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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근 Feb 21. 2024

욕 안 먹는 공공시설 디자인 경험 전략은 뭘까 -1

성격 급한 인간의 지극히 주관적인 국립중앙도서관 첫 방문기 

점심이 5000원밖에 안 한다니, 게다가 자율 배식이라니! 재택을 하는 친구가 서초동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만나자길래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구내식당 가격이었다. 왜인지 난 쇼핑도 안 하고 밥만 먹고 숨만 쉬는데 돈이 없는 요새. 설레는 마음에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확실히 5000원이라는 자율배식 점심은 훌륭했으나 국립중앙도서관 첫 방문 경험은 훌륭하지 못해 매일 점심을 먹으러 오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나같이 밥 먹으러만 오려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국립중앙도서관의 전략인 것일까? 2024년 2월 현재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공공시설에서의 사용자 경험을 생각해 보았다.




디자인 레이아웃, 기능성과 심미성의 균형


시각디자인 전공을 하고 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표현하고자 하는 정보의 위계를 나누는 일이었던 것 같다. 단순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눈에 띄게 배치하는데 그러면서 예쁘게 배치할 수 있는 레이아웃을 설계하는 일이다. 


레이아웃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눈에 띄게 배치하는 기능성이 우선이었다. 그 후 심미적으로 만족스럽게 변주를 가해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반대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심미성이 우선이고 기능성이 우선이다. 그렇게 탄생한 디자인은 보기에는 좋으나 기능성이 떨어져 정보 전달력이 떨어지기 쉽다. 어쩌면 난해한 스타일로 대부분 실험적이기까지 하다.


상업디자인의 경우에는 일단 소비자 눈에 띄는 것이 중요해서 심미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쉽다. 그럴 때는 전략적으로 심미성이 기능성보다 우선순위가 되어도 괜찮다. 이때 심미성을 중요시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해당 디자인의 존재 목적으로의 기능성과 직결될 수 있다. 



기능성이 중요한 공공디자인의 성문법과 불문법


그렇지만 공공디자인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기능성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공공디자인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사회적 합의라 하면 법을 생각하면 쉽다. 법에는 성문법이 있고 불문법이 있다. 공공디자인에서 사용자 경험을 이야기할 때 성문법이라 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빨간불이면 멈추고 초록불이면 간다!' 라던지 '아스팔트 도로 위 중앙의 주황색 선은 넘으면 안 된다.' 같은 교통 법규를 일정하게 시각화하는 일이다. 예쁘게 표현하고 싶어서 색을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기호를 마음대로 사용하면 도로 전광판의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0이나 1로 유지될 수 없을 거다. 


그렇다면 공공디자인에서 사용자 경험을 이야기할 때 불문법은 무엇일까. 불문법이라 하면 문서화되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관습, 혹은 전통등이 있다. 이를 사용자 경험으로 치환하면 대중들의 본능 혹은 습관에 따른 행동 양식을 고려하는 일을 말한다. 


성문법에 따라 디자인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이미 문서화된 디자인 체계에 디자이너가 새롭게 가미할 것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공디자인을 경험할 대중들의 불분법, 행동 양식을 고려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같은 목적의 건물, 시설일지라도 그것이 놓인 환경과 그 지역 사람들의 연령대등의 특성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고려한 공공디자인은 정해진 틀 안에서도 유연하며 인간적이다. 공공디자인이 인간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규칙 안에서도 자본과 상관없이 사용자인 시민의 경험을 고려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장하자면 잘 된 공공디자인에서는 시민을 위한 디자이너의 숭고한 희생정신까지 보인다. 왜냐하면 그냥 규칙대로만 하고 싶지 개개인에게 인간적이기란 참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시민을 위해 친절 봉사해야 욕을 안 먹는 것처럼 공공 디자인도 시민에게 친절히 봉사해야 욕을 안 먹는다. 그런데 공무원이 욕 안 먹기 쉽지 않은 것처럼 이용자가 너무 다양하다 보니 공공디자인도 욕 안 먹기 쉽지 않다. 



공공디자인 제1의 불문법: 빨리빨리 


그렇지만 대부분의 손님이 진상은 아닌 것처럼 공공 디자인의 사용자 경험 측면의 불문법에서도 대부분의 경우에 타율이 높은 해결책이 있다. 바로 신속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공무원이 아닌 입장에서 공무원에게 민원을 신청할 때 가장 만족스러웠던 경험을 떠올려보자. 나 같은 경우 내 요구사항을 신속히 일사천리로 처리해 주었을 때다. 외국의 삶과 대한민국의 삶을 비교하는 것 중에 다른 건 외국이 다 좋은데 공무원 일처리가 대한민국이 빨라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만큼 공공 서비스는 번개 같은 신속성이 만족감을 극대화한다. '원래는 이주정도 걸리는데 이번엔 일주일 안에 해드릴게요.'라는 말은 기분 좋다. 


