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근 Sep 19. 2022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애정표현이다.

사용자를 말하게 하는 궁극의 애정표현, 사용자 경험 디자인

"잘못했어? 그래서 뭘 잘못했는데?"


연인 간의 다툼에서 흔하게 주고받는 말이지 않을까.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건 진짜 문제지만 뭘 잘못했는지 알아도 문제인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변명하지 않고 자존심과 고집을 내려놓고 무릎 꿇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다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


건강한 연인관계를 유지하려면 꿍해 있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아쉽거나 기분이 상하는 부분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상황을 회피하거나 속에 화를 쌓아두면 서로 오해만 쌓여 더 큰 갈등이 생기고 한쪽만 맨날 잘못하는 일방향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쉬운 것 같다.


내가 실수한 부분이나 고쳤으면 좋겠는 부분을 바로바로 말해주면 참 좋을 텐데. 문제를 말해주면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여지가 있다. 물론 말해줘도 개선하지 않으면 당연히 상대방은 마음이 떠날 것이다. 마음이 떠난 상대는 더 이상 감정소비를 하기 싫다. 이젠 기대도 없고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싫다. 그만하자. 그래서 떠난다. 가벼운 예시로 글을 시작하려 했는데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 같아 빨리 넘어가야겠다.


제품/ 서비스와 사용자의 관계서도 사용자의 반응,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 카페의 손님이 커피 맛이 별로라고 표현해주었다면 커피 맛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님은 커피 맛이 없다고 굳이 먼저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다시 안 올뿐이다. 손님은 왜 아쉬운 부분을 바로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일까?


연인관계에서는 이미 처음부터 애정이 형성되어 있다. 애정이 있으니 상대방과 함께하고 싶다. 제품/서비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제품과 서비스를 처음 대할 때는 기대만 있고 애정은 없다. 사용자의 기대(Needs)제품/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치(Value Proposition)가 맞으면 애정이 형성될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용자는 그냥 떠난다. 애정이 없는 사용자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자신이 직접 고쳐가면서 까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서로 애정이 있어 함께하고 싶은 연인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서비스/제품이 먼저 사용자에게 애정을 표현하면 된다. 그 애정표현이 바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다.


저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는데요?
UX 디자이너를 카페에 고용해야 하나요?


물론 사용자 경험을 기술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전문적으로 공부한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게 맞다. 그런데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기술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 사용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사용자 경험은 기술이 아닌 애정표현이니까.


그럼 사용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 애정표현은 어떻게 하는 걸까? 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치를 먼저 세우고 사용자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기대를 먼저 파악하고 가치를 설계하면 된다.


여기 두 명의 카페 사장님 A, B가 있다. A, B 카페 사장님은 각각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A. "우리 카페는 최고의 원두를 제공하지 그래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카페를 좋아할 거야."


B. "우리 카페는 정말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어. 그래서 최고의 원두를 제공할 거야."




A와 B는 동일한 실력의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어주며 두 카페는 정확히 같은 거리에 있고 인테리어도 완전히 동일하다고 가정해보자. 다른 점은 홍보 문구이다. 위 두 문장을 각각의 카페를 홍보하는 문장으로 그대로 사용한다고 해보자.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A, B 중 어떤 카페에 가고 싶을까?


사용자가 애정이 없이 다가온다면 반대로 서비스/제품이 애정을 표현하면 된다고 했다. A와 B의 문장에서 어떤 문장에서 사용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쉽다.  


A는 원두를 선택할 때 최고의 기준이 A 자신에게 있다. A는 커피에 대한 애정이 먼저 느껴지고 사용자에 대한 애정은 후순위이다. A 스스로 생각할 때 최고인 원두를 먼저 선택한 다음 손님들에게 어때 맛있지?라고 자신이 내린 결론과 같은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

A: 이 원두는 내가 생각할 때 최고의 원두고 이 원두를 선택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반대로 B는 원두 선택의 기준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B는 사용자에 대한 애정이 먼저 드러나고 사용자가 좋아하는 커피를 찾는 일에 애정을 갖고 있는 게 느껴진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고라고 여길 만한 원두를 선택하고자 한다.

B: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원두를 최고라고 생각할 거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에게 애정표현을 한 B에 찾아갈 확률이 당연히 높다. 물론 A가 손님 취향과 맞는 원두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실제로 방문을 해서 커피를 마셔봐야 아는 일이다. 방문 전에 확률적으로 실제로 손님이 좋아할 만한 원두를 골랐을 가능성이 높은 카페는 원두를 고르는 기준이 사장 자신이 아니라 손님에게 있는 B일 확률이 높다.



A와 B의 생각은 원두 선택뿐만 아니라 손님의 반응에 대응하는 모습에도 영향을 미친다.


B가 손님이 좋아하는 맛의 커피가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지만 만약 B에 갔더니 취향과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B에 대한 애정이 형성되기 전의 손님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시다가 다음엔 A에 갈 것이다.

