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급한 인간의 지극히 주관적인 국립중앙도서관 첫 방문기
직관적이면 빠르다.
신속성을 위한 공공장소의 공간 디자인은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헷갈리면 안 된다. 공간의 이용 절차가 하나 늘어나는 것만으로 사용 경험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관적이라는 것을 동선으로 비유하자면 최단거리 직선에 비유할 수 있겠다. 직진본능이다. 다음의 예로 살펴보자.
Case1:
당신은 공공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본관 입구로 들어섰다.
출입구가 막혀있는 걸 보니 뭔가 출입증이 필요한 것 같다. 목표였던 도서관 진입에 실패했다. 이용증 발급이라는 과제가 생겼다. 도서관의 이용절차는 1. 입장, 2. 이용증 발급이다. 이용증 발급은 모바일로도 발권받을 수 있으나 처음 방문 시민, 모바일 발권 가능 여부를 모르는 상태 방문을 가정해 본다.
일단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옆에 매표소같이 생기기도 하고 안내인 것 같은 데스크가 바로 보인다. 데스크에 붙어있는 안내 사인이 작지만 눈에는 들어온다. 여기까지는 이용증을 발급받기 위한 당연한 절차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이용증 발급대가 따로 있다는 안내를 받게 된다.
최적의 시나리오는 2단계에서 바로 이용권 발급이었으나 안내데스크에서는 과제를 하나 더 부여한다. 바로 이용증 등록 전용 데스크를 찾아가라는 것. 위 사진상 초록색 화살표 자리, 즉 기다란 안내데스크와 함께 이용권 데스크가 위치했다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이용증 등록 전용 데스크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직선 동선에 보이지 않는다. 안내원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돌아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왤까.
오른쪽 구석에 기둥과 나무에 스스로를 위장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안내데스크에는 안내라는 사인이 작게라도 데스크에 붙어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이용증 발급이라던지 사인이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서도 회원가입 절차가 진행이 되는데 이미 그런 절차를 거치기 전에 이곳까지 오기 위한 공간 경험에 피로도가 쌓이게 된다. 피로도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비효율적으로 진행했을 때 쌓인다. 신속성의 관점에서 사용자 경험을 배려했다면 위의 과정이 당연한 수고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적응하면 아무 일도 아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냥 적응하면 된다지만 굳이 뒤떨어지는 삶에 적응하기보다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적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공디자인을 통해 삶의 질을 자연스레 높일 수 있다.
공간 설계가 명확하지 않고 이용자 동선이나 서비스 과정에 대한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는 안내데스크 전면 배치가 어쩌면 전략적인 선택이기는 하다.
그렇기 때문에 안내데스크 전면 배치는 일반 시설 계획에서 사용자의 경험을 무시한 꽤나 무책임한 계획이기도 하다. 우리는 안내데스크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고 눈에 잘 띄면 편리하다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안내데스크를 찾게 되는 상황은 우리가 목적지를 찾을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이다. 그런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계획할 수 있음에도 일단 짓고 나서 사용자 경험 개선을 위한 해결책으로 안내데스크 증설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리모델링한 코엑스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미로처럼 복잡한 공간구성이 매출 저하까지 직결되자 미친 듯이 지도 사인과 안내 키오스크, 안내데스크를 설치한 경우다. 기둥마다 지도가 안 붙어 있는 곳이 없다.
연애와 같은데, 도통 속을 알 수가 없고 표현도 안 해서 물어 물어야 원하는 바를 말해주는 상대가 좋은지 척하면 척 솔직하게 통하는 상대가 좋은지. 장소에서의 길 찾기 경험도 똑같다.
직진 본능을 고려한다는 것은 사용자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 어디로 주로 향하는지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진 동선에 적절한 서비스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공항을 예로 들면 비행기를 타려면 반드시 보딩 패스를 발급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렌터카 업체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항공사별 수속 데스크가 가장 메인에 있고 렌터카 업체 부스는 사이드에 있다.
위 예의 공공도서관 장소에서 안내데스크는 공항에서의 수속 데스크 위치에 있고 이용권 발급 데스크는 공항 1층의 렌터카 업체 부스의 위치선정과 비슷하다. 이용권 발급 부스가 메인에 있어어야할까 안내데스크가 메인에 있어야 할까? 이용권이 없다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용권 발급은 대부분의 방문자들이 거치게 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용권 발급 부스는 현재 안내데스크 자리에 명확한 사인과 함께 위치해 있는 게 어떨까?
해당 시설의 다른 장소는 아래와 같이 입구 게이트와 출구 게이트가 양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입구 게이트와 출구 게이트를 A, B 중 어느 쪽에 위치하는 게 좋을까?
디자인에서는 결말은 항상 열려있다. 결국 데이터가 있어도 마지막에는 디자이너의 가치관과 해석이 결과물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또 시간에 따라 세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적어도 스스로는 디자인 철학이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인다.
나 같은 경우 공공디자인에서는 신속성, 사용자에게 동선에 있어서 직진 본능을 따르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A를 내부로 들어가는 게이트, B를 출구 게이트로 사용하고 싶다. A는 건물 출입구에서 직선 동선인 동시에 출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눈앞에 위치해 있다. 반면 B는 건물 출입구에서 바로 보이지 않으면서 기둥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한번 찾고 동선을 틀어야 한다.
현재는 A가 출구, B가 입구인데 이런 계획은 첫 번째 장소의 예시와 비슷한 맥락의 설계 같다. 둘 다 도서관 진입에 있어 동선을 늘리는 방향이다. 또 나가는 사람의 동선이 우선이고 입장하는 사람에 대한 동선을 기둥 뒤로 감추듯이 후순위로 고려했다. 이런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인데 익숙하게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불편하지 않으나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어려운 동선이다.
어쩌면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 나처럼 5000원 점심만 먹으러 올 것 같은 사람을 꾸짖기 위한 고도의 장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