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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y Dec 30. 2023

우리 새끼노랑이의 짧은 일대기

2023.12.27

저는 나이가 네 달인 고양이입니다. 4살 아니고 4달이요.  태어났을 때는 세상이 너무 뜨거워서 언니들하고 붙어서 젖 먹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안 그래도 더운데 몸에 털까지 돋아나서 더 더웠어요. 그런데 어제는 하늘에서 솜뭉치도 날리고 발가락도 너무 시린 거예요. 그래서 왜 제 몸에 털이 이렇게 많은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가슴털하고 꼬리털로 발가락을 감싸면 그래도 조금 버틸만하거든요. 털이 없었으면 아마 큰일 났을 거 같아요. 역시 오래 살아봐야 안다니깐요.


젖 먹을 때는 깜깜한 동굴 같은 곳에 있어서 몰랐는데, 엄마 몰래 환한 곳으로 나가 보니 제가 태어난 곳은 큰 나무가 많았어요. 큰 산도 있고 새도 많고 꽃도 많았어요. 꼼짝 않고 엎드려 잠자기도 좋고, 엄마랑 꽃나무 아래서 나비 잡기 놀이하기도 좋았어요. 엄마를 따라 조심조심 밖에 나갈 때면 꽃나무 아래 풀숲으로 숨어 다녔어요.  엄마가 사람인간하고 큰 고양이 아저씨들 만나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근데 엄마는 왜  사람인간을 조심하라고 하는 걸까요? 왜냐면 사람인간은 엄청 느리거든요. 뭘 짚기도 하고 타기도 하는데 그래도 느려요. 가끔씩 보이는 덩치가 큰 빠른 사람인간도 있어요. 그래도  엄마에 비하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뭘 조심하라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얼마 전부터 우리 4남매는 젖도 먹고, 종종 엄마를 따라 사람인간 밥도 훔쳐먹고 있어요. 가끔  부드럽고 기름진 밥도 있는데 엄청 맛있어요. 많이 먹어서 그런가 요즘 살이 많이 쪘어요. 아마 6명이 먹다가 4명으로 줄어서 먹을 게 많아져서 그런가 봐요. 엄마가 축 늘어진 두 놈을 물고서는 어디론가 나갔었는데 그 뒤로 밥 먹기가 훨씬 수월해졌거든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꼬리가 뭉툭했어요. 다른 언니들은 꼬리가 다 길쭉하고 예쁜데 저만 이래서 많이 속상해요. 그래서 젖먹이 때는 엄마가 저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밥 먹을 때면 엄마가 정말 엄청 무섭게 으르렁 거렸거든요. 그래도 저는 엄마가 없으면 무서워요. 안 보이면 엄마, 하고 울어요. 그럼 엄마가 어디선가 꼭 나타나요. 저는 엄마 옆에 꼭 붙어 다니는 게 좋아요.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소리를 자주 질렀어요. 엄청 큰소리로요. 계속 질러요. 우리한테 그러는 건 아닌데 어른 고양이들이 우리 근처에 오려고 하면 그러는 거 같았어요. 근데 신기한 건 낮이건 새벽이건 엄마가 나 죽는다, 소리 지르면 크고빠른사람인간이 어디선가 나타났어요. 그러면 무서운 어른 고양이들이 엄청 빨리 도망가요. 빠른사람인간이 쫓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요. 그러고 나면 엄마는 빠른사람인간을 빤히 쳐다보다가 기지재를 켜곤 했어요. 잘했어 빠른인간, 뭐 그런 느낌이랄까. 그러고 나서는 다시 우리에게 와서 젖을 줬어요.


저는 이제 뛰기를 엄마만큼 잘해요. 그래서 매일 엄마를 따라 언니들이랑 같이 사람인간 밥을 훔쳐 먹으러 가요. 얼마 전부터는 해가 둥실 떠있는 낮에도 엄마랑 같이 밥 먹으러 가고 있어요. 크고빠른사람인간이 잡으려고 해도 저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어제는 그 사람인간이 조그만 봉지를 가져와서는 뭔가를 쭉 짜주는데 냄새가 엄청 좋은 거예요.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인간 손이 코 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홀린 듯 밥을 먹었다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인간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서 진짜 코가 닿을 뻔 해 깜짝 놀았어요. 그래도 뭐 별일은 없었어요. 저를 잡으려고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에요. 그 사람인간은 느리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그 사람인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매 번 비슷한 시간에 밥을 가지고 오는 걸 보면 우리 먹으라고 그러는 것 같아요. 가끔씩 우리 앞에서 뭐라 뭐라 소리 내면서 손을 휘적휘적하곤 해서 좀 우승꽝스럽긴 해도 나쁜 뜻은 아니다 싶어요.  그래서 저도 애따 야옹 몇 번 해주고 엄마처럼 기지개 한 번씩 켜주고 있어요.


