은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강력한 통제 속의 안정입니까, 아니면 불확실하지만 자유로운 참여입니까?”


청중은 박수를 보냈다. 홉스와 루소의 논쟁은 단순히 과거의 철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SNS와 광장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문제였다.











실제 사례 분석 – SNS 군중심리와 민주주의의 도전





1. SNS 시대의 새로운 공론장



21세기의 공론장은 더 이상 광장이나 신문 지면에만 있지 않다. 청년 세대에게 민주주의의 현장은 손바닥 위의 스마트폰 화면이다. 트위터(X),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은 새로운 민회(民會)와 법정이 되어버렸다. 해시태그 하나가 수십만 명의 목소리를 묶어내고, 짧은 영상 하나가 여론을 뒤흔든다.


이 변화는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의 현대적 변형처럼 보인다. 시민들은 온라인을 통해 자유롭게 모이고 의견을 나눈다. 그러나 동시에 홉스의 경고처럼, 그 공간은 언제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바뀔 위험을 안고 있다. 공론장은 확장되었지만, 그만큼 군중심리와 감정의 폭발에 휘둘리는 장면도 잦아졌다.






2. 긍정적 사례 – SNS가 만든 참여와 변화



실제로 SNS는 청년 세대의 정치적 무기였다.

2016~2017년 한국의 촛불집회는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된 참여 호소가 수백만 명의 오프라인 연대를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였다. “이건 나라냐”라는 구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퍼졌고,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집회에 나와 광장을 채웠다. 이는 루소가 말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화적 의지’와 닮아 있었다.

최근 기후 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금요 시위(Future Fridays) 또한 해시태그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청년들도 “미래를 빼앗지 말라”는 목소리를 SNS에서 모으며, 교육 현장과 거리로 나왔다. 이는 소규모 개인의 불안과 목소리가 연결되어 사회적 의제를 바꾼 사례였다.

2024년 계엄령 사태 당시에도 SNS는 강력한 무기로 작동했다. 정부 발표보다 빠른 현장 영상과 메시지가 전국으로 퍼졌고, 특히 2030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을 밝히며 계엄군 차량 앞을 막아선 장면은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이는 홉스적 질서의 강제가 아닌, 루소적 자유 의지가 실시간으로 구현된 사건이었다.






3. 부정적 사례 – 군중심리와 여론의 왜곡



그러나 SNS의 힘은 언제든 폭력적 군중심리로 변할 수 있다.


2025년 3월,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광장은 ‘찬탄파’와 ‘반탄파’로 갈라졌다. 밤샘 농성과 단식투쟁이 이어졌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각 진영의 여론전이 벌어지는 전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합리적 토론보다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감정적 충돌이 앞섰다. 루소적 참여보다는 홉스가 경계한 ‘집단적 격정’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특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실 확인 이전에 ‘여론 재판’이 시작된다. 수많은 게시물과 댓글이 순식간에 몰리며 누군가는 법정이 아닌 SNS에서 이미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후 사실이 뒤집혀도 낙인은 지워지지 않는다. 가짜뉴스와 조작된 이미지가 선거철마다 범람하고, 클릭과 공유가 진실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청년 세대 역시 이 흐름에 쉽게 휘말리며 불공정, 젠더, 계층 문제에서 혐오와 공격적 언어가 증폭되기도 한다.






4.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 – 청년의 체감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집회와 시위, 파업은 모두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청년 세대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먼저 목소리를 높이고, 여기서 힘을 모은 뒤 광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참여의 확산만큼 피로감도 커졌다.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가 청년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취업난, 불평등, 기후 위기 같은 문제를 두고 SNS에서는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지만, 정책 변화는 더디다. 군중의 분노는 즉각적으로 커지지만, 제도적 변화를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고 지루하다. 이 간극에서 청년들은 좌절과 무력감을 경험한다.






5. 청년 세대에게 남는 질문



SNS 공론장은 청년 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떠안겼다. 참여와 왜곡, 자유와 혼돈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청년들은 두 가지 질문에 직면한다.


1.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운 참여를 유지하면서도, 무질서와 혐오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2. 강력한 규제(홉스적 모델)와 자율적 참여(루소적 모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할까?


SNS 군중심리의 빛과 그림자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 문제이며, 곧 민주주의의 근본을 다시 묻는 도전이다. 청년 세대는 매일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청년 세대가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청년 세대가 살아가는 오늘의 민주주의는 홉스와 루소의 오래된 논쟁을 다시 체험하는 과정이다. SNS라는 새로운 공론장은 누구에게나 발언권을 보장하는 자유의 장이지만, 동시에 군중심리에 휘둘리고 혐오와 가짜뉴스가 넘실대는 무질서의 공간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공동체적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 바로 이것이 청년 세대가 마주한 핵심 질문이다.






1. 홉스적 안정 vs 루소적 자유



홉스는 인간의 본성을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보았다. 그의 사회계약은 개인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권력에 복종하는 선택이었다. 반대로 루소는 인간의 본성 속에 자유와 평등의 가능성을 보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일반의지’를 강조했다.


오늘날 청년들은 두 철학적 모델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이 범람하는 온라인 공간 속에서 “질서가 필요하다”는 홉스적 요구를 절실히 느낀다. 동시에 청년들은 루소의 말처럼 “자유로운 참여 없이는 민주주의가 살아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체감한다. 따라서 문제는 어느 한쪽을 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두 가치의 균형을 어떻게 재설계하느냐에 있다.






