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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us Jun 20. 2020

긁는 카드, 꽂는 카드, 찍는 카드

신용카드 결제 방식의 발전과 미래

1987년 신용카드업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 ‘카드를 긁다’라는 말은 결제하다의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로 친숙하게 사용되어왔습니다. 긁는다는 표현이 자리 잡은 것은 문자 그대로 카드를 단말기의 홈에 낀 후 긁어내리면 결제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행위이기 때문에 쉽게 의식하기 어렵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의 원리와 기술이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신용 결제의 핵심은 소비자의 이름을 포함한 금융 정보를 판매자에게 전달하고, 판매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이 정보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증 받은 후, 추후에 돈을 정산 받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결제 수단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되어야만 합니다.


긁어서 결제하는 마그네틱 카드(magnetic stripe card)를 처음 개발한 것은 미국의 IBM으로 1960년대 말에 개발하여 70년대 초에 상용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국제 표준이 생기면서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전세계에서 신용카드를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래된 기술인만큼 단점도 많이 노출이 되었습니다. 마그네틱 카드에는 사용자의 이름, 카드번호, 유효기간 등의 민감한 금융 정보가 아무런 보호 없이 그대로 자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그네틱 카드의 첫번째 문제는 바로 보안이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정보들이 암호화되지 않고 그대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카드를 복제해낼 수 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내구성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자성을 이용해 정보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자석을 가까이하면 쉽게 정보가 손상되어 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긁는 행동 자체가 카드의 내구성을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발급 받은지 오래된 카드가 잘 안 긁혀서 점원이 여러 번 긁는 모습을 다들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긁지 않고 ‘꽂는’ 카드가 개발되었습니다. 바로 스마트카드라고도 불리는 IC 카드(integrated circuit card)입니다. IC 카드는 마치 하나의 작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가 들어가있습니다. 한마디로 반도체로 구성된 카드인 것입니다. 디지털 정보를 저장한다는 것은 마그네틱 카드와 마찬가지이지만, IC 카드는 내제된 반도체를 통해 복잡한 연산을 거쳐 숫자를 암호화하여 저장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장된 금융 정보가 곧바로 노출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보안성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은 2015년 모든 마그네틱 카드를 IC 카드로 전환하여 발급받도록 제한하였습니다.


물론 IC 카드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IC 카드는 꽂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긁기만 하면 되는 마그네틱 카드에 비해 번거롭습니다. 게다가 꽂았다 빼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내장된 칩이 손상되거나 카드가 망가지는 일 또한 발생합니다. 어떻게 하면 편리하게 결제하면서도 안전하고 또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만들 수 있을까요? 한 가지 해법은 흔히 ‘비접촉식’ 결제라고 불리는 방법입니다.


지난 해 처음 싱가포르에 와서 크게 당황했던 것은 사람들이 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마트에서 물건을 골라 계산대에 갔는데 직원이 “페이웨이?”라고 묻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버리하고 있으니 단말기를 가리키며 카드를 대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우리나라에서 교통카드를 사용하듯 결제가 완료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비자카드의 비접촉식 결제 방식을 이르던 페이웨이브(PayWave)를 사용하겠냐고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비접촉식 결제는 현재 비자카드의 경우 컨택리스(contactless), 마스터카드의 경우 저스트탭앤고(Just Tap & Go)라는 명칭으로 서비스 중입니다. 이러한 ‘찍는’ 카드 결제 방식은 정보가 암호화되어 있어 마그네틱 카드보다 안전하면서도, 카드를 단말기에 가까이 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의 IC 카드를 통한 결제보다 신속하고 편리하며, 물리적인 접촉이 줄어들기 때문에 카드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비접촉식 카드 결제가 지원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만약 와이파이 모양과 같은 물결 모양의 아이콘이 카드에 보인다면 지원대는 가맹점에 한해 긁거나 꽂지 않고 대는 것만으로도 카드 결제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금 더 비접촉식 카드 결제가 대중화된다면, 편의점 직원이 카드를 긁는 대신, 카드를 찍어주세요라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카드 너무 많이 긁었어.” 대신 “어제 카드 너무 많이 찍었어.”라고 대화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현재의 IC 카드나 비접촉식 결제 방식이 결제 방식의 ‘끝판왕’은 아닐 것입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더욱 쉽고 편리하면서도 안전한 결제 방식이 새롭게 나타나고 또 사라져갈 것입니다. 과거 카드를 긁는 것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카드회사들도 소비자들의 편익 증진을 위해 카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눈앞으로 다가온 핀테크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부르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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