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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근 Sep 07. 2022

혹시 나도 과잉 부모형 UX 디자이너?

사용자 경험을 배려하는 방법


사용자를 배려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성공한다. 사용자에 대한 배려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 UX 디자인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사용자를 배려하기 위한 UX 디자인의 동기는 이타심, 특별하게는 사용자를 위하는 마음이다.


UX 디자인이 사용자를 배려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용자들의 연령대가 높으니까 시력을 고려해서 글자를 큼직하게 쓰도록 하자! -> 타이포그래피

사용자들은 다양한 크기의 기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반응형 레이아웃으로 디자인하고 개발하자!-> 개발

사용자들은 장시간 스크린을 주시해야 하니 눈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다크 모드를 도입하자!->GUI

사용자들이 빠르고 편하게 모바일 화면에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엄지 손가락 근처에 메인 버튼을 위치시키자! -> 와이어프레임 / GUI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위해선 사용자를 반드시 배려해야 하지만 디자이너의 사용자 배려가 전부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용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이 오히려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배려란 좋은 것인데?



첫 번째, 여우와 두루미의 2% 부족한 배려

여우와 두루미 우화가 있다. 여우가 두루미를 식사에 초대해 접시에 음식을 담아주었는데 긴 부리를 가진 두루미는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한다. 다음엔 반대로 두루미가 여우를 식사에 초대해 음식을 호리병에 담아주었는데 여우는 두루미와 달리 부리가 없어 호리병 속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한다. 나중에 둘은 서로에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해 여우는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두루미에게 보내고 두루미는 접시에 음식을 담아 여우에게 보낸다.


최근까지 웹 저작도구의 UX 디자인을 책임지는 동시에 프로덕트 오너의 포지션에서 디자인과 개발을 이끌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책임진 프로덕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증강현실 개발지식이 전혀 없는 사용자들이 3D 모델을 포함한 미디어 파일들을 웹브라우저의 3D 캔버스에 자유롭게 배치하고 편집할 수 있다. 그리고 곧바로 증강현실 콘텐츠를 배포해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다.


프로토타입을 점검해보니 기능적으로만 본다면 3D 전문가인 내가 3D 모델을 원하는 대로 충분히 저작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매우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바꿔 말하면 3D 공간을 꾸미고 싶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게 기능적으로 최대한 배려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첫 프로토타입으로 사용성 평가를 해보니 테스터들 대부분이 3D 기능 앞에서 좌절했다. 프로덕트 개발팀은 사용자를 위해 Web에서 가능한 다양한 3d 기능을 각종 컨트롤러 GUI에 담아 최대한 제공했는데 정작 제품 테스터들은 컨트롤러에 마우스 포인터를 제대로 올려보지도 못했다. 테스터들 중 절반이 3D 오브젝트 배치는커녕 3D 공간을 어떻게 탐색하는지 기본적인 마우스 조작부터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몇 주를 고생해 단기간에 많은 기능들을 구현시킨 개발팀으로서는 마우스 조작부터 막히는 사용자들을 보고 있자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여우와 두루미형 UX 되지 않기 1.

기능(Feature) 우선이 아닌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우선해라

처음에 여우가 두루미를 화나게 하려고 평평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줬을 리는 없다. 아마 정성껏 음식을 차려내 왔을 테다. 3D 기능을 잔뜩 차려놨지만 사용자가 이용을 못한 것은 여우가 두루미의 부리를 간과한 것처럼 타깃 사용자들이 개발 지식뿐 아니라 3D 지식도 거의 없다는 걸 프로덕트팀이 간과했기 때문이다. 3D를 만들고 싶어 하는 건 알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을 생각할 때 사용자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나는 사용자가 파워포인트와 같은 문서 작업 툴에 익숙하다는 리서치 결과를 통해 3D 기능을 제공하는 동시에 3D를 몰라도 증강현실을 만들 수 있게끔 여러 장을 추가할 수 있는 2D 레이아웃을 도입했다. 그 결과 이후 사용자 테스트에서 3D 공간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간단한 이미지, 텍스트, 비디오만으로도 사용자들이 쉽고 빠르게 증강현실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두 번째, 과잉 부모형 배려

부모의 과잉보호가 아이들의 자기 관리 능력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심리학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이들 주변을 항상 맴돌며 간섭하는 부모의 과잉보호가 아이들의 감정이나 행동을 관리하는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연구진은 부모들에게 평소 아이에게 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했는데 과잉보호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1. 아이들이 무엇을 가지고 놀 것인지, What to do

2. 장난감은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How to do

3. 다 놀고 난 후 청소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일일이 알려주는 것, Clean up

4. 아이들을 대할 때 너무 엄격하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 Alert + Request


여기에 대해 아이들은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고 한다.