그런데 손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B는 손님이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커피 맛은 어떠셨나요?" 하고 적극적으로 라고 물어볼 준비가 되어있다.


손님 입장에서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정말 별로였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냥 다시 안 오면 되지 굳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고 왠지 내가 진상 손님,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불편한 갈등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커피가 진짜 좋았다면 질문을 받았을 때 "좋았어요"라고 진심을 표현해주는 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손님의 간접적인 반응과 직접적인 반응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다면 손님들이 원하는 것(Needs)에 점점 다가갈 수 있다. 완벽한 정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손님이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하는 모습만으로도 손님에게 호감 점수를 얻을 수 있다.  


B의 태도는 결국 손님들이 좋아하는 원두를 찾게 해 줄 것이다. 손님의 취향이 반영된 원두는 단골손님을 만들어준다. B에 대한 애정이 형성된 단골손님들은 이제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B에게 기꺼이 먼저 이야기해 줄 수 있다. B는 손님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A는 어떨까? A도 물론 손님이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커피 맛은 어떠셨나요?" 하고 적극적으로 라고 물어볼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데 A가 질문하는 이유는 B와 다르다. B는 원두를 유지할지 변경할지에 대한 결정의 근거를 찾기 위해 질문했다. 그러니 B는 모든 대답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열린 질문이다.  반면 서비스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는 A는 자신이 고른 원두가 최고라는 걸 확인받고 싶다.


이미 특정 답을 기대하고 있는 A의 질문은 닫힌 질문이다. 손님에게 자신이 기대한 긍정적인 대답과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A는 실망하고 만다.


당연히 B도 애매모호한 반응에는 실망할 수 있지만 손님이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한 경험적 데이터가 생겼다는데서 위안을 얻으며 더 나은 원두를 고르는데 힘쓴다. A는 손님과 A의 기준이 맞지 않을 뿐이라는 자기 합리화로 위안을 얻는다. 원두에 대한 기준이 A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손님이 싫다고 해서 원두를 다시 고르는데 힘을 쓰지 않는다.


사격에 비유해보면 손님의 반응에 따른 A와 B의 행동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격을 할 땐 총을 쏘는 사람이 있고 총으로 맞추려는 타깃이 있다. 총 쏘는 사람을 서비스 제공자, 타깃을 사용자라고 비유해보자. B는 총알이 타깃에 잘 맞지 않으면 타깃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거나 조금 더 위를 조준해본다던가 아래를 조준해본다던가 하며 타깃(사용자)에 맞게 조준점을 변경한다. A는 총알이 타깃에 잘 맞지 않으면 타깃(사용자)이 총알에 맞는 위치로 올 때까지 계속 총을 쏜다.


물론 A처럼 자세를 안 바꿔도 강한 바람이 불어 타깃이 조금 움직여서 조준점에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런데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면 바람이 불어 타깃이 움직여 운이 좋게 내 조준점에 들어왔더라도 다시 다른 방향의 돌풍이 불어 타깃이 또 움직인다면 조준점을 다시 맞추기 어렵다. 반대로 B처럼 자세를 타깃에 맞춰 바꿀 수 있다면 돌풍이 불어 타깃이 움직여도 곧바로 다시 내가 움직여 조준점을 맞출 수 있다.


A. "우리 카페는 최고의 원두를 제공하지 그래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카페를 좋아할 거야."


B. "우리 카페는 정말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어. 그래서 최고의 원두를 제공할 거야."


이제 두 문장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으면 좋겠다. 사용자 경험을 생각한다는 건 배워야 하는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고 태도이다. 사용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사용자에 대한 애정 표현이고 사용자는 애정 표현에 반응해 준다. 그리고 그 반응은 애정 표현을 어떻게 더 잘해야 할지에 대한 힌트가 된다.  


물론 글을 쓰는 입장에서 답에 대해 정해놓은 주관적인 결론이 있고 여러분을 그 정답으로 교묘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니 여러분은 B가 아니라 A 카페의 문장에 더 호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브랜드 디자인의 관점이나 마케팅 관점에서 보자면 원두의 기준이 사용자에 따라 변화가 심한 것처럼 보이는 B보다 A처럼 원두에 대한 기준이 스스로 확고한 편이 더 낫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A가 스스로 고집이 있는 만큼 고객들에게 전문성에 기반한 장인정신을 피력할 수 있다. 또 그 장인 정신을 좋아하는 소수의 사용자 집단이 마케팅 타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A처럼 사용자의 반응에 대한 대응 자세에서도 고집을 부린다면 아무리 스스로 장인이라 홍보해도 사용자에게 더 가깝고 친절한 다른 장인이나 공산품에 밀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제품에서는 장인정신을 고집하더라도 서비스에서는 사용자를 먼저 생각하며 적당히 중간점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어렵지 않다. 내 제품, 서비스를 찾아주는 사용자에게 지속적인 애정표현을 하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혹시 나도 과잉 부모형 UX 디자이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