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젊은 여성들이 읽어본 ‘김지영’
이집트 카이로의 어느 책방. 아랍어와 영어 책으로 가득한 곳에 영어로 번역이 된 한 권의 책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KIM JIYOUNG, BORN 1982” 한국 작가가 쓴 한국의 정서가 담긴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아시아, 미대륙도 아닌 아랍, 아프리카 지역에 있다고? 한국에서 발간된 지는(2016년에 10월 발간) 수년이 되었고 영화로까지 제작될 만큼 알려진 책이지만 난 책도 영화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저자가 쓴 책이 이 머나먼 나라에까지 번역되어 나온 것을 보며 자랑스러움에 영어 버전 KIM JIYOUNG, BORN 1982을 구입했다. 그리고 난 이 책을 몇 페이지 펼쳐본 후 읽을 흥미를 찾지 못하고 바로 책장에 잘 모셔 두었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책장에서 꺼내기까지 어떠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랍 학생들과 ‘독서 토론’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책방을 찾아가 책들을 둘러보며 어떤 책을 선정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긴 시간 책을 선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난 우연히 내 방의 책장을 보다가 수 계월 전에 사놓고 전혀 읽지 않았던 책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 이 책이다. 이 책으로 하면 되겠네.” 난 문득 책에 소개된 한국의 한 여성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곳 아랍국가 이집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다. ”아랍의 여성들은 혹은 남성들은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을까?” 난 바로 이 책을 선정한 후 광고를 하고 학생을 모집하며 천천히 KIM JIYOUNG, BORN 1982를 읽어 내려갔다.
책 훑어보기
- 줄거리는 유튜브 어느 채널을 보고 많은 부분 옮겨 적은 것임.
‘2015년 가을’
주인공 김지영의 이상 증세가 처음 감지된 날은 9월 8일이었다. 김지영의 남편인 정대현은 아침 식사로 토스트와 우유를 먹고 있는데 지영은 갑자기 베란다로 나간다. 혼잣말을 하던 지영의 말투는 마치 그녀의 어머니 말투와 같았다. “이제부터 홑 잠바 하나씩 들고 다녀, 정서방.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그때만 해도 대현은 아내인 지영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후 지영은 자신이 작년에 죽은 동아리 선배 차승연이라고 했고 그러다 추석이 되어 시댁에 가면서 결국 일이 터지고 만다. 대현의 여동생인 수현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차례도 안 지내는 집에서 뭐 하러 음식을 그렇게 많이 하냐며 엄마도 고생이고 지영이고 고생이니 음식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딸의 말에 서운했던 어머니는 지영에게 슬쩍 질문을 던진다. “얘 힘들었니?” 시어머니의 말을 들은 지영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상이에요.” “정 서방! 자네도 그래.” 매번 명절 연휴 내내 부산에만 있다가 처가는 엉덩이 한 번 붙였다 그냥 가고 이번에는 좀 일찍 와” 대현은 아내의 입을 틀어막고 집을 빠져나왔고, 결국 대현은 아내 지영을 데리고 정신과를 찾기로 한다. 책 82년 생 김지영은 2015년에서 과거로 돌아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1982 ~ 1994년
1982년부터 1994년은 지영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그녀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지영이 태어났다.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딸을 낳은 지영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해 또다시, 시어머니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죄송하다는 말에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괜찮다며 셋째는 아들을 낳으면 된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게 된다. 지영이 태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지영의 어머니는 세 번째 아이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딸이었고, 결국 지영의 어머니는 아이를 지웠다.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아이가 생겼고, 남자인 아이는 무사히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의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을 정도로 남자아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물론, 요즘은 셋째아 이상 출생의 성비 역시 남아와 여아의 성비가 105대 100 정도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1995-2000년