우리 가족은 밥 먹고 나서 사람인간 집 앞 넓은 곳에서 다 같이 뛰어노는 걸 엄청 좋아해요. 우리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엄마도 좋은 게 분명해요. 몸을 바짝 세운 채로 우리 쪽으로 막 뛰어 오다가 우리를 잡기라도 하면 바닥에 몸을 같이 뒹굴리기도 하거든요. 살살 물면서 장난칠 때는 엄마가  꼭 아기 같아요.


근데 얼마 전부터 우리 가족이 놀던 곳이 엉망이 됐어요. 밥 주던 사람인간이 잠자던 곳이 허물어지면서 모르는 인간사람들이 하루종일 시끄럽게 뭘 두드리다 저녁에는 사라지고 있어요.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어요. 크고빠른사람인간도 하루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봐요. 어제는 하루 종일 못 봤어요. 그래서 예전보다 배가 더 고파졌어요.


오늘은 정말 정말 추운 날이에요. 배가 너무 고파서 새벽에 엄마 몰래  혼자서 밥을 찾으러 왔어요. 길바닥이 반짝반짝했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너무 시린 거예요. 그래서 얼른 뛰어왔어요. 다행히 크고빠른사람인간이 매번 두던 자리에 밥이 있었어요. 평상시 보다 훨씬 많이 채워져 있어요. 맛있는 그 부드러운 밥이 아니라 조금 실망이긴 한데  배가 고파서 그냥 밥도 맛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조심하라던 그 무서운 흰장화고양이 아저씨가 갑자기 나타났어요. 내 밥인데 뺏어 먹으려고 해요. 그래도 나는 배고파서 모른 척 계속 먹었어요. 갑자기 흰장화 아저씨가 으르렁 거리면서 물려고 해서 급하게 담 밑으로 도망친다는 게 물 웅덩이에 빠졌어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흰장화 아저씨도 물이 무서운지 물웅덩이 안까지는 내려오지 않았어요. 조금 참다 나가면 될 것 같아요.


웅덩이 밖이 조용해요.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아요. 진짜 너무 추워서 더 있기도 힘들 것 같아요. 근데 왜 이러죠. 벽을 오를 수가 없어요. 털이 너무너무 무거워요. 발톱을 세워도 자꾸만 벽에서 미끄러져요. 무서워요. 울음이 터져 나와요. 털이 없었으면 이쯤 웅덩이 벽은 금방 올라갔을 거예요. 진짜예요. 며칠 전에는 우리 밥을 움쳐먹는 새들을 혼내주려고 몰래 나무에도 올랐거든요. 거의 잡을 뻔했었어요. 엄마처럼 진짜 잡지는 못했지만 거의 잡을 뻔했다고요. 이 웅덩이 보다 몇 배는 높은 나무도 올랐는데 이쯤이야 왜 못 오르겠어요. 근데 자꾸만 몸이 무거워져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자꾸만 눈이 감겨요. 엄마가 온 것 같아요.  엄마가, 언니들이 울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 너무 무서워요. 엄마 너무 춥고 자꾸만 잠이 와요. 밥 주는 사람인간이 아직 조금 무섭긴 하지만 야옹 소리를 들으면 저를 구하러 달려와 줄 것도 같은데... 이제 더는 울음도 나오지가 않아요. 저기 저 웅덩이 밖 동그랗고 흐린 하늘 속 세상에서 엄마랑 언니들이 우는 소리가 작아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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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6살입니다. 2년 전 퇴직 후 시골에 계시는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계속은 아니고 한두 달 지내다 시골 생활을 못 버티고 서울로 떠났다가 한두 달 후 다시 내려오는 식입니다. 할 일 없는 잉여인간에게 시골생활은 감정이 거세된 시간 그 자체의 무내용함과 마주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끔 찾아오는 고양이와의 만남이 일상에서 유일하게 내용이 채워지는 시간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이 지났을 때, 지금은 떠나고 없는 새끼 고양이 2마리가 집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여름에 처음 마주했던 새끼 고양이들은 챙겨주는 먹이를 먹고 우리 집을 자기 안마당처럼 사용하며 반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을 며칠 비우다 가보면 야옹야옹 날 선 소리로 서운함을 표하기도 하고, 새벽녘 할머니가 문을 나서면 마당에서 기다리다 뒹굴 거리며 귀염을 떨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집에서 생명의 기운이 커가는 건 새끼 고양이들 뿐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겨울이 오기 전 한 마리가 사라졌습니다. 홀로 남겨진 고양이, 큰누렁이의 쓸쓸해진 눈빛과 부쩍 생기를 잃은 발걸음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지만 결국 큰누렁이도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겨울 어느 날 이후로는 더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큰누렁이가 영영 떠나기 바로 전에 찾아온 새끼 고양이가 바로 삼색이었습니다. 지금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니까 거의 1년 전 일입니다. 삼색이는 이제 갓 태어난 건지 똥꼬가 툭 튀어나와 있었고, 탯줄이 아직 덜 말라서 배꼽 주변에 끈 같은 게 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여린 울음을 달고, 비실비실 불안정한 걸음을 걸으며 다가왔던 삼색이는 사람이 무서웠지만 배고픔은 더 무서웠던 것 같았습니다. 큰누렁이는 삼색이가 못마땅한 듯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으르렁 거리는 큰누렁이를 피해 삼색이는 창고 깊숙이 숨어들며 울부짖었고, 애절한 야옹 소리로 자신은 나약한 존재임을 드러내며 하루를 버텨갔습니다. 많은 눈이 내리고 겨울이 깊어져 가면서 그 많던 고양이를 동네에서 보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반년을 넘게 함께 했던 큰누렁이도, 하루하루가 위태로워 보였던 어린 삼색이도 그렇게 계절 속에서 잊혀갔습니다.