1. 반항적이거나, Annoyed

2. 무관심하거나, ignore

3. 좌절하거나, Frustrated


재밌는 건 UX 디자인 역시 과잉 부모와 같은 양상을 보일 때가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나머지 사용자가 마주치는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려고 하는 경향이다. 대신 해결해주기 어려운 부분들에는 각종 경고 메시지, Alert을 띄운다거나 각종 팝업 메시지들로 TASK 수행에 필요한 사소한 행동들까지 Request, 요구한다.    


프런트엔드의 리액트 개발을 책임지고 있던 팀원이 어느 날 비디오 추가 기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우려를 표한 문제 상황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iOS 기기의 기본 브라우저인 Safari에서 자동재생 동영상의 소리를 강제로 꺼버리는 현상, 두 번째는 마찬가지로 iOS 기기의 기본 브라우저인 Safari에서 여러 동영상이 동시 재생될 때 가장 마지막에 타깃이 된 동영상의 소리만 재생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총 3개의 비디오의 play 버튼을 눌렀으면 다른 동영상들의 소리는 강제로 꺼지고 마지막에 play 버튼이 눌린 동영상에서만 소리가 나온다.


모바일 안드로이드와 iOS 기기를 동시에 대응하기 위한 프로덕트의 개발에서는 서로 다른 개발환경 때문에 이렇게 특이하고 성가신 경우가 많다. 여기에 대하여 조건별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간단한 디렉팅을 해준 후, 사용자가 여러 비디오를 추가했을 때 iOS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간단한 알림을 주도록 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팀원이 PC 웹에서 비디오를 추가할 때, 사용자가 PC 웹에서 비디오를 재생할 때, 사용자가 PC 웹에서 비디오의 소리를 켤 때, 사용자가 안드로이드에서 비디오를 볼 때, 사용자가 iOS에서 비디오를 볼 때 등 모든 경우의 수에 사용자가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 일일이 팝업 기능을 만들었고 그 내용도 상당히 자세하고 친절해서 길었다. 또 비디오를 추가하는 부분의 설정 컨트롤러 GUI 아래에 2~3줄씩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해 자세히 표기했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팀원이 기입한 팝업 메시지들의 설명과 화면 GUI 상의 설명 표기들이 쓸데없는 말들 은 아니었다. 사용자가 알고 있다면 좋을 내용들이 맞았다. iOS와 안드로이드가 비디오에 대한 정책이 너무 다르다 보니 비디오 편집에 무한한 자유를 줄 수가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문제는 수많은 안내문구들과 팝업 메시지들에 대해 사용자도 아이들과 똑같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1. 반항적이거나, Annoyed

2. 무관심하거나, ignore

3. 좌절하거나, Frustrated


비디오를 추가하기도 전에 패널마다 눈에 들어오는 장문의 도움글은 사용자를 질리게 할 수 있다. 클릭 한 번마다 뜨는 경고 메시지는 사용자가 화를 내지르게 할 수도 있고 사용자를 겁에 질리게 할 수도 있다. 성격이 급한 사용자는 일단 다 누르고 볼 텐데 그럴 땐 경고 메시지나 장문의 도움글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사용자를 배려해 문제 상황을 모두 알려주고 개발하는 입장이 원하지 않는 상황을 사용자도 만나지 않게 해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배려가 너무 과해서 사용자들은 비디오 기능에 대해 비디오를 원활하게 잘 편집했다는 경험이 아니라 그저 잔소리 폭격을 당한 경험만 기억할지도 모른다.




UX 디자이너가 과잉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입장에서 문제 상황을 해결하지 말고 사용자 입장에서 문제 상황을 생각해 해결하려 해야 한다. 내가 UX 디자이너로서 과잉 부모가 되지 않는 3가지 방법이 있다. 



과잉 부모형 UX 되지 않기 1.

관련 있는 모든 사항을 문제로 정의하지 말고 사용자 입장에서 밀도 높은 문제 상황을 정확히 짚어내어야 한다.

문제 상황은 모든 비디오 편집 상황이 아니었다. 맨 처음 자동재생 동영상의 소리가 재생되지 않는 문제, 사용자가 동시에 한 개 이상의 비디오를 자동재생시켰을 때 iOS와 안드로이드에서 다르게 동작할 수 있다는 게 정확한 문제 상황이었다. 다시 말하면 사용자가 자동재생을 처음부터 시키지 않거나, 사용자가 비디오를 한 개만 추가했을 경우에는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용자 입장에서 기능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심각한 문제가 되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사용자가 직접 좌절할 수 있는 부분은 적정선에선 좌절하게 두어도 된다. 대신 넘어질 땐 넘어지더라도 크게 다치진 않게 가구마다 모서리 찍힘 방지 스티커 정도는 붙여줄 수 있다.