1995년부터 2000년은 지영이 학창 시절을 보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IMF로 구조 조정의 바람이 불면서 공무원이셨던 지영의 아버지는 퇴직 권고를 받게 된다. 하필 그때 지영의 언니인 ‘김은영’은 대학 입학을 앞둔 고 3이었다. 집안 분위기는 마치 살얼음판 같았다. 하지만 지영의 언니 은영은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 만족할 만한 수능 성적을 받게 된다. 그런 큰딸에게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지방의 한 교대를 추천한다. 은영 본인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 말이다. 결국 은영은 어머니 앞에서 싫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에는 교대에 원서를 냈고, 대학에 합격해 교대생이 된다. 마찬가지로 지영이 고3일 시기에도 집안 분위기를 좋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자식들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며 열심히 일했지만, 장작 자식들의 현재에는 관심을 가져줄 수 없었다. 그대로 지영은 무사히 수능을 치른다. 하지만 막상 수능을 치르고 나니 부모님이 자신의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일단 붙고 나서 걱정하라던 어머니는 솔직하게 등록금 1년 치는 있다고 이야기한다. 1년 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가게를 팔든 할 테니, 1년 후에도 걱정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지영이 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을 그리며 지영이 학창 시절 성추행을 당한 이야기, 퇴직을 한 아빠가 사업을 한다고 하니 어머니가 말리는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2001년 ~ 2011년
2001년 ~ 2011년은 지영이 대학을 다니고, 취직을 통해 직장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지영은 3학년 겨울방학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한다. 그동안 망쳤던 과목들을 재수강을 통해 학점을 보완했고 토익 점수도 차근차근 올리기 시작한다. 나름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던 지영은 식품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취직이 어려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원서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 회사의 서류 정형에 유연히 합격을 하게 된다. 면적은 3명씩 진행됐고,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토대로 면적이 시작되었다. 예상 가능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모두 끝냈지만 마지막으로 중년 남자 이사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려운 이 거래처 미팅을 나갔는데, 만약 거래처 상사가 자꾸 신체 접촉을 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영은 고민 끝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하겠다고 대답한다. 두 번째 면접자는 그 자리에서 주의를 주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한 어조로 대답한다. 가장 오래 모범 답안을 고민했을 마지막 면접자가 대답한다. “제 옷차림이나 태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돌아보고 상사분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유발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겠습니다”(p. 102) 며칠 후 지영은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메알을 받게 된다. 너무 아쉽고 궁금한 마음에 인사과에 전화를 걸었지만 형식적은 답변만 받을 수 있었다. 같이 면접을 봤던 다른 두 사람도 합격자 명단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운이 빠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2012년 ~ 2015년
2012년부터 2015년은 지영의 결혼과 임신,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 오면서 지영은 출산 휴가만 낼지, 육아 휴직을 할지, 퇴사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나중에 퇴사를 하더라도 일단 육아 휴직을 쓰고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회사와 동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지영과 대현은 결국,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짓게 된다. 그 한 사람은 당연히 지영이었다. 남편 대현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도 많았지만 저자는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서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편견이 아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여자들이 결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남녀 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런 분위기를 만든 이 사회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지영은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며 자녀의 성에 대한 협의를 나누는 이야기 결혼을 하니 아이를 낳으라는 강요를 받는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2016년
책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은 이전처럼 제삼자의 시선이 아닌 지영과 대현이 상담한 정신과 전문의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정신과 전문의였던 40년 남성은 지영과 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게 된다. 안과 전문의였던 자신의 아내가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떠올리며 대한민국에서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병원 직원이던 상담사 선생님이 임신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번 직원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는 말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렇게 책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가 끝이 난다.
