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키릴과 함께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산 능선 너머로 태양은 급하게 하늘에 석양을 칠하기 시작했다.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시베리아의 해넘이는 짧다. 빠르게 일정을 소화하지 않으면, 남은 것은 야경 뿐일 것이다. 크라스나야르스크는 내일도 볼 수 있는 곳이고, 가로등불이 뒤덮은 도시의 거리를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브노고르스크는 오늘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버스 시간은 한 시간에 한 대. 곧 올 한 대의 버스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대략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아까 본 도시의 너비를 가늠했을 때, 그 정도면 이 도시의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버스 시간을 정확하게 머리속에 넣어 두고서는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는 눈밭에 내 발자국만을 남기며 지브노고르스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 마을을 둘러볼 방향을 정할 계획이었다. 어딘가 마음에 드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 그곳을 가볼 생각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모든 거리를 쏘다니며 경치를 구경하면 될 것이었다.
지브노고르스크의 길거리는 한산했다. 한산이라는 표현으로는 조금 부족한 듯 싶고, 그저 아무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오로지 도로에 타이어 자국으로 긁힌 도로만이 다니는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행인은 오로지 나 혼자 뿐, 가끔씩 다니는 차 몇 대가 이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걸어 올라오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 눈에 들어온 마을의 풍경은 사람없는 거리와 맞물려 무척이나 고즈넉했다. 건물들은 예전 방식으로, 벽면을 목재로 댄 옛날 방식의 단층 건물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가끔씩 공산주의의 잔재가 남은 회색빛 고층 건물들이 군데군데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이 마을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망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마을 중심에 단 하나 서 있는 고층아파트가 그렇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 처럼.
그렇게 인적 없는 거리를 구경하고 있던 그 때, 앞에서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동반자’ 라는 이름의 경기장 안에서 들리는 사람의 흔적을 따라, 내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운동장 위에서 미끄러지듯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다리도 얼마 움직이지 않는데 운동장 위를 빠른 속도로 활보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유심히 살펴보니, 운동장 전체를 물을 뿌려 얼려 놓고서 천연 아이스링크로 만들어 아이스 하키를 연습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백 평방미터는 되어보이는 운동장을 죄다 얼음판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니, 이 나라가 확실히 땅이 넓긴 넓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부러웠다.
옆에서 사랑싸움을 하는 개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