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버스는 늘어지는 석양을 끌고 크라스나야르스크로 돌아왔다. 아마도 끝까지 가게 되면 아까 탔던 정류장에 그대로 내리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내렸다. 한정된 시간, 한 번 밖에 디디지 못할 발걸음을 같은 곳에 내뻗는 것은 시간낭비였다. 버스는 예니세이강 건너편,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문을 열어 주었다. 내린 것은 나 혼자 뿐이었다.
안내방송에 따라서 문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 곳에 정류장 표지는 없었다. 이미 오랫동안 망하여 방치된 볼링장만이 눈 앞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창문에 붙인 시트지 사이로 빼꼼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작은 케밥가게가 있었다. 굳이 다른 풍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리를 걸어서 건널 포인트를 찾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창 너머로 그 때 예니세이 강이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무엇에 홀린 듯이, 차들이 빠져 나가는 그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폐허와 같았던 하차장소와 달리, 강변을 향해 가면 갈수록 건물들은 더욱 화려해졌고, 높이는 더욱 높아졌다. 마치 호텔과 같았던 미술학교, 강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고층건물들은 방금 전까지 보았던 전원적인 모습을 탈피한, 확실한 도회지의 느낌이었다.
지도에서 확인한 다리의 이름은 ‘공동체’ 다리였다. 다리는 강 중심에 있는 섬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그 양분된 섬 각각에는 거대한 건물이 한 채씩 서 있었다. 어떤 건물인지는 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강가에는 하얗게 얼어 버린 물안개가 물결을 따라 다리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예니세이 강의 강폭은 생각보다 넓었다. 일전에 원효대교를 걸어서 건너간 적이 있었는데, 느낌상으로는 그것보다 더 길이가 길어 보였다. 아니면 너무 날씨가 추워서 그렇게 느껴졌던 것일지도.
섬에 있는 건물은 둘 다 운동장이었다. 하나는 실내 체육관, 하나는 축구 경기장이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강의 이름을 따서 예니세이라고 지은 축구팀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