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vs성실
한산한 카페가 좋지 않은가?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해서 그녀가 무조건 한산한 카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녀가 생각하길 일단, 커피는 향이 좋으면 되고(물론 향이 괜히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최상의 맛을 기대하진 않는다. 공간은 청결하되, 테이블은 크고 작은 흠 정도로 사용감이 있었으면 하고, 카페 안에 들리는 소음은 음악소리로 묻힐 정도면 좋겠다. 손님들은 이삼십 분 간격으로 자리를 차지했다가 비우며, 카페를 지키는 사람은 적당히 무심해 오가는 손님에게 담백한 인사만 하는 정도. 그래서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도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의 여가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카페. 그런 카페라면 그녀는 몇 시간이고 앉아서 컵이 마르지 않게 추가 주문도 망설이지 않는다.
다만, 그 카페가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정도로 여유롭고 한산한 카페는 사실 운영자에게 근심걱정을 유발시킨다. 그것은 그녀가 애정하던 단골 카페들이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다. 한산한 것은 걱정이 아니지만, 매출이 오르지 않는 것은 분명 걱정이다. 그리고 한산한 정도와 매출은 정확히 비례한다.
그녀는 생각한다.
‘난 카페를 운영 할 자질이 없는 걸까?’
마지막 주문이 2시간이 넘었는데도 그녀는 불안해하기는커녕 윤기가 나는 초록색의 라임을 썰며 더 할 나위 없이 평온한 시간을 갖는다. 시큼한 레몬에 푸릇한 허브 잎이 섞인 듯 한 청량한 향이 카페 곳곳에 퍼져간다. 3미리 간격의 라임이 차곡차곡 쌓아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녀마저 싱그러워지는 것 같다.
과일청을 담그는 일은 요즘 그녀의 힐링 노동이다. 노동이 힐링이라니 조금 믿기지 않지만 정말이다. 그녀가 카페를 운영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과일 손질이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칼을 쓰는 것 자체가 그랬다. 청을 담그는 과일들은 대체로 동그란 모양이니까 왼손으로 과일이 굴러가지 않게 잡고 있어야 한다. 근데 왜 과일 대신 그녀의 손가락이 칼 아래에 가 있는 걸까? 그녀는 베인 손을 심장보다 위로 향해 들고 장비를 탓했다.
‘칼이 너무 안 들어’
곧 과일을 아래로 경사진 스테인리스에 올려놓고 아래로 밀기만 하면 된다는 슬라이서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각각의 장단점을 지닌 슬라이서는 어느새 여섯개가 되었고 그녀는 슬라이서 유목민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산 슬라이서 중 어느것에도 정착하지 않았다. 슬라이서의 세척은 생각보다 번거로웠고 부피가 커서 선반 안쪽에 넣었다 빼야하는 수고를 해야했다. 그에 비해 매일 사용하는 도마와 칼은 손에 잘 닿았다. 결국 그녀는 기능성을 탑재한 슬라이서를 뒤로하고 칼질의 성실함을 택하게 되었다. 어느새 요령이 생긴 그녀는 사과의 뒷면이 비칠 정도로 얇게 자를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해지니 과일 손질만큼 그녀에게 속 편한 일이 없다. 과정이 많을수록 변수가 생기는 일도 많은 법이다. 이를 테면 베이킹. 반면 과일청 담그는 일은 딱 3단계만 거치면 된다. (깨끗히) 씻기. (조심히) 썰기. 계량하기. 그렇게 그녀는 단순 노동에서 비롯된 성취감에서 마음의 휴식을 느낀다.
그녀가 소독해둔 유리병 안에서 달달한 과일내음과 수분을 머금은 푸른 빛깔의 라임과즙에 설탕이 녹아들고 있다.
라임의 신냄새에 입안 전체가 촉촉해진다. 그녀는 충만해진 마음으로 라임청이 잘 숙성되길 바란다.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탄산수에 라임청을 듬뿍 올려서 마실 생각을 하니 뜨거운 여름이 기다려진다. 다가올 여름의 절정에 쉼표를 하나 미리 마련해두며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하지만 내일은 한가해선 안 된다. 숨막히는 한여름에 무사히 라임에이드를 마시려면 내일은 부디 손님들로 북적북적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