여름 어느 날,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집을 찾아왔습니다. 비틀비틀 걷던 그 삼색이가 겨울을 잘 버티고 이렇게 잘 자라서 다시 찾아왔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혼자 그 추운 겨울을 버텨내다니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창고에 방치해 뒀던 큰누렁이 사료를 다시 꺼냈습니다. 그렇게 또 몇 달을 같이 보내다 보니 삼색이는 아침 새벽부터 집을 찾았습니다. 새벽 한참을 기다린 모양인지 인기척을 느끼면 마당으로 나와 방문을 나서는 사람과 눈 맞춤을 합니다. 지난겨울 사라졌던 큰누렁이가 마당에서 집을 바라보며 쪼그리고 앉아 새벽 한참을 기다리던 그 모습과 많이도 닮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삼색이는 특이하게도 살이 찌지 않았습니다. 사료에, 통조림에 살찌는 음식을 많이도 먹는 거 같은데 통통함은 온데간데없고 늘씬하게 팔다리만 늘어나고 머리는 여전히 쥐알만 합니다.


그랬던 삼색이가 언제부턴가 뱃살이 출렁해졌습니다. 걸을 때 뱃살이 마당에 닿을 것만 같았던 큰누렁이처럼 이제 살이 찌려다보다 했습니다. 유독 뱃살만 찌는 모습에 임신을 잠깐 의심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10개월도 되지 않은, 여전히 새끼 고양이인 삼색이가 새끼를 뱄다는 게 어쩐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료나 고양이캔을 줄여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나는 어느 날 조금은 홀쭉해진 배를 하고 나타난 삼색이를 보고 새끼 낳은 거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새끼는 몇 달 동안 보이지 않았고, 삼색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밥시간을 찾아 집을 들락였습니다. 그렇게 확인되지 않은 추측만 이어진 채 또 한 계절이 지났습니다. 삼색이처럼 알록달록한 낙엽이 지던 늦가을, 드디어 목격담이 나왔습니다. 엄마가 마당에서 새끼 몇 마리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누구 새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알록달록한 새끼도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색이가 풀숲을 바라보며 평소와는 다른 울음을 합니다. 누가 봐도 일반 울음과는 달리 말을 건네는 신호임이 분명해 보이는 짧은 울음소리입니다. 그랬더니 새끼 고양이들이 우르르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천진한 애기들만의 걸음으로 엄마 곁으로 모였다 흩어졌다 장난치듯 마당을 뛰놉니다. 삼색이 색을 갈라놓은 듯, 까만 새끼, 삼색 새끼, 노란 새끼. 총 4마리를 마치 자랑하듯 새끼들을 대동하고 나선 엄마 삼색이었습니다. 이후로 자주 새끼들을 데리고 오는 삼색이는 울음으로 새끼들을 모으고 밥을 먹이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과식을 하는 새끼들 머리에 손방망이를 날리기도 했지만 주로 인간인 나와의 거리를 재며 새끼들이 안전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리를 조절하는 듯했습니다.


