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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근 Feb 22. 2024

욕 안 먹는 공공시설 디자인 경험 전략은 뭘까 -마지막

성격 급한 인간의 지극히 주관적인 국립중앙도서관 첫 방문기

신속의 불문법 세 번째, 최신화: 

제발 현생에 살아!



직관성을 시간으로 표현하면 지금 당장 NOW!


대부분의 시설은 시간에 따라 용도가 변하거나 공간 구성이 바뀔 수 있다. 리모델링일 수도 있고 내부 시설이 추가, 변경, 이동할 수 있다. 공간 정보가 변했으면 당연히 그 공간을 안내하는 길 찾기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 길 찾기 시스템을 최신화하지 않거나 혹은 현재 새로운 길 찾기 시스템과 이전 길 찾기 시스템을 혼재해 놓은 경우를 심심치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아무리 공간이 좋게 바뀌었을지라도 공간 정보가 최신화되지 않아 그 공간에서 헤매게 된다면 이용 경험이 좋을 리 만무하다.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짓거나 내부 리모델링을 전체적으로 진행하는 경우 내외부의 사인을 자연스레 함께 교체하게 된다. 그렇지만 고작 몇 개 방이 용도가 변경된다거나 서로 자리가 바뀌었다거나 할 때는 당사자 혹은 시설 관계자가 기꺼이 나서기 전에는 공간정보 최신화가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상업시설보다 공공시설에서 이런 느린 최신화의 문제가 만연하다. 상업시설의 경우 새로운 점포가 들어서거나 점포가 이전했을 경우 안내를 즉각적으로 하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를 않는다. 검색 포털과 온라인 지도 기반 서비스에 식당 정보를 등록하지 않는 나태함은 고객을 잃는 매출 부진, 생존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동네의 정말 조그마한 반찬가게도 이전을 하기 전과 후 한동안은 새로운 위치를 설명하는 약도를 붙여놨다. 


반면 공공시설의 경우 굳이 지금 바꿔야 하나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다. 물론 부분의 공간 정보를 최신화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사용해야 하니 일반 민영시설보다 절차가 복잡하다. 또 관련 부서가 서로 달라 협의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공간 계획을 변경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절차와 부서 간 협의가 이미 복잡했을 텐데 그때 공간 정보를 최신화하는 계획을 왜 함께 세우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기에 아쉽다. 




그렇다 아쉬운 건 바로 나, 시민이다. 


고객은 아쉽지 않다. 

하지만 공공시설에서 시민은 고객이 아니다. 

그래서 시민이 아쉽다. 


"안내데스크 있잖아요. 뭐가 불만이야"

"좀 헤매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잖아~ , 필요한 사람이 움직여야지~" 


이는 이전 불문법, 직진본능을 설명하며 안내데스크 설치의 무책임을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미리 공간 이용자의 경험을 최적화하기보다는 굳이 굳이 불편하다는 사람을 위해 민원처리 시설을 하나 더 설치하는 것, 시민이 불편을 호소하면 그냥 그때 필요한 만큼만 최소로 대응하는 경향이 짙다. 아쉬운 사람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이 해결해야지

국립중앙도서관의 5000원짜리 점심을 먹으러 온듯한 나를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중한 이용 고객으로 여기진 않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디에도 식당으로 가는 안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장사가 안되기를 바랄 수 있는 건 공공시설 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신속성의 본능이 자극되어 지역 도서관의 과거 행동 경험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나의 경험상 카페테리아라던지 이런 시설이 도서관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길안내 표지에서 지하에 카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천장에 걸려 있는 행잉(hanging) 사인이 위치한 공간의 구조는 다음과 같았다.

공간 재현을 위한 3D 목업

이렇게 중앙 통로가 있고 양옆에 계단이 위치한 경우 일반적으로 어느 쪽으로 내려가던 서로 동일한 공간으로 이어질 거라고 직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순간에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내가 예상한 구조도



그렇지만 지하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내 머리에 스친 것은 사인의 레이아웃이었다. 사인을 떠올려보면 마치 왼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카페,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물품보관소가 있다고 안내하는 듯했기 때문이다.(사인의 화살표와 레이아웃을 공간의 구조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본능적인 인지는 신속성의 불문법 두 번째 설명에서 다루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다고 한다면 오른쪽으로 내려온 나에게 보여야 할 것은 물품보관소이다. 지하엔 물품보관소도 없이 관계자 외 출입금지가 붙어있는 격실 밖에 없었다. 나는 지하가 아닌 1층에 위치한 물품보관소에 짐을 보관하고 왔는데 혹시 물품보관소가 지하에 있다가 1층으로 이전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5000원짜리 자율배식 식권을 손에 넣고 싶은 나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다시 1층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아 여기는 좌우 구조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구나 하는 확신의 마음을 가지고 표지판을 다시 한번 보고 왼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 진입 1차 실패 후 새로 상상한 지하 좌우 분리 구조도





아이. 아까랑 똑같은 지하 공간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냥 길안내 사인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잘못된 사인이 본관 홀 중앙에 너무나 버젓이 주인공처럼 달려 있는 것이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혔거나 향수병에 걸렸거나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한 비운의 표지였다. 


제발 현생에 살자! 나는 배가 고프다. 짜증이 밀려온다. 마침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붙은 방에서 관계자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이 나오길래 식당이 어디냐고 그냥 바로 물어보았다. 1층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우측으로 쭉 가라고 한다. 


1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이용증을 다시 찍고 출구로 나간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가다 보니 아까 버젓이 지하에 있다고 하던 카페가 나오더라. 심지어 이디야였는데 아마 카페 자리가 이전하고 새로운 민간 업체가 들어온 모양이다. 최신화가 안된 표지판은 홀로 민영화 반대 운동을 하고 있던 것일까. 


식당은 본관 건물을 바라보고 왼쪽, 본관에서 나오는 방향에서는 오른쪽에 위치한 별도의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까지 가는 내내 식당 사인은 보지 못했다. 


중앙도서관은 아마 노후한 시설을 개선하려고 구조를 바꾸거나 실내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하는 과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덕분에 당연히 현재 정보, 이 공간의 현재 정보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을 거라 여겨지는 사인 시스템들이 최신화가 되지 않았을 때 뜻밖의 허기짐, 분노를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공시설 사용자 경험, 

신속함의 불문법 3가지 마무리 


1. 직선 동선으로 진진 본능을 만족시킬 것, 

그래서 안내소를 설치하는 게 아니라 안내소를 찾지 않게 만들 것 


2. 헷갈리지 않는 명확한 사인을 제공하기 위해 공감각적인 고민을 할 것 


3. Way finding의 정보는 이용자가 요구하기 전에 항상 최신화할 것 



빠른 게 최고인 대한민국 공공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공공시설 역시 신속한 이용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면 시민들의 민원이 줄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였으나. 내가 배고픈데 도서관 이용권 발급 빨리 못 받고 식당을 빨리 못 찾아서 화가 난 진상 민원글인 것 같다.(맞다) 


결론은....

도서관에는 책 보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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