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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근 Feb 22. 2024

욕 안 먹는 공공시설 디자인 경험 전략은 뭘까 -3

성격 급한 인간의 지극히 주관적인 국립중앙도서관 첫 방문기

신속의 불문법 두 번째, 명확한 사인(SIGN)


정보 전달에 사용하는 기호는 헷갈리지 않게 의미가 명확해야 한다.


길 찾기 시스템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인은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이다. 화살표는 너무나 직관적이고 의미가 분명한 기호 같지만 의외로 세심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사용자 이동 동선을 망치는 주범이 된다.



서로 다른 차원에서 오는 길안내의 문제


우리는 삼차원 공간에서 이동하지만 대부분의 화살표는 이차원 평면 구조물에서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2차원 화살표를 다시 3차원으로 가져와 의미를 해석하게 된다. 방향 해석은 실제로 우리가 현재 위치해 있는 3차원 공간을 근거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2차원 화살표를 안내로 제공할 때는 반드시 그 사인이 설치될 장소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만약 2차원 화살표가 그 사인이 놓일 실제 3차원 공간을 고려해 설치되었다면 사용자는 직관적인 방향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표지판이 세워질 실제 3차원 공간의 현장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2차원 공간만 고려해 화살표 방향을 표시한다면 사용자는 방향을 해석을 넘어 해독해내야 한다. 신속할 수 없고 오류를 만날 여지가 생겨 신속의 불문법을 위반하는 경우다.


Case 1: 명확한 수평 이동 안내

층고에 차이가 없는 동일 평면 공간 상에서의 화살표 표시는 자연스레 같은 높이에서의 평행 이동을 연상케 한다. 이런 경우 왼쪽 화살표는 우리를 왼쪽으로 이동하게 한다. 위를 향하는 화살표는 직진 표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 왼쪽 대각선 위를 가리키는 화살표는 같은 방향으로 사선 이동을 유도하는 게 명확하다.


위의 예시와 같은 경우인데 왼쪽은 야외 공간에서의 표지판이다. 우리가 하늘로 솟을 수는 없기에 자연스럽게 수평이동으로 의미가 전달된다. 오른쪽의 지하철 사인도 위쪽 대각선이 가리키는 곳에 눈에 띄는 복층 구조물이 없고 통로가 단 하나이기 때문에 대각선 방향으로의 수평이동으로 의미가 쉽게 전달된다.




Case2: 복층 구조에서의 애매한 화살표 표시


만약 우리가 날개가 달려 날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복층 구조물이 눈에 보인다면 위쪽이나 아래쪽을 가리키는 화살표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표지판의 화살표는 Case1과 동일하지만 표지판 옆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 구조가 생기면서 화살표가 전혀 다른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때 기호를 해석하는 방식은 꽤나 복잡해진다. 왼쪽 대각선 위를 향하는 화살표가 복층 구조의 계단을 가리키게 되면서 위층으로 올라가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모호한 것은 완전히 위쪽을 가리키는 화살표이다. 직진하라는 것인지 한층 올라가라는 것인지 중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Case2의 경우 아주 심각한 경우는 아니다. 대각선 방향이 계단을 가리키면서 위층을 나타내는 게 보다 명확하기에 상대적으로 위쪽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위층이 아닌 직진으로의 의미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통의 경우 이런 중의성을 해결하기 위해 Case3처럼 단순 화살표 기호를 강화한다.




Case3: 복층 구조에서의 확실한 화살표 표시


복층 이동을 표현하기 위해 대각선 화살표에 계단 표시를 병기하는 법이다. 같은 높이의 대각선 평행이동인지 아니면 위로 올라가라는 뜻인지 구분이 명확해서 신속하게 동선을 인지할 수 있다.

Case2에서 계단표시가 추가되니 이제는 수직 층계 이동과 동일 층계 안에서의 수평 이동이 구분될 수 있게 되었다. Case2와 Case3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취사선택이 가능한데 만약 계단 표시 없이 대각선 표시만 해도 공간 구조상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계단 표시를 굳이 쓰지 않는 게 경제적이다. 다음의 예시를 보자.