누나에게 삼색이 다섯 식구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진짜 삼색이 새끼들이 맞는지 몇 번을 묻던 누나는 며칠 후에 답장을 보내옵니다. 하루 종일 보내준 삼색이 가족사진을 보았다고요. 어린 삼색이가 너무 대견하다고요. 새끼들 잘 길러줘서, 너무 고마워서 하루 종일 사진을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일 년간 꼼짝 않고 시골에서 엄마를 모신 사람은 누나였습니다. 소소한 일거리가 있긴 하지만 젊은 사람이 버티기 쉽지 않은 적막한 시골 생활입니다. 그렇게 적막하기만 했을 시골에서, 삼색이와 함께하며 쌓인 시간의 높이를 제가 쉽게 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삼색이에게는 유독 엄마 껌딱지인 새끼 한 마리가 있습니다. 노랑이입니다. 새끼노랑이는 엄마 행동반경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듯 엄마 근처를 맴돌고 엄마에게 몸을 부빕니다. 사료 그릇이 여럿인데도 유독 엄마 고양이의 손방망이 사례에도 엄마와 얼굴을 맞대고 그릇에 얼굴을 박고 밥을 먹습니다. 그런 새끼노랑이도 가끔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집을 찾습니다. 엄마 고양이 없이도 새끼노랑이는 혼자서 밥 주세요, 합니다. 멀리서 야옹 거리며 새끼 울음을 울며 나를 향해 뛰어옵니다. 고양이 스틱을 줄 때면 코가 손이 닿을 듯 거리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코를 들이박습니다. 몸이라도 만질라치며 소스라치게 놀라며 야생성을 드러내 보이며 물러서기는 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무척 가까워진 거리입니다.


오래된 고향집을 뜯어내고 보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첫눈이 내렸고 날은 더 추워졌습니다. 새끼 고양이들을 며칠 째 보지 못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인지 간신히 엄마 삼색이만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집을 찾아왔습니다. 저녁이면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더 어두워지기 전에 저도 임시 숙소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세상에 한파가 몰아치고 공사는 중단됐습니다. 한파 속에서 저는 고양이처럼 몸을 움츠리고 방에서만 며칠을 보냈습니다.


공사가 재개되어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고향집을 수리해 주시는 목수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가슴이 덜컹하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집 담벼락 밑에 있는 우물 안에 고양이가 빠져 있다고요. 노랑 고양이인데 우물에 빠져 죽어 있다고 무심하게 말을 전해 옵니다. 야생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걸 이미 몇 차례 본 터라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왠지 알려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예, 하고 말았습니다. 내게 알려준 그 말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알아챌 수 없게 그들의 말의 속도와 떨림의 크기로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올 들어 가장 추웠던 그 아침,  너무 낯설기만 했던 삼색이가 떠올랐습니다.


한파가 몰아친 영하의 아침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이 추운 아침에 밥을 먹으러 왔을까 설마 하고 가보니 삼색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많이 추운 건지 벌벌 떨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벌벌 떠는 걸 넘어 혼이 나간 모습으로 심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반쯤 벌린 입 사이로 침이 흘렀고 눈동자는 저를 바라보지 못하고 어디선가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뭔가 잘못됐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째 삼색이는 치매라도 걸린 듯 행동했습니다. 한 발자국 걷다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응시하고, 걷고 멈추고 응시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익숙한 이 거리에, 정든 세상에 마치 작별을 고하듯이. 그 이상하기만 했던 아침과 삼색이의 행동을 일기장 속에 알 수 없는 슬픔으로 기록해 둔 날이었습니다.


목수들이 모두 떠난 저녁, 혼자 남은 집. 차마 담장 밑 우물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보지 않았지만 확신이 드는 이유는 며칠간 보이지 않았던 새끼노랑이 때문입니다. 새끼노랑이가 새끼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세상 거칠 것 없는 새끼노랑이의 걸음걸이가 늙은 고양이들이 잔뜩 움츠린 채 세상을 경계하며 걷는 걸음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밝기만 했던 새끼의 걸음으로는 깊게 파인 우물들을 경험했을 늙은이들의 두려운 걸음걸이를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갈퀴가 달린 긴 곡괭이와 고양이를 담을 만한 바구니를 챙깁니다. 부디 빗겨나간 운명이길 바라며 우물 속을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 꼬리가 뭉툭한 노랑 고양이가 찬 우물 위에 떠있습니다. 콕쾡이 끝으로 막대기처럼 빳빳해진 몸이 느껴집니다. 건져진 새끼노랑이를 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새어나간 시선 끝으로 언뜻 새끼노랑이의 뿌옇게 변해버린 눈동자를 느낍니다. 며칠 우물 속에 있었던 것인지 생기를 빼앗긴 채 아득히 먼 곳을 응시하며 뿌옇게 굳어져 있는 눈동자입니다. 재너머로 가는 산길을 오릅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밀착하고 있는 털 끝으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으로 골라야 합니다. 밑동이 커다란 소나무 등치 옆으로 흙이 고운 자리를 찾아 구멍을 파고 새끼노랑이를 누윕니다.


새끼노랑이의 온 묘생이 짙은 초록과 화사한 낙엽과 새하얀 눈송이로만 채워져 가볍게 떠나는 길이길 바랍니다. 삼색이 엄마 품에서 아늑하기만 했던 두 계절이었기를 바랍니다. 이 짧은 글이 두고두고 삼색이 가족과 함께 한 따듯했던 시간으로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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