이전에는 미리부터 걱정해서 비디오를 한 개 추가하던 두 개 추가하던 자동재생이 있던 없던 경고와 도움 메시지를 화면에 띄웠다. 이젠 비디오를 두 개 이상 추가할 때, 처음부터 자동재생을 시킬 때만 경고 메시지를 주면 된다고 디렉팅 했다.


과잉 부모형 UX 되지 않기 2.

할 수 없는 것을 알려주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부정문보다는 긍정문으로 알려준다. 

똑같은 말이라도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말라고 나열하는 것은 잔소리로 여겨지지만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면 응원으로 여겨질 수 있다. 물론 당연히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하나 모두 말하면 이 역시 성가시다.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방향 이어야 한다. 이전에 불가능하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이야기해주거나 마련해주면 된다.


기본적으로 비디오를 여러 개 추가할 때나 비디오를 자동 재생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Alert, 경고를 주어도 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아예 필요 없게 한다면 어떨까? 대신에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면?


이전에는 일반적인 비디오 추가와 다를 게 없었지만 메인 비디오 개념을 새로 도입시켰다. 여러 개 비디오가 존재할 때 메인 비디오가 존재하면 메인 비디오만 우선적으로 재생하도록 해 여러 비디오가 동시에 겹쳐서 재생되거나 소리가 겹치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 이후 기존의 팝업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기존: 여러 개의 비디오를 추가하면 iOS에서 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변경: 여러 개의 비디오 중 메인 비디오가 있으면 소리 겹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존엔 잔소리 같고 경고 같아 무서운 감이 있고 행동을 막는 것 같지만 변경 이후엔 조금 더 친절하고 부드러운 경험을 전달할뿐더러 다음 행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가능성을 자연스레 열어주기까지 한다.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선택적 기능을 추가해 긍정문으로 전달했다. 선택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만약 여기서도 반드시 메인 비디오를 사용하세요라고 강요하고 압박을 준다면 다시 과잉 부모로 돌아가게 된다.



과잉 부모형 UX 되지 않기 3.

모르는 채 하고 대신해주기

대신해주는 것이 어찌 보면 과잉 부모와 같이 보일지 모르나 산타클로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어릴 적 유치원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산타클로스 변장을 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산타클로스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기에 산타클로스 역할을 대신해주었다. 우리는 산타클로스가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이라거나 부모님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채하고 즐겁게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들의 산타클로스 변장의 진짜 목표가 선물 전달은 아니다. 진짜 목적은 아이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자동재생 동영상이 있을 시 iOS는 사용자가 직접 어떻게든 화면 터치 동작을 해야지만 소리를 켜주었다. 자동 재생 동영상을 추가한 사용자는 소리 재생을 원한다. 우리는 소리를 재생하려면 터치하세요 라는 직접적인 문구를 넣어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진짜 목표는 소리 재생이 아니라 사용자의 자연스러운 모바일 증강현실 경험이다.


모바일에서 증강현실 카메라를 켜면 반드시 카메라를 허용해달라는 시스템 팝업 메시지가 뜨고 확인 버튼을 눌러야 카메라가 켜진다. 이건 모바일 정책상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우리는 두 번 팝업을 띄우지 않고 시스템 팝업 메시지의 확인 버튼과 소리 켜짐 기능을 연결시켰다. 카메라를 반드시 켜겠다는 것에 확인을 눌렀기 때문에 1번 이상의 터치가 발생해 iOS가 소리를 재생시켜 주었다.


알고 보면 사용자는 카메라 허용에도 OK를 터치하고 소리 켜짐에도 OK를 터치한 것이지만 한 번의 카메라 허용 OK 터치로 사용자가 모르게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결해 주었다. 동시에 필요한 Step을 줄여 매끄러운 AR 경험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최근에 디자이너가 사용자에 대해 과잉보호하는 경우에 대한 실제 경험 사례가 있어 예시를 들어 설명해보았다. 어쨌든 결론은 사용자이다. 디자이너들은 늘 사용자를 생각하지만 가끔은 정말로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디자인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제나 사용자를 위해 이것들을 해주어야지 하고 떠올랐다면 이제는 그것이 나를 위한 합리화가 아닌지 혹은 지나친 과잉 친절, 과잉 배려가 아닌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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