왼) California College Campus, rsmdesign

오) Branding & Signage for Galera, a Cultural Centre,   Mariela Mezquita Studio


왼쪽의 California College Campus의 경우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인을 보는 방향의 시점에 따라 대각선 화살표 표시를 다르게 사용했다. 가장 왼쪽의 MIDDLE CAMPUS 위치를 안내하는 사인을 보는 특정 시점에서는 계단 구조물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대각선 화살표를 사용하면 그것이 층계 이동을 하라는 것인지 대각선 방향으로 쭉 가라는 것인지 모호하다. 그래서 대각선 화살표에 계단 표시를 병기해 의미를 명확하고 신속히 전달한다. 반면 계단 벽면에 위치한 대각선 화살표에는 계단 표시를 굳이 병기하지 않았다. 이미 계단 벽면에 위치한 사인을 바라볼 때는 위아래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층계 이동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경우 왼쪽에 계단 구조물이 보인다. 동시에 표지판에서 나타내는 화살표의 방향이 여러 방향이다. 어쩌면 왼쪽 대각선이 가리키는 방향에 계단이 보여서 굳이 계단표시를 병기하지 않아도 됐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아래를 보면 위쪽을 향하는 화살표가 또 있다. Case2와 같은 경우다. 그래서 층계 이동을 뜻하는 화살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기 위해 위쪽 대각선 표시 화살표 옆에 계단 표기를 병기했다. 다만 계단 표시를 위해 대각선 화살표를 별도로 중복해서 쓴 것은 *경제적이진 않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쉽게 이야기해서 가성비 계획이다. 디자인 형태가 단순하지만 의미 전달은 충분한 경우, 혹은 실제로 대량 인쇄, 제작 시 상대적으로 물리적 요소가 많지 않아 제작비가 절감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디자인의 경제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중앙도서관에서도 다른 층의 이동정보를 아래와 같이 표시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California College Campus의 경우처럼 계단 바로 옆 사이드에 배치된 표지판에는 굳이 계단 표시 병기 없이 심플하게 대각선 화살표만 사용하는 경제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실전 적용


여러분의 목표는 미디어 창작실에 가는 것이다. 아래는 디지털도서관의 입구를 지나면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이다. 처음 방문한 여러분이 길을 찾아 두리번거릴 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까?

나 같은 경우는 원색으로 빛을 내고 있고 뭔가 글이 막 쓰여 있는 오른쪽의 디스플레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중요한 것을 눈앞에 빠르게 위치시키고자 하는 첫 번째 신속의 불문법에 부합해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럼 한번 디스플레이에 바로 다가가보자.


미디어창작실이 디스플레이 중앙 왼쪽열에 표시되어 있다. 좌상향 화살표이며 화살표의 끝에 마침 위로 향하는 계단 구조물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앞서 살펴본 Case2의 경우와 동일한 듯하다. 여러분은 미디어창작실로 향하기 위해 어디로 갈 것인가. 나의 경우 신속함이 생명, 나는 눈으로 빠르게 보고 좌상향 화살표가 가리키는 왼쪽의 상향 구조물, 계단으로 직진했다. 이번 사인은 중앙도서관도 잘 만든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2층에서 미디어창작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미디어창작실은 1층 계단 뒤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계단 위가 아닌 계단 아래, 계단 뒤 희미하게 보이는 파란색 방이 미디어창작실이었다.

왼쪽이 표지판이 의도한 동일 층내의 좌상향 화살표의 의미이고 오른쪽이 계단 구조물 때문에 내가 층계 이동으로 잘못 해석한 좌상향 화살표의 의미이다.



Case 4 ~ 신속 정확한 안내를 위한 조금 더 세심한 디자인 고민


사실 사인만 놓고 보았을 때는 중앙도서관의 사인이 큰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아래와 같이 층계 이동을 위한 화살표 표시에는 계단 표시를 명확히 병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관은 층계 이동을 뜻하는 계단 표시가 병기된 좌상향 화살표를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는 Case1, Case2, Case3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잘 적용하긴 했지만 단순 상하좌우, 좌상, 좌하, 우상, 우하 대각선 화살표 표시와 계단단 병기만으로는 신속한 안내가 부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층계 이동은 따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만 여기까지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기본이다.



무엇이 아쉬울까.


개인적으로는 중앙도서관 사인의 경우 상층 이동 정보인 본관 표시가 디스플레이 가장 하단에 위치한 것이 아쉽다. 3D 공간 안내를 2D에서 최대한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단순 화살표 표시 이상으로 3D 공간 경험 맥락에서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을지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위쪽 층계의 정보는 위쪽에 표시하고 동일 층의 정보는 중앙에 표시하며 아래층의 정보는 아래쪽에 표시하는 방법이 있다. 자연스레 3D의 수직 공간 위계가 2D 표지판에 연결된다. 이렇게 하면 해당 정보를 바라보는 시선 높이와 실제 공간의 높이가 맥락상 일치될 수 있다. 이는 무의식중에 공간정보를

해석하는 하나의 힌트가 된다.

상층의 정보는 위쪽에, 하층의 정보는 아래쪽에 위치했으며 층계 정보 사이에 여백을 주어 의미 구분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다. 사실 하나의 표지판에서 여러 층의 위치 안내를 표시할 때는 층 정보를 확실히 표시하는 아래의 방법이 가장 직관적이다. 층 표시는 흔히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옆에서 볼 수 있다.


단순 직선 방향뿐 아니라 코너에 위치해 있거나 같은 방향이지만 더 안쪽에 위치한 공간을 안내하기 위해 아래처럼 새로운 화살표를 디자인한 경우도 쉽게 볼 수도 있다.

바로 우측에 위치한 정보는 직선 화살표로 표시했으나 코너를 돌아가야 하는 경우 90도로 꺾인 화살표를 사용하곤 한다. 만약 중앙도서관에서도 내부 구석에 위치한 미디어창작실 정보를 저런 꺾어진 화살표로 표시했다면 조금 더 직관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쉬워 보이는 화살표 기호 사용도 각종 현장에 따라 사용자 경험을 다각도로 고려하면 알게 모르게 공간 이용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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