누가 일처리를 해주는 것 말고도 내가 할 일을 딱딱 짚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민원 신청 시 작성해야 할 서류에 중요한 부분만 형광색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경우다. 복잡한 형식 중 내가 작성해야 할 부분만 딱딱 보기 좋게 표시해 주니 내 일처리가 빨라질 수 있다. 


사실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국내 정서상 일처리가 빠르면서도 정확해야 한다는 불문법이 있는 것이다. 


이런 신속성의 불문법을 고려하는 것은 공공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꼭 공공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빠르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디자인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공공디자인에서 유독 신속성이 민감한 이유는 공공디자인은 보편적인 시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개별 상업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서비스마다 특수한 유저군을 분석해야 하기에 시간이 걸리고 완성도를 높이기 쉽지 않다. 반대로 대부분의 공공디자인에서는 일반 대중 다수가 공감하는 상식선에서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또 반복적으로 비슷한 형식의 이용 절차로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 특성상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의 행동양식은 개별 상업 서비스보다 쉽게 예상 가능하다. 그런 공공서비스가 제공하는 경험이 상식선을 지키지 못했을 때,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을 때 사용자가 느끼는 불쾌감은 배가 된다. 




신속함이 생명, 공공시설의 웨이파인딩(Way-finding)


공공디자인이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공공장소의 웨이파인딩, 길 찾기 시스템 디자인에서 이런 신속성의 불문법을 고려하는 것이 사용자 경험상 매우 중요하다. 길을 헤맨다는 것은 시민들이 생각하는 공공시설 이용경험에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을 내고 기꺼이 이용하려고 하는 어떤 새로운 시설, 장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학습할 의지가 있다. 


그렇지만 당연히 언제든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이 되는 공공시설에서는 내가 생각한 위치에 입구가 있지 않으면 불만족스럽다. 저긴가 저긴가 하다 보면 공공서비스 사용의 신속성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여권 발급을 받으러 왔는데 안 그래도 줄이 길다. 번호표 뽑는 곳이 어딘지도 한눈에 안 보이고 안내가 잘 안 되어 있다면? 그래서 왔다 갔다 찾는 동안 대기줄이 더 늘어났다면? 그 짜증은 5시간 동안 화장실을 참다가 드디어 기회가 돼서 급히 지나가던 애먼 공무원이 떠안는 것이다. (얼마 전 구청에 여권 재발급하러 갔다가 목격했다...)


대중은 예쁘고 휘황찬란한 지하철 사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위치 정보, 내가 가고자 하는 노선 정보를 큼지막하고 확실히 보여주는 직관적인 디자인을 원한다. 원한다기보다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특히나 공공시설에서 공간 기획, 동선 기획, 사인 디자인을 포함한 웨이파인딩 디자인이 중요하다. 이중에서도 신속성의 불문법을 기반으로 한 몇 가지 대표적인 사항들만 고려한다면 적어도 번호표 뽑기 전까지는 시민들이 열받지 않도록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물론 신속성을 고려한다는 것이 모든 시설에 공통 필승 전략은 절대 아니다. 다만 사전에 공간 사용 경험을 매끄럽게 설계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 무엇을 고려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을 때는 신속성의 전략이 통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기회에 나름대로 신속성을 위해선 어떤 부분이 고려돼야 하는지 국립중앙도서관에서의 길 찾기 경험과 관련해 생각해 보았다. 성격이 급한 직진 본능의 내가 신속의 불문법을 1순위로 했을 때 국립중앙도서관은 아래 세 가지 방향에서 개선사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아래 세 가지를 국립중앙도서관의 사례로 이야기해 보겠다.



신속의 불문법 첫 번째, 직선 동선

디자인은 직관적일수록 빠른 정보전달이 가능하다. 이를 공간으로 이야기하자면 직선 동선에 비유할 수 있겠다. 직선은 최단거리이고 직선 동선의 제공은 공간 이용의 효율을 높인다.



신속의 불문법 두 번째, 명확한 사인 

정보 전달이 직관적일 수 있는 이유는 명확성에 있다. 길을 찾을 때 헷갈리는 표식을 사용한다면 엉뚱한 방향으로 이용자를 안내하게 된다. 헷갈리면 그것을 해석하고 잘못된 해석을 되짚는 과제가 추가된다. 즉, 신속성이 떨어지게 된다. 



신속의 불문법 세 번째, 최신화

직관성을 시간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당장이다.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에 따라 공간 기획이 달라질 수 있다. 리모델링이나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는 경우 혹은 기존 시설이 이전한 경우다. 이때 변화된 공간에 맞게 최신화되지 못한 사인을 제공한다면 공간 이용자는 지금이 아니라 과거의 안내를 따르게 된다. 시간 여행을 시키고 싶은 게 아니라면 공간 정보의 최신화는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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