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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y Jul 10. 2022

아버지에게 갔었어

2022.06.30

아버지, 1년이 지났어요.


시골집 창고 깊숙이 넣어두었던 예초기를 꺼내다 ‘1년이 흘렀구나’ 생각했습니다. 벌초할 때 두어 번 쓰고 나서 창고에서 1년 내내 방치되다 보니 꺼내 쓸 때마다 기계는 항상 말썽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수리를 받고도 한참을 끙끙대며 엔진에 불을 일어보려 했지만 포기하고 결국 새로운 놈으로 장만했었습니다. 엔진 소리가 우렁찬 새 예초기를 돌리며 할머니 산소를 벌초하는 모습을 아버지께서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게 떠오릅니다.


사실 첫 문장에 ‘벌써’란 말을 붙여야 하나 잠깐 생각했어요. 아버지 ‘벌써’ 1년이 지났어요,라고 쓰는 게 맞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1년 간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 그 말을 뺐습니다. 애매한 게 아니라 오히려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벌써’란 말이 풍기는 시간의 속도와는 너무도 다른 정반대 시간을 살았던 게 사실이니까요.


직장생활 15년 만에 첫 차를 장만했습니다. 아버지와의 주말 짧은 여행을 편안하게 해 주며 항상 함께 했던 55만 키로 덜덜 거리는 차는 이제 옆에 없습니다. 서울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이사를 가 4년간 바라보던 창 밖 경치가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어제 술자리를 함께 한 합숙소 직장 동료가 다음날엔 세상을 등졌고, 정기적으로 봐오던 고등학교 친구가 어느 날 카톡에서 사라지더니 납골당으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이제 제사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에게 절을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퇴사를 했습니다.


백수의 넘치는 시간을 살다 보니 예전에 잘 보지 않던 드라마도 보게 됩니다. 최근엔 ‘나의 해방일지’란 드라마를 봤어요. 그러고 보니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소설이던, 드라마던, 작가가 경험했을 시간 어는 끄트러미가 또렷이 느껴져서요. 일상이 순식간에 변하는 장면이 자주 눈에 듭니다. 그런 순간이 닥치면 바닥이 흔들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바닥을 다지듯 마음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고요. 그런데 이제 바닥이란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바닥이란 실체도 사실 실체가 아닐 수 있겠구나 하구요. 오히려 허공에서 대롱대며 눈에도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헛것과도 같은 믿음이 나를 지탱해온 실체였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면서요.


PAGE 93 / 아버지에게 갔었어_신경숙


아버지가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 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할 뻔했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고. ………………… 큰 줄기는 손도 대지 못하고 ‘을’을 ‘은’으로 ‘그’를 ‘당신’으로 수정하면서. 그러나 그럴수록 절실히 깨달을 뿐이었다. 차마 버리지 못해 저장해 놓은 깨진 것들을 바닥까지 비워내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눈꺼풀이 떨렸다.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아버지! 전 많이 좋아졌어요. 어쩌면 위 구절처럼 근근이 일지도 모르지만요. 살다 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그런 시절이 이제 내 차례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상실의 시간을 살아가는 게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이렇게 글도 글적이고 그럭저럭 다시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가끔 아버지가 가신 그곳은 이곳과는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흐를 거란 상상을 합니다. 그래서 언제가 그곳으로 가는 날, ‘이제 왔냐’며 뒤 돌아보며 웃어주는 고작 몇 걸음 앞서 걷고 있는 먼저 떠나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구요.


아버지! 저는 이곳에서 저의 시간을 감당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납골당에 아버지를 모시면서 그동안 가족 모두가 마음 가득 불편함을 안고 1년을 보냈습니다. 이번  드디어 고향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이제 선산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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