2. 권력의 개입, 어디까지 필요한가



청년 세대는 권력의 개입에 양가적 태도를 보인다. 혐오 발언, 허위 정보, 악성 댓글이 넘쳐날 때는 강력한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하지만 동시에 검열이나 과도한 통제, 국가의 일방적 개입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는 홉스의 절대 주권과 루소의 시민 자치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청년들은 권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권력이 시민의 자유를 억누르는 대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작동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다시 말해, “권력은 최소한의 안정 장치로서 존재하되, 자유로운 공론장을 보장하는 울타리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3. 자유의 책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자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동반한다. 루소가 말했듯, 진정한 자유는 법이 부여한 제약 속에서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나 SNS 시대 청년들에게 자유는 종종 ‘무제한 발언권’으로 오해된다. 그 결과, 성찰 없는 발언과 즉각적인 분노가 공동체를 갈라놓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청년 세대가 배워야 할 것은 “자유의 기술”이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되, 그것이 타인의 권리와 공동체적 신뢰를 파괴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능력. 이는 교육과 사회적 훈련,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성찰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






4. 균형의 프레임 – 청년 세대의 길



결국 청년 세대가 직면한 과제는 권력과 자유 사이의 균형 프레임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다.


1. 권력의 역할은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의 확산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2. 자유의 역할은 무제한적 방종이 아니라 성숙한 참여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들이 스스로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고, 혐오와 분열 대신 대화와 협력을 선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3. 균형의 전략은 제도와 시민 양쪽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권력은 최소한의 규칙을 제공하고, 시민은 성찰적 자유를 실천하는 것.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할 때만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하다.






5. 청년 세대의 자기 질문



결국 이 논의는 다시 청년 세대의 자기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자유로운 발언의 권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나는 공동체의 안정과 신뢰를 위해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권력의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철학적 사유의 차원을 넘어, 청년 세대가 매일 SNS를 열고 댓글을 쓰고, 거리에서 목소리를 낼 때마다 맞닥뜨리는 구체적인 선택이다.






맺음말



권력 없는 자유는 무질서로, 자유 없는 권력은 독재로 귀결된다. 청년 세대가 찾아야 할 균형은 그 중간 지점이다. 이는 결코 추상적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광장과 SNS에서, 매일의 대화와 선택 속에서 청년들이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태다. 홉스와 루소의 오래된 논쟁은 이제 청년 세대의 삶 속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결론 및 성찰 – 청년 세대가 던져야 할 최종 질문




홉스와 루소는 각각 인간의 본성과 사회계약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홉스에게 인간은 두려움과 자기보존 본능에 지배되는 존재였다. 그는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주권을 필요로 했고, 자유는 안정이라는 조건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반대로 루소는 인간 본성 속에 자유와 평등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강제된 복종이 아닌, 스스로 참여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시민적 삶을 강조했다.


이 오래된 논쟁은 지금 청년 세대의 현실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SNS라는 새로운 공론장에서 청년들은 루소처럼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며 참여한다. 동시에,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 군중심리의 폭발 속에서 홉스의 경고를 뼈저리게 경험한다. 자유와 권력, 참여와 규율 사이에서의 균형은 더 이상 추상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매일 스마트폰을 켜고, 글을 쓰고, 영상을 공유하는 순간마다 부딪히는 현실이다.






1. 청년 세대의 민주주의 실험



청년들은 이미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을 하고 있다.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캠퍼스와 직장에서 청년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 기후 위기에 대한 분노,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려는 시도는 모두 루소적 자유의 표현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유는 언제든 군중심리로 변질될 수 있다. “우리는 옳다”는 확신은 쉽게 배제와 혐오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대화와 숙의는 사라지곤 한다. 청년 세대의 민주주의 실험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시행착오 속에 있다.






2. 최종 질문 –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따라서 오늘의 청년 세대는 홉스와 루소 사이에서 최종 질문을 던져야 한다.


- 나는 어떤 자유를 원하는가? 단순히 내 목소리를 내는 자유인가, 아니면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성숙한 자유인가?

- 나는 어떤 권력을 인정할 수 있는가? 단순히 규제와 억압의 권력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권력인가?

- 나는 어떤 사회계약을 맺을 것인가? 권력자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계약이 아니라, 참여와 책임을 동반한 새로운 계약인가?


이 질문들은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청년들의 삶을 규정하는 실천적 선택이다.






3. 청년 세대의 길



앞으로 청년 세대가 걸어야 할 길은 단순하지 않다. 자유와 권력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균형 속에서만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자유가 무제한적이면 사회는 무질서로 흘러가고, 권력이 절대화되면 자유는 질식한다. 이 양극단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깊은 성찰과 끊임없는 대화다.


청년들은 매 순간의 선택 속에서 “나는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나는 권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묻고 답해야 한다. 바로 이 성찰의 과정이 민주주의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맺음말



결국 홉스와 루소의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교과서 속에 갇힌 고전이 아니라, 오늘 청년 세대의 삶 속에서 매일 다시 열리는 질문이다. 자유와 권력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 이 질문을 회피한다면 청년들은 무질서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거나, 반대로 권력의 억압 속에 갇혀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진지하게 붙들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성찰의 과정을 감당한다면, 청년 세대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은 더 이상 홉스나 루소의 철학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청년들의 철학이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자유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어떤 권력을 인정할 것인가?”
이 최종 질문이 바로 청년 세대의 손에 쥐어진 미래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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