아랍 여성들과 함께 공감해 보기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학생, 약사, 회사원으로 사회에서 일을 하고 있는 20대의 젊은 여성들이다. 위의 줄거리를 함께 읽은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책의 주인공 김지영 씨의 삶이 자신들의 어머니와 너무 비슷해서다. 자신들의 어머니 역시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당당히 취직을 하였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자녀들을 낳다 보니 당연스럽게 자신의 꿈과 일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0년, 20년 전만 해도 이집트의 여성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영향력이 그리 높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았던 세대들 중 많은 이들이 지금 세대의 자녀들에게 자신들처럼 살지 않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이집트 사회의 아랍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회 그리고 가정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위치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넓은 땅, 1억이 넘는 인구의 반인 모든 여성들의 삶이 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에 살고 여러 문화를 쉽게 접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은 분명히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여성 삶을 주제로 책이 쓰였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 차별 아닌가요?
함께한 한 여성의 질문이다. 이 질문 안에 책에 대한 그녀의 불편함이 묻어있다. 공정한 사회라면 이러한 주제의 책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책으로 인해 어느 사회에선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여성의 어느 부분에 대한 편견이 생길 것을 우려한다. 그렇다. 사실 한국에서 82년생 김지영은 남, 여 불문하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책의 주인공 '김지영'이 극단적인 캐릭터로 등장함으로 한국의 모든 여성이 그러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지영'은 극단적인 캐릭터로 일지라도 그녀 자신의 감정이 잘 드러남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봄으로 치료를 하고 있지만 한국의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감정조차 숨기며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김지영'보다 더한 차별을 받으며 살았고 지금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인도자: 아랍의 여성 역시 가정과 사회에서 김지영과 같은 차별을 받아오지 않았나요? 나 역시 이집트에 와서 그러한 여성에 관한 시선이 바뀌긴 했지만 '아랍 여성'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이 강한 것도 사실이에요.
히잡을 쓴 여성들, 남성에 의해 억압받고 사회 진출이 쉽지 않은 무슬림 여성들, 일부다처제 남편으로 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내들.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회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아랍 여성에 관한 일반적인 시선이다. 물론 어느 세대, 어느 가정, 어느 나라의 사회에선 여전히 이렇게 여성들이 차별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랍의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살아간다고 정의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어느 여성들은 한국의 여성들이 사회에서 받는(받아왔던) 차별을 보며 놀라 한다. 적어도 많은 아랍의 도시에 살아가는 20-30대의 세대들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자신의 권리를 말하고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어 보인다. 20대 후반, 30대의 여성들이 결혼을 미루고 독신을 선택하며 케리어와 성공을 꿈꾸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러 아랍국가의 사회에서 세대가 변해감에 따라 인식이 변하고 사회가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오랜 전통, 종교, 신념이 점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차별금지법을 지지할까요? 우리는 항상 차별을 찬성해 왔어요. 본능이니까요. 사람이니까 그 말을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지요. 그게 세상을 움직이는 신의 민낯이에요.
한국 드라마 ‘60일, 지정 생존자‘를 본 한 여성이 극 중의 오영석이 한 말을 모두에게 소개한다. 우리 모두는 정말 속으로는 ‘차별’을 찬성하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까라며 서로의 생각을 물어본다. 그녀는 극 중의 대사가 자신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와 절대 잊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 역시 마음속으론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조건이지만 자신이 남보다 더욱 인정을 받고 돈을 더 잘 벌고 높은 곳에 있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솔직한 우리 모두의 심리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두 말을 할 수 없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엔 ‘차별’을 찬성하는 살아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솔직한 우리의 답이 아닐까. 여전히 많은 곳에서 차별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지적하기 앞서 스스로에게 던져진 이 질문에 우린 스스로 답을 해야 할 수 있겠다.
마무리하며...
약 2시간의 대화동안 우린 여러 질문에 관한 공통적인 답을 찾지 못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할 뿐이었다. 그들은 질문이 답을 찾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의 질문과 생각들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결국 스스로 고민함으로 자신의 답을 찾는 것이다. 어쩌면 평생 답을 찾지 못하고 여러 고민만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럴지라도 그러한 고민은 한 사람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든다. 고민은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질문하며 스스로 좋은 답을 찾기 위해 말과 행동이 변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한 발전적인 고민들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조금씩